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 장 란 순
일상에서 그저 대수롭지 않다고 치부해 버리는 행동이나 일이 간혹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마음을 아프게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살지 않았나 싶다. 무심코 마신 커피 한 잔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햇살 좋은 날 안국사로 향했다.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떠났던 여행이 아니기에 아무런 준비 없이 출발했다.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를 택해 가니 자연을 둘러볼 기회가 많아 좋았으나 휴게소가 없어 물 한잔 마시지도 못하고 달려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안국사는 전북 무주 적성산 정상에 자리했다. 해발 1600m의 고산지대여서인지 서늘하여 평지보다 7~8도 낮은 기온이다. 고산지대의 하늘은 눈이 시릴 만큼 파랗다. 둥둥 떠다니는 하얀 뭉게구름이 유랑을 떠나듯 길을 재촉한다. 잠시 쉬었다 가도 좋으련만 바쁘게 떠나가는 구름이 눈앞에 아른 거린다. 손을 내밀면 금방이라도 잡힐 것 같아 허공에 손을 휘둘러보아도 헛손질만 하다 공연히 머쓱해진다.
멀리 보이는 능선이 하늘과 맞닿을 듯 말 듯 한 것이 신기하다. 천상이 있다면 이런 곳일까? 이곳에 오면 마음속에 켜켜로 쌓여 있는 번뇌와 망상을 훌훌 내려놓고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청명하고 신선한 공기와 아름다운 주변 경관에 마음이 고요해 지는 듯하여 즐겨 찾게 된다.
일주문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지만 여느 때처럼 행사가 있는 줄 알고 요사채 마루에 잔뜩 쌓아 놓은 커피를 스스럼없이 한잔 타 마셨다. 산사에서 목이 마를 때 마시는 한 잔의 커피가 꿀물 같다. 달달한 커피 향의 맛을 음미하며 즐거움에 빠져있는데 “이 커피를 마시면 수색대원들이 마실 차가 없습니다!”라며 누군가 퉁명스런 말투로 타박을 하는 게 아닌가. 어리둥절하여 무슨 일이 있냐고 되묻는 내게 수색대원인 그녀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조난자가 있어 수색 중입니다.” 하고 대답한다. 아차!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내 생각만 하고 누구나 마시도록 놓아둔 것으로 착각하여 커피를 타 마시다니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사연을 듣고 보니 등산객이 안국사 참배 후 등산로에서 조난을 당하였는지 행방이 묘연하다고 한다. 조난자의 행방을 몰라 노심초사하는 고개 숙인 자식들의 모습이 애처롭다. 건강하게 산행을 왔다가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으니 얼마나 황당할까, 그 소식을 전해들은 친지들의 마음은 또 어떻겠는가. 자식들에게 힘내라는 뜻이라도 전하고 싶어 합장으로 예의를 표하고 조난자가 무사히 귀가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였다.
굳이 커피 한 잔을 마셨기 때문에 한 기도는 아니다. 내 가족이라 생각한다면 그 심정이 어떠할까. 생사를 알 수 없는 부모를 그리며 안타까워하는 자식의 가슴은 미어지고 슬픔은 천지를 덮으리라.
그 동안 많은 사찰을 참배 하였어도 정녕 타인을 위해서 진심으로 기도한 적이 있었는지 반문해 본다. 내 가족과 내 자식을 위해 정성껏 불공을 드렸지만 정작 타인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올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어찌 나와 내 자식들의 행복만을 바라며 살아왔는지 참으로 이기적인 삶이 아니었나 싶다.
불교경전에 보면 ‘무재칠시(無財七施)’라는 말이 있다. 돈이 없어도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 보시를 말하는 것이다. 즉, 얼굴에 화색을 띠고 부드럽고 정다운 얼굴로 남을 대하는 화안시(和顔施), 사랑의 말, 칭찬의 말, 위로의 말, 격력의 말, 양보의 말 등 말로서 얼마든지 베풀 수 있다는 언사시(言辭施), 착하고 어진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따뜻한 마음을 주라는 심시(心施), 호의를 담은 부드럽고 편안한 눈빛으로 사람을 보는 것처럼 눈으로 베풀라는 안시(眼施), 몸으로 때우는 것으로 짐을 들어준다거나 예의바른 공손한 태도로 남의 일을 돕는 신시(身施),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상좌시(床座施), 사람을 방에 재워주는 방사시(房舍施) 보시로서 굳이 묻지 않고 상대의 속을 헤아려 알아서 도와주는 것이다.
몸과 마음만으로도 할 수 있는 보시가 무궁무진 하거늘 돈과 물질이 따라야만 베풀 수 있다고 생각했던 지난날을 반성해본다. 재물에 예속되어 진정한 자비의 정신과 남을 위한 배려를 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를 뒤돌아보았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나와 이웃의 모든 사람들이 정을 나누며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세상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도 삶의 자세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산사를 내려가며 사소한 일에서부터 실천해야한다는 부처님말씀을 가슴으로 깨닫고 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