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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를 든 남자 / 윤 온 강

망치를 든 남자 / 윤 온 강 사람이 살아가면서 수행하는 많은 역할 중에는 자기에게 맞지 않는 것도 꽤 있을 것이요,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는 역인데도 하는 수없이 맡아서 하는 사람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직업도 그런 것 중의 하나가 아닐까? 나는 자기 직업에 정말 만족해하는 사람을 별로 만나 보지를 못하였다. 다른 사람은 제쳐두고 나 자신도 내 직업이 적성이 맞는 것인지 자문해 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교단에 선 지 몇 달도 채 안 되어 이 직업이 내게 맞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긴 것은 전혀 엉뚱한 데서였다. 지금은 세월이 좋아서 성적일람표를 컴퓨터가 만들어 주고 있지만 그때는 그것이 교사에게 가장 큰 일거리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이 성적일람표를 나는 단번에 만들 수 없었다. 이름을..

추천 수필 2026.10.07

영혼의 숨소리 / 조 병 렬

영혼의 숨소리 / 조 병 렬 교무실 창밖에 은행나무 세 그루가 나란히 서 있다. 고개만 들면 보이는데, 크기도 같고 모양새도 흡사하다. 오래도록 저 나무들을 친구처럼 바라보며 함께 지내왔다. 몸과 마음이 지쳐 있거나 외로움이 밀려올 때는 나를 위로해 주고 가다듬게 해 준 고마운 친구로서 손색이 없다. 얼마 전까지 진녹색의 무성한 잎으로 건강미를 과시했던 나무들이다. 잎들이 줄기와 가지들을 모두 가려버린 오동통한 자태는 마치 르누아르의 '목욕하는 여인들'처럼 탐스러웠다. 조락의 계절로 접어들면서 저들은 서서히 변화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예사로 보았다. 으레 가을이 되면 은행나무는 노랗게 물들기 마련이고, 그 화려한 모습은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것으로만 여겼다. 그런데..

추천 수필 2026.10.06

천국의 작은 도서관 / 안 규 수

천국의 작은 도서관 / 안 규 수 당대의 거장 헤밍웨이는 소설『노인과 바다』의 첫 문장을 이백 번 넘게 고쳐 썼다고 한다. 단정한 문장 하나를 얻기 위한 그의 집요함은 경외심마저 불러일으킨다. 소설가 김훈은 『칼의 노래』의 첫 문장을 두고 “꽃은 피었다”와 “꽃이 피었다” 사이에서 고뇌했다. 조사 하나가 문장의 결을 바꾸고, 그 결이 작품 전체의 숨결을 결정한다. 수필은 어떠한 문학인가? 소설가 김홍신은 ‘수필은 내 흔적을 글로 나타내는 것이기에 잉크를 찍어 쓰는 게 아니라, 혼(魂)을 찍어 나를 밝히는 생각 증명서’라고 말했다. 수필 쓰기는 자신의 완성을 향한 영혼의 계단 밟기이다. 글을 쓰는 동안 내면의 모서리는 다듬어지고 자신의 결점은 보완되기 때문이다. 수필의 첫 문장은 밀봉된 세계의 문을 여..

추천 수필 2026.10.05

쥐는 이렇게 말했다 / 해질녘 ㅡ 김 창 식

쥐는 이렇게 말했다 / 김 창 식 끈 떨어지고 줄 떨어진 구경꾼들이 둘러섰다. 쥐 한 마리가 뿔뿔 기어가자 작은 널빤지 벽이 나타난다. 생쥐가 다른 길로 접어드니 또 벽이 가로막는다. 실험용 쥐가 방향을 바꾼다. 그러자 알고 있었다는 듯 또 다른 방해물이 나타난다. 시행착오 끝에 작은 동물은 출구 쪽으로 향한다. 구경꾼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박수를 치려는 순간, 아차, 미련한 쥐는 방향을 틀어 출구로부터 쪼르르 멀어지더니 다른 곳을 헤맨다. 상황이 재개된다. 쥐 한 마리가 기어가자…. 상황은 되풀이된다. 쥐 한 마리가 기어가자 널빤지 벽이…. 쥐 한 마리가 기어가자 또 다른 벽이….바보 같은 쥐. 슬슬 짜증이 나려는 순간 설핏 의심이 든다. 쥐가 혹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출구로 향하는 길..

추천 수필 2026.10.03

아버지 마당에 푸른 달빛이 / 유 호 영

아버지 마당에 푸른 달빛이 / 유 호 영 마을 사람들은 우리를 '꼼꼼히네'라고 불렀다. 윗마을 아랫마을 사람들 모두 그렇게 불렀다. 바깥양반이 부지런하고 빈틈없어 우리 집 마당에선 풀 한 포기도 자라지 못한다고들 했다. 아버지는 지나치게 완벽주의자였다. 짚단을 묶을 때만 해도 그랬다. 한 단 한 단 단단하게 묶어 그 밑동을 땅에 탁탁 내리치셨다. 그러면 짚 밑동이 밀가루 국수 다발처럼 가지런해졌다. 그렇게 묶은 짚단을 차곡차곡 마당에 쌓았다. 지붕 높이까지 네모반듯하게 쌓아 올린 후 아버지는 사다리를 타고 천천히 내려오셨다. 그러고는 흐뭇한 표정으로 낟가리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는 마당에 떨어진 지푸라기를 쓸어 모으셨다. 나뭇단을 쌓을 때는 더 정교했다. 나무 밑동을 두 줄로 맞대어 안쪽으로 들어가게 하고..

