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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칼국수

일상에서

by 장대명화 2023. 8. 25.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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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칼국수

 

장맛비가 그치고 나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고 입맛이 떨어지는 것 같다. 이럴 때면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내가 좋아 하는 칼국수다. 이열치열이라 하였던가, 오히려 뜨거운 칼국수 한 그릇으로 더위를 이겨낸다. 오늘따라 국수생각이 간절하여 맛집이라는 팻말을 보고 들어가 보았다. 소문이 난 집이어서일까 대기자들이 순번을 기다린다. 20여분이 지나니 내 차례다. 색색의 맛깔스런 고명을 올려놓은 화려한 국수가 눈을 사로잡는다. 온갖 재료로 우려낸 육수에 고명을 살살 저어가며 면과 함께 먹어보았지만 내가 먹고 싶은 칼국수 맛이 아니다.

 

유년시절에는 밥보다 국수를 더 좋아해서 하루 세 끼를 먹어도 싫지 않았다. 지금도 어릴 적 추억이 서린 어머니의 손칼국수 맛이 한없이 그립다.

해질녘 들일을 하고 오신 어머니는 힘든 농사일에 지치실 만도한데 어느새 팔소매를 걷어붙이시고 밀가루에 콩가루 섞어 반죽을 하신다. 홍두깨로 척척 밀어주면 쟁반같이 둥글게 펼쳐지는 반죽은 종잇장처럼 얇아지고 달라붙지 말라고 훌훌 분가루 뿌려 접어 썩썩 썰어내셨다. 샘터 옆에 걸어 놓은 무쇠 솥의 설설 끊는 물에 국수 가락을 넣고 애호박 숭숭 썰어 넣어 보글보글 끊이면 쫄깃하게 익었다. 어머니 졸라 얻어낸 국시꼬랑지를 불을 헤집어 가며 구어 먹다보면 입가에 시커먼 재가 묻는 줄도 몰랐다. 그사이 다 삶아진 뜨거운 국수를 커다란 양푼에 넘치도록 떠내 놓으며, 굵은 소금 한 웅 큼 뿌려 주걱으로 휘휘 저었다. 대 종갓집인 우리 집의 그 많은 식구들 한 그릇, 두 그릇씩 후루룩 후루룩 소리 내어 먹으며 배가 부르다 하였다. 실컷 먹고도 남은 국수 양푼에 담아 삼배상보자기로 덮어 놓으며, 출출할 때 밤참으로 먹으라 하시던 음식솜씨 좋은 어머니셨다.

배가 부르도록 먹고도 남은 것을 더 먹고 싶어 반딧불이 호박꽃잎 속에 가두어 불 밝히며,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놀다보면 또 배가 고팠다. 같이 뛰어 놀던 동네친구들과 서로 더 먹으려고 달그락 달그락 양푼 바닥을 긁다보면 남은 국물 한 방울이 꿀맛 같았다.

 

반딧불이 날아다니던 밤에, 쑥 모깃불 피워 메케한 연기 자욱하고, 멍석 위에 누워 하늘에 수놓은 은하수 올려다보며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별을 세든 밤이었던가. 별나라에 가보고 싶다하던 순이, 별똥별이 떨어지면 어디로 가느냐고 묻던 음전이, 운수 좋은 사람 집에 떨어진다고 만져보고 싶다던 영자. 하하 호호 밤 세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던 친구들이 있었고, 밤이슬 내려 눅눅하다 홑이불 덮으라 하시던 할머니 목소리도 들려오는 것만 같다. 유년의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수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지천으로 날아다니던 반딧불이는 다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조차 없고,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은 도시의 우뚝 솟은 건물의 불빛에 가려져 보이질 않는다. 세월이 지나면서 없어진 것이 반딧불이와 은하수뿐만이 아니다. 따뜻하고 정 많으시던 푸근한 어머니의 손칼국수 맛도 사라졌다. 옛날 기억을 더듬어 봐도 어머니의 손맛은 되살릴 수가 없다. 그저 밀가루에 콩가루 섞어 국수를 만들고, 왕소금만으로 간을 한 것이었지만 흉내 내지 못하는 맛이어서 속이 상한다. 아마도 내 기억 속에 오롯이 남아 있는 그 국수 맛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양념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날씨가 무더울 때나 쌀쌀할 때면 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옛날 칼국수 집이라 하여 찾아가보아도 역시 그 맛이 아니었다.

아직도 어머니가 해주셨던 손칼국수를 생각하면 공연히 배가 고파진다.

오늘따라 머리에 하얀 수건 쓰시고 행주치마 두른 채,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시던 어머니 모습이 사무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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