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손님 / 임이송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11. 2. 17. 17:13

본문

 

손님1

 

 외딴 동네에 승용차 한 대가 깊게 가라앉은 고요를 깨뜨리며 들어옵니다.

 저만치 논에서 이삭을 줍던 팔순 노모는 기역자로 꼬부라진 허리를 바쁘게 움직여 차를 따라 집으로 옵니다.

 텅 빈 마당에 오랜만에 사람냄새, 도시냄새가 가득합니다.

 아들과 손자는 뒤뜰에 있는 감을 따느라 시끌벅적하고,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가을 내내 가꿔놓은 텃밭의 배추와 무와 파를 뽑느라 손길이 바쁩니다.

 30년 전, 마당 가득 뛰어놀던 자식 대신 잠시 손자가 그 마당에서 맴을 돕니다. 아들이 사온 고기로 국을 끓여 온 식구가 모인 저녁시간, 몇 달 만에 처마 끝에 매달린 전등에도 불이 켜졌습니다.

 노모는 곤하게 자는 손자를 밤새도록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사람이 그리운 노모에게는 흘러가는 이 시간이 참으로 아깝습니다.

 산새 소리에 잠을 깬 아들과 며느리는 떠날 채비에 분주합니다. 햅쌀, 감, 무, 배추, 콩, 깨, 고추를 보자기에 싸서 차에 싣습니다. 팔순 노모의 일 년 농사를 고깃국 한 그릇과 바꿔 갑니다.

 길이 멀어 빨리 가야 한다며, 허깨비 어미만 남겨 둔 채 모두 서둘러 떠납니다. 조금만 더 있다가 가라는 말 대신 노모는 힘없이 연신 손만 흔듭니다.

 동구 밖 느티나무 아래에 서서 쌩 하고 달아나는 차 꽁무니를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시간이 멈추어버린 듯 노모의 눈은 길 끝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잡고 있는 다 닳은 지팡이가 허허로운 마음을 간신히 붙잡아 주고 있습니다.

 평생을 기다림으로 산 노모는 자식을 보내는 순간부터 또 기다림을 위해 삽니다.

 오래 전, 200살도 넘은 느티나무에게 치성을 드려 얻은 자식입니다. 평생 품어 살 것 같았던 그 자식이 언제부터인가 손님이 되어버린 쓸쓸함이, 늙은 느티나무를 쳐다보는 노모의 눈 속에 깊이 배어 있습니다.

 느티나무는 곧 손님처럼 떠나가 버릴 할머니를 말없이 내려다봅니다.

 그 느티나무를 하늘은 또 무심히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남은 자에게는 손님입니다.

 

손님2

 

 석양빛이 유난히 고운 저녁입니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몇 번을 더 맥없이 서 있던 할머니가 이제 보이지 않습니다. 느티나무도 몇 날을 목을 빼고 기다려 보았지만 할머니의 모습을 다시는 보지 못합니다.

 며칠이 지난 후, 할머니의 집 마당에 불이 환하게 켜졌습니다. 전에는 보지 못 했던 풍경입니다. 집 앞 골목까지 백열등이 나란히 켜졌습니다. 외딴 동네가 오랜만에 눈이 부십니다.

 이토록 환하게 불 밝힐 일 없는데, 더군다나 새 생명이 태어날 일은 더욱 없는데.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푹 가라앉은 공기는 마을 앞 연못 속 같습니다.

 잡초 하나 없이 잘 손질된 마당에 흰 무명천막이 여러 개 쳐집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무명천막은,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하얀 손짓인가 봅니다.

 할머니의 기다림이 계속 되었으면 평생 한 번도 들이밀지 않았을 얼굴들이 부랴부랴 찾아와서 고양이 같은 눈물을 흘리고 사라집니다. 죽어서야 만날 수 있는 묵은 그리움이 벌떡 일어납니다. 할머니의 미처 감지 못한 눈은 마당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마저 감겨집니다.

 언제나 손님 같았던 아들이 오늘은 주인이 되어, 먼 길 가는 노모를 배웅합니다. 상두꾼이 메기는 구슬픈 소리가 노모를 손님으로 떠나 보내는 아들의 마음을 되새김질 시킵니다. 그의 슬픔을 끊임없이 일으켜 세우는 건 노모의 긴 기다림과 외로움입니다. 기다림도 나이가 들고, 병이 들고, 죽는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그는 이제 외롭다는 말을 함부로 내뱉지 못합니다.

 나란히 줄 선 백열등 차례로 꺼지고 나면 이제 마당에 풀 뽑을 일 없습니다. 텃밭에 상추 심을 일도 없습니다. 장독대에 뽀얗게 내려앉은 먼지를 닦을 일은 더욱 없습니다.

 외딴 집의 역사는 손님이 떠나는 날 끝이 납니다.

 어느 시인은 노래합니다. “시골집 환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 마지막 불빛입니다.”

ㅍ느티나무는 굽은 허리로 올려다보는 동무를 잃어, 이제 기다릴 일 없습니다.

 하늘은 할머니를 품에 그러안아 더 이상 안타까울 일 없습니다.

 한 기다림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손님이 되어 먼 길을 떠났습니다.