추천 수필 2026.09.28

커피'가 몸에 끼치는 영향

커피'가 몸에 끼치는 영향 커피는 수백 가지 생리활성 화합물이 함유돼 섭취 시 다양한 체내 반응을 일으킨다. 국제 학술지 ‘메디컬 익스프레스’에 게재된 커피가 몸에 미치는 일곱 가지 영향에 대해 알아본다. 소화기관 자극, 커피는 소화할 음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소화기관 활동을 자극할 수 있다. 췌장을 자극해 단백질 소화에 관여하는 효소인 트립신 분비를 촉진한다.역류 증상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위산이 식도로 다시 올라오면 속쓰림뿐 아니라 역류가 목이나 기도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기침이나 천명음 등 호흡기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눈·귀 질환 악화, 카페인은 녹내장이나 안구 고혈압이 있는 일부 사람에게서 안압을 일시적으로 높일 수 있다. 질환으로 이미 안압이 높은 상태에서 더 상승할 경우, 시신경 손상 위험..

월드 이발소 / 이 재 훈

월드 이발소 / 이 재 훈 우리 동네 입구에는 허름한 이발소가 하나 있다. 출입문 위에는 월드이발소>란 조그만 함석 간판이 삐딱하다. 처음 나도 그 ‘월드’란 단어가 거슬렸다. 한옥을 개조한 이발소의 규모나 외양에 비해 너무 과장되었다는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페인트는 언제 칠했는지 곳곳이 녹물 자국으로 얼룩져 있고 문짝은 아귀가 안 맞아 쥐가 드나들 것 같다.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는 이발소 표시등만이 이발하러 들어오라고 손짓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이 동네로 이사 오면서부터 이곳에서 이발을 한다. 처음 왔을 때 생각이 난다. 문을 열자 나를 맞은 건 싸구려 향수 냄새와 비누냄새였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지린내 같은 세월의 냄새가 그 밑에 숨어 있었다.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희뿌연 거울 위에 걸려..

추천 수필 2026.09.27

비워서 채워지는 삶의 무늬 / 이 선 재

비워서 채워지는 삶의 무늬 / 이 선 재 평생 이고 지고 살던 짐들을 덜어내는 이삿날이다.내 손때가 묻은 가구들과 유행이 지난 옷가지들이 트럭에 실려 멀어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일상을 쾌적하고 편리하게 도와주던 가전제품들과 집 안 곳곳을 아늑하게 채워주던 가구들이 아파트 쓰레기장 옆에 덩그러니 서 있다. 초록의 싱그러움으로 기쁨과 위로를 보내주던 화분들을 보니 죄스럽고 미안해서 가슴이 저렸다. 이삿날을 잡아놓고 틈틈이 물건들을 정리할 때마다 도움을 준 미화원과 친절하게 대해준 경비원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45년간 드나들던 아파트 단지를 벗어났다. 그때 내 존재의 증표 같았던 물건들을 떠올리며 문득 깨달았다. 젊어서는 무언가를 열심히 채우는 시간이었다면, 늙어가면서는 지나온 삶을 아름답..

추천 수필 2026.09.27

뿌리를 찾으려면 / 이 방 주

뿌리를 찾으려면 / 이 방 주 김치 통을 열었다. 겨우내 김치냉장고에서 잠자던 상큼한 향을 얼굴에 ‘확-’ 끼얹는다. 지난 가을 덮어놓은 배춧잎 우거지가 초록 그대로이다. 지금쯤 골마지가 하얗게 끼였을 법한데도 말이다. 우거지를 걷고 한포기를 꺼내 도마에 올렸다. 칼을 갖다 대기만 했는데 ‘아사삭’ 경쾌한 소리를 내며 동강난다. 입안에 침이 괸다. 하얗던 줄기에 발그레하게 고춧물이 든 도톰한 조각을 입에 넣고 살며시 씹어본다. 상큼하다. 톡 쏘려거든 시원하지나 말든지, 새콤하려거든 매콤하지나 말든지, 군둥내도 없다. 깊은 사유를 통해 글감을 잘 발효시킨 수필 한편을 읽는 것 같다. 삶의 원리를 깨달아 낮은 목소리로 들려주는 웅변이 되어 그윽한 공명을 준다. 겨레의 심성을 다 울릴 것 같다. 우리는 흔히..

추천 수필 2026.09.21

18회 복숭아문학상 최우수상ㅡ우리 모두의 복숭아뼈/류 한 석

우리 모두의 복숭아뼈 / 류 한 석 물기운이 닿자, 연분홍 뺨에 잔뜩 돋아 있던 솜털이 물결을 타고 눕는다. 손아귀에 쥐어진 둥근 표면은 아슬아슬하게 물렁하다. 흐르는 수돗물 아래서 과육을 쓰다듬다 그만 엄지손가락에 힘이 잘못 실리고 만다. 툭, 하는 미세한 파열음은 들리지 않았으나, 손끝의 감각은 이미 얇은 껍질 아래 조직이 무너져 내렸음을 감지한다. 어긋난 힘의 방향이 달콤한 살점에 기어이 반달 모양의 멍을 밀어 넣었다. 제 몸을 보호할 단단한 외투 하나 두르지 못한 생명은 찰나의 압력 앞에서도 속수무책으로 핏줄을 터뜨린다. 허물어진 자리 위로 맑고 투명한 진물이 배어 나온다. 입안으로 흘러드는 과즙은 상처 깊이와 무관하게 뭉클하도록 달다. 접시에 저며놓은 과육을 바라보다 문득 시선이 바닥을 딛고 ..

추천 수필 2026.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