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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속의 이야기 / 장 란 순

일상에서

by 장대명화 2023. 2. 16.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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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속의 이야기, 저승 / 장 란 순

 

검사실 침상에 반듯이 누웠다. 내 체형에 꼭 맞는 모양의 폭신한 틀이 만들어진다.  찰칵~ 소리가 나고 쇄 고리 두 개가 맞물리며 양팔과 가슴을 함께 묶는다. 연이어 찰칵~ 찰칵~ 대퇴부를 묶고 발목을 묶었다.  옴짝달싹 할 수가 없다.  기분이 묘하다.  그리고 검사대가 서서히 움직이며 둥근 통속으로 들어간다.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

사뿐사뿐 내딛는 발걸음이 구름 위를 걸으면 이렇게 가벼울까?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하얀 옷을 입은 형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간다. 왠지 섬뜩하여 돌아가려고 발길을 돌렸다. 누군가 다가오는 듯하다. 아! 친정 부모님 큰언니 조부모님도 계시지만 아무런 말이 없이 그냥 스쳐 지나간다. 두리번거리다보니 저 편에 시부모님 큰아주버님들도 보인다. 가까이 가려고 발걸음을 옮기려 해도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안타까워 발만 종종거리는데 “검사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담당직원의 말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한순간의 꿈이라고 하기 엔 참으로 생생하다. 이미 다 돌아가시고 안 계신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 짧은 시간에 저승에라도 다녀왔단 말인가? 사후에 영혼이 간다는 저승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이 현상을 어찌 증명할 수 있을지…

때때로 몸이 편찮거나 마음이 허허로울 때면 마치 어제의 일처럼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전설속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주 오래전 친정집안의 일화이다. 입담이 좋으신 할머니는 근동에서 이야기를 잘 하던 분으로 회자되었다. 할머니는 자식들의 출산 후 몸이 허약하여 달거리 때가 되면 하혈을 하곤 했단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위를 타더니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다. 애통해 하는 집안사람들이 모여 장례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돌아가신지 삼일 째 되던 날이다. 시신 앞에서 통곡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외쳤다. 어머니가 깨어나셨어요! 어머니가 살아나셨어요!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살아나신 할머니는 염소 한 마리를 고아서 드시고 회복하셨다. 어찌된 영문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저승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의식을 잃은 후 비몽사몽간에 당도한 곳은 대궐처럼 큰 집들이 있는 한옥마을이었다. 열두 대문을 지나서 들어가 보니 드넓은 마당에 하얀 옷을 입은 백발의 노인들이 모여 수군대며 웅성거렸다. 권세가 높은 의자에 앉아 있던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염라대왕이 할머니를 굽어보며 호통을 치더란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왔느냐? 아직은 네가 올 때가 아니다. 몇 년, 몇 월, 몇 날, 몇 시에 다시 오거라”하며 하얀 강아지를 안겨 주었다. 저승사자를 따라 강아지를 안고 한없이 걷고 또 걷는데 어디선가 청아한 새소리 들리고 형형색색 화려한 꽃들과 온갖 과실이 열려 있는 눈아 부시도록 웅장한 금빛궁전이 펼쳐졌다. 여기가 극락세상이란 말인가! 하도 좋아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걷다 보니 맑은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아취 형 다리를 건너려는데, 저승사자가 “이제 혼자 건너가시오!"라는 말에 그만 강아지를 물에 풍덩 빠트리며 깨어났다는 것이다. 그 순간 그곳으로 언제 오라는 날짜를 잊어 버리고 말았단다. 할머니는 삼일간의 저승에서의 일을 담담하게  이야기 하였지만 사람들은 황당하여 믿으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생과 사를 넘나들었던 그 일이 있고난 후 차츰 허리가 굽어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어도 천수(天壽)를 누리며 오래 살다 돌아가셨다.

 

아침 식사 후엔 티타임이다. 남편은 달달한 믹스커피 나는 쌉쌀한 아메리카노다. 하루일정을 이야기 하며 나누는 대화가 여유롭다. 오늘도 커피를 가져와 탁자에 놓는 내 모습을 바라보던 남편이 한마디 한다. "요즘 기력이 없어 보이는데 건강검진 좀 해봐 " 뜬금없이 하는 말이 예사롭지 않아 다그쳐 물었다. 내가 물건을 들때나 놓을 때 손이 파르르 떨린다는 거다. 언제부터인가 무리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땐 손 떨림이 오는 게 느껴졌어도 나이가 들면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려니 했다.

내친김에 ‘파킨슨’질환 정밀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체험한 꿈같은 일이었다.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다. 마치 내가 몹쓸 병에라도 걸린 듯 애가 탄다. 도통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드디어 검사결과 날이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진찰실로 들어섰다. 잔뜩 긴장한 내 표정을 바라본 담당의사가 웃음 띤 얼굴로 “축하합니다. 정상입니다. 식사 잘 하시고, 운동하고, 특히 스트레스는 만병의 원인입니다.”라는 진료소견을 듣는 순간 온 세상이 내 것인 듯 희망의 햇살이 환하게 나를 비추는 것만 같았다.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한가보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호들갑스럽던 자신이 더없이 무색해진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는 옛말이 있다. 더구나 요즘은 백세시대가 아닌가. 과학적인 의료시설과 훌륭한 의료진들의 진료를 받으며, 스스로 자기 자신을 관리한다면 백세 아니 그 이상의 나이를 산다 해도 축복 받는 멋지고 아름다운 인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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