 손님이 떠난 빈 집에는 이제 이끼만 무성할 것입니다.

 

 

  <창작평설>

 이 작품은 연작 작품이다. 그러나 손님1은 2와 독립해서도 존재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손님 2가 1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연작 형식으로 묶여졌을 것이다.

 이 작품의 문장 세계는 3인칭 문장세계다. 그러나 손님 1과 2는 다음과 같이 다른 시점視點의 문장세계다.

 손님 1은 3인칭 할머니 주인공 시점의 문장세계다. 손님 2는 3인칭 화자 시점의 문장세계다.

 문학작품에서 3인칭 문장세계는 창작형식의 문장세계가 된다. 의인화 문장이 창작문장 세계인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창작문학 작품이다.

 손님 1에서 형상화하고 있는 손님은 아들이 아닌 '곧 손님처럼 떠나가 버릴 할머니'이다.

 손님 2에서는 손님 1의 손님인 할머니가 떠난 '손님이 떠난 빈 집'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우리는 모두 남은 자에게는 손님입니다.'로 보면 될 것이다. 즉 이 작품은 손님을 형상화하고 있는 창작문학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소설인가, 동화작품인가?

 이 작품은 수필작품집에 수필작품으로 발표된 작품이다. 그런데 필자는 지금 "이 작품은 소설인가, 동화작품인가?"라고 묻고 있다.

 필자는 왜 수필작품으로 발표된 작품을 놓고 이것은 소설인가, 동화인가 묻는가?

 조연현 교수는 수필은 소설적 구성을 가질 수 있지만 소설이 아니고, 시적 감흥을 가질 수 있지만 시가 아니라고 하였다. 이것은 조연현 교수뿐만이 아니라 문학학문 일반의 문학론이다.

 시, 소설, 희곡, 동화 등 전통적인 창작문학과 수필문학이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소재를 어떻게 취급하느냐에 있다. 시, 소설 등의 전통적 창작문학에서는 소재를 작품 밖에서 허구화해 버린다. 그리고 허구화한 거기서 부터 창작작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수필은 소재 자체를 작품의 제재로 삼는다. 이 점이 시, 소설 등 전통창작문학과 수필이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다. 창작문예수필도 이 점에 있어서는 예외가 아니다. 창작문예수필도 소재 자체를 작품의 제재로 삼는다는 것이 본질적 창작조건이다.

 소재란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세계다. 즉 작가 자신의 경험에 의존한다. 다시 말하면 소재의 주인공은 1인칭 '나'이다.

 따라서 소재 자체를 작품의 제재로 삼고있는 수필문학 작품 속의 화자는 1인칭 '나'가 될 수 밖에 없다.

이 때 일반산문문학의 에세이의 '나'와 창작문예수필의 '나'의 다른 점은 에세이의 '나'는 문학화, 즉 창작화 시킬 필요가 없지만 창작문예수필의 '나'는 창작문학화 시켜야 된다는 점에서 두 문학이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에세이의 '나'는 작가 자신이다. 에세이는 작가 자신의 생각은 짓는 문학이다. 독자가 에세이를 읽는 목적은 창작된 상상력의 세계를 읽으려는 것이 아니다. 어떤 문제와 정서에 관한 작가의 생각이나 느낌을 읽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러나 독자가 창작문학을 읽는 목적은 작가의 생각이나 정서가 아니라 작가가 창작한 상상력의 이야기를 읽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러므로 창작문예수필의 '나'는 반드시 문학화, 즉 상상적 존재화를 시켜주어야 된다.

 그 본질적인 방법은 소재 자체의 이야기를 구성작업에 의해서 비현실화 시키는 데에 있다.

 물론 3인칭 시점의 문장법도 사용 할 수 있다. 그러나 3인칭 시점의 문장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액자수법을 써야 된다. 액자수법이란 액자 안에 사진이 들어 있듯이 작품 안에 또 하나의 작품을 삽입하는 형식을 말한다. 즉 1인칭 '나'의 문장 세계 안에 3인칭 시점의 문장 세계를 삽입하는 형식을 만들어 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같은 형식 창조가 없다. 곧바로 3인칭 시점의 문장세계를 창작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이론적으로 수필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학계 일반의 학설 대로 이 작품은 소설 작품으로 분류하거나 동화 작품으로 분류해야 할 것이다.

 창작문예수필 작가는 조연현 교수가 소개하고 있는 지구촌 일반의 문학 이론인 '수필이 소설적 구성도 할 수 있고, 시적 감흥도 창작 할 수 있지만 소설이 되거나 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과 같은 3인칭 문장법의 수필작품이 자꾸 출현하게 될 때에 그에 따른 이론 계발도 이루어 질 것이다. 그런 토의가 활발한 시대가 속히 오기를 기대한다.(문학평론가 이관희)

   

'추천우수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상 / 김상주  (0) 2011.02.19
어떤 계시의 목소리 / 이정신  (0) 2011.02.17
국수인생 / 임지윤  (0) 2011.02.15
필연씨의 하루 / 손정란  (0) 2011.02.15
젊은 날의 한 페이지/ 정태원  (0) 2011.02.15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