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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에서 온 편지

일상에서

by 장대명화 2020. 5. 2.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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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촌에서 온 편지 / 장 란 순

 

  이른 아침 까치가 날아와 운다. 반가운 손님이 오려나? 무심코 해보는 혼잣말이지만 왠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옛 부터 까치를 길조(吉鳥)라 여겨 그 울음소리만 들어도 반가워했던 새가 아니던가.

  까치를 바라보고 있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집배원이 등기우편이 왔다고 한다. 서명을 하고 받은 우편물은 펜글씨로 곱게 쓴 한 통의 편지였다. 요즘처럼 바쁜 세상에 손 편지를 써서 보내다니, 소중한 보물을 어루만지듯 앞뒤를 두세 번 살펴보았다. 반가운 소식이 온다는 것을 까치가  어찌 알고 알려주었을까 기특할 뿐이다.

 

  수필집을 출간하여 가족과 , 친구,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적이 있다. 그 중 가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C문학회 정기모임 때, 먼발치에서 딱 한 번 보았던 회원의 모습이 잊혀 지지 않아 책 한 권을 보내 주었었다. 출간을 하면 회원들 간에 서로 나누어 주는 것이 통례였던 터여서 인사치레를 한 것인데 그분이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읽는 내내 마치 연애편지를 읽듯이 가슴이 뛰었다. 내 글을 읽고 감동을 받은 애독자가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기쁘게 했다. 그분은 책을 받고 제목에서 호기심이 생겨 글을 읽은 후 소감문을 썼다고 편지에 적었다. 감사의 마음을 어찌 전할까 생각 끝에 나도 답신을 썼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제 그곳에도 목련, 개나리, 벚꽃이 만발 하였겠지요. 아니 진달래도 피었겠군요. 산촌에 살고 계신다 하니 부럽습니다. ‘TV 자연인’이라는 프로를 즐겨 보면서 자연의 품에 안겨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만, 요즘엔 병치레가 잦으니 큰 병원 가까이에 살아야 한다는 자식들의 만류에 마음만 있을 뿐이지요. 선생님은 어떤 연유로 산촌생활을 하게 되었는지 그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저는 무심천 하상도로 산책로를 걷는 게 유일한 낙(樂)이랍니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풀꽃도 보고, 나비도 보고, 살랑거리는 바람에 잔잔한 물보라를 일으키는 무심천 물가를 서성거리기도 한답니다.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지요.

  모처럼, 코로나19라는 핑계로 개으름을 피우다 집을 나섰습니다. 차를 타고 스쳐 지나가면서 무심천 제방에 벚꽃이 피였구나 하였는데, 어느새 흐드러지게 피었던 꽃잎이 마치 한겨울에 내려오는 하얀 눈처럼 바람결에 휘날리고 있네요. 그 모습이 아름답고 낭만적이기도 하지만 애처로운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이렇게 계절은 순리대로 오고 또 지나가고 있건만 미처 봄을 만끽하기도 전에 우리 곁을 떠나려 하네요. 아마도 느닷없이 들어 닥친 코로나19가 온 세상 사람들을 힘들고 혼란스럽게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선생님! 보내주신 소감문 잘 읽었습니다. 113계단 책 40여 편을 한 편 한 편 읽으며 마치 자신의 이야기처럼 공감하여 주셨더군요. 일일이 열거 할 수는 없지만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향수를 느끼고, 여고시절을 추억하며 우정에 대하여 생각하였고, 부모님 이야기에는 가슴 아파하며 그리워하고, 손주들 자랑을 하고 싶어지고, 남편과 소통의 오해에는 내편이 되어 맞장구를 쳐 주었네요. 사찰순례에는 합장으로 예의를 표현하여 주었구요. 또한 문예교실에서 교수님께 수학한 동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어 더욱 반가웠답니다.

  출간 후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에게 책을 보냈어도 이처럼 한자 한자 또박또박 정성껏 손 편지 글로 격려하여 준 사람은 없었지요. 아니 그동안 살면서 손 편지를 써 본적도 받아본 기억마저도 없어요.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면 손쉽게 글을 쓸 수 있으니까요.

 

  동시대를 살았다고 하여 글을 읽고 누구나 공감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얼마나 진솔한 마음으로 호의를 가지고 읽느냐에 따라 감동의 깊이도 달라지니까요. 책을 읽는 내내 함께 동일한 공감을 느껴 보아서 즐겁고 행복했다는 고운 심성은, 얼핏 본 선생님 모습과 일치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독서가 취미라는 서문을 읽고 소감문을 쓰고 싶었다는 선생님이 “수필은 지식과 어려운 학문으로 쓰는 게 아니고 유년을 추억하고 현재의 생활 안에서 얻는 작은 행복, 기쁨, 슬픔, 등 독자들로 하여금 공감대를 형성하면 좋은 글이라고 생각 한다”는 구절에 선생님이야말로 순수한 수필을 쓰는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근래에는 작가라는 직함을 내걸고 수많은 사람들이 수필을 쓰고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 시대가 되었지요. 예전 같으면 언감생심 학식과 덕망을 갖춘 문장가라고 하는 학자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지요. 평범한 사람도 일상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써서 발표하고 출간도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 묘한 것 같아요. 굳이 억겁의 세월을 거처야 만날 수 있다는 불가의 인연설이 아니더라도 단 한 번 먼발치서 바라만 보았을 뿐인 선생님인데 오래전부터 만나 온 지인처럼 친근감이 듭니다. 더구나 대학노트 세 장의 분량에 양면으로 빽빽하게, 볼펜을 들고 꼭꼭 눌러 쓴 손 편지 소감문을 읽으니 더 그러하였답니다.

  선생님! 우리 소중한 인연을 간직하며 아름다운 문우가 되어요.

  내내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빌겠습니다.

 

                                                                  2020년 5월에 장란순 드림

 

  이처럼 오랜만에 편지를 써본 적이 없어 편지를 쓰는 동안에도 나는 행복했다. 나에게 편지를 보내주신 그 분을 생각하며 보내준 글을 읽는 동안 진심으로 감동을 받았다. 다시금 내가 답 글을 쓰면서 내 글을 읽어 줄 문우를 만났다는 사실이 반갑고 좋다. 누군가에게 마음의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이보다 더 행복한 고민이 있을까. 그래서 푸르른 이 5월이 더 감사하고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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