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좋다 / 장 란 순
삶이 지루하고 답답할 때엔 바다에 가고 싶다. 철썩이는 파도소리와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후련하다. 일상에서 얽매였던 마음을 내려놓고 재충전하여 돌아온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국토지만 그중 동해 강릉 경포대, 남해 부산 해운대, 서해 보령 대천이 전국을 대표하는 바다의 명소가 아닐까 싶다. 바다가 보고 싶을 때엔 근거리 지역인 충청남도 대천 바다에 간다. 예전엔 꼬불꼬불 국도를 따라가는 길이 하도 멀어서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은 서해안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주변의 도로가 확장되면서 두 시간여면 족히 갈 수가 있다. 대천해수욕장은 서해바다 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크고 은빛 백사장이 참으로 아름답다. 한없이 걸으며 낭만을 만끽 할 수 있는 해변이다. 여름이면 머드축제가 열려서 국내는 물론 세계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관광지다. 축제기간 중엔 얼굴과 온몸에 진흙을 바르고 개성 있는 몸짓으로 희희락락(嬉嬉樂樂) 하는 수많은 인파의 환호에 이색적인 분위기마저 연출한다. 얼마 전 대천 항에서 원산도까지 보령해저터널이 개통되었다. 소식을 듣고 앞 다투어 찾는 사람들 차량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한갓질 때 가려고 미루고 있던 참이다. 나도 오늘은 그곳으로 출발이다.
해저터널이라 하여 심해 깊은 곳에 마치 거대한 어항 속처럼 온갖 종류의 해초들과 유영하는 색색의 아름다운 물고기들이 노닐고, 바닷물을 가르며 곧게 뻗은 길이 펼쳐지지 않을까? 환상적인 바다 속을 상상하였다. 그러나 그건 역시 몽상이었나 보다.
터널입구에 거창하게 쓴 플래카드와 홍보물에 비해 산속을 통과 할 때 지나가는 지상터널과 다름없었다. 대천에서 원산도까지 가는 길이 돌고 돌아 1시간30분 걸리는 시간을 단10분만에 갈 수가 있다. 약 7킬로미터의 터널로 세계 5번째의 해저터널이라고 하니 한국의 건설기술력이 놀랍다. 여름피서 때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교통정체가 다소 해소되지 않을까 싶다.
터널을 통과 하여 원산영목대교를 지나 영목 항에 도착했다. 안면도의 끝자락이다. 아름다운 항구를 기대 하였건만 섬과 섬을 잇는 교량만이 현란하다. 횟집들과 인공으로 이루어진 공원이 관광지로의 면모를 갖추어 가는 중인지 어수선 하다.
돌이켜보니 수십 년 세월이 흐른 것 같다. 승용차가 귀했던 시절이라 바이크(오토바이 또는 자전거)로 출퇴근이나 여행을 하던 때였다. 바다를 유난히 좋아하는 남편은 선뜻 용기를 내어 그 먼 길을 오토바이를 함께 타고, 지도를 보며 물어물어 서해 바다를 찾아 왔었다. 처음으로 온 바다여서일까 비릿한 바다냄새와 철썩이는 파도소리, 사람들 손길이 닿지 않아 자연그대로의 수려한 바다 정취에 탄성이 절로 나왔었는데… 휴일이 되면 남편과 오토바이를 타고 이름난 바다와 명승고적을 찾아 다녔던 그 시절의 추억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왠지 모를 허탈함은 무슨 심사일까? 오던 길을 되돌아가기로 하고 다시 터널 속을 통과하려니 못내 아쉬움이 남았다.
내륙지방에 살고 있는 우리는 바다가 좋다. 자칭 베스트드라이버라고 말하는 남편덕분에 종종 서해바다에 간다. 차가 출발함과 동시에 오디오 CD 버튼을 누른다. 바다여행이니만큼 7080세대들이 즐겨 부르던 ‘바닷가의 추억’‘해변으로 가요’ '연가'등 노래를 따라 부르며 여행길의 흥을 돋운다. 신바람 나게 달리다 보니 어느새 대천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바다다!~ 바다다~ 바다다~
목청껏 외치는 소리가 파도를 타고 저 멀리 멀리 울려 퍼진다.
해수욕을 하기 엔 이른 시기여서일까 사람들이 띄엄띄엄 보인다. 해변을 거닐다보니 출출하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횟집 이층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온갖 해물로 차려진 밥상이 맛깔스럽다. 더구나 창 너머로 펼쳐진 끝없는 바다, 밀려오는 파도소리, 뽀얗고 보드라운 반짝이는 모래, 이곳이 언제나 그리워하는 바다다.
그 찬란하게 내려 쪼이던 금빛 태양도 서서히 일몰을 맞이한다.
저녁노을이 점 점 점 붉게 물들어 간다.
아! 어쩌면 노을이 저리도 고울까.....
젊은 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살며시 그이의 팔을 잡았다. 상념에 젖어 긴 발자국을 남긴 체 걷고 또 걷는다. 이제 우리부부도 저 고운 해변의 노을처럼 아름답고 편안하게 나이 들어가고 싶은 게 소망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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