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신 평론가 조연현 선생님과 속리산 법주사 경내에서 찍은 이 사진은 책장 정리를 하다가 빛바랜 사진첩 속에서 나온 것이다. 사진 속에 쓰여 진 1965년 10월 19일이라는 글씨가 전생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1965년이면 지금부터 42년 전으로 내가 이십대 초반 초임지인 보은 중초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이다. 아, 바로 그 날이었어!
한참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나는 무릎을 쳤다. 신통하게도 나의 뇌는 42년 전의 그 날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당시 동국대학교 교수로 계시던 선생님이 학생들과 속리산으로 수학여행을 오셨고, 속리산에서 가까운 학교에 근무하던 내가 선생님을 뵈러 갔던 것이다. 선생님은 점심식사가 끝난 후 나온 과일을 한쪽만 드시면서 당뇨 때문이라고 하셨다. 가수 황금심씨의 노래 알뜰한 당신을 좋아하신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흑백 사진이라 법주사의 불타는 가을 단풍을 감상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그러나 1987년에 해체된 시멘트 불상을 배경으로 찍은 이 사진은 역사적 자료로도 훌륭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그 자리에 1990년에 완성된 청동미륵대불이 서 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나를 소개해 주셨을 때 혈기 왕성한 청년들은 박수를 치며 환영해 주었다. 제대를 하고 복학했다는 청년이 귀경 후에도 몇 번 편지를 하더니 답장이 없자 여교사와 사귄다는 소문을 내서 선생님께 말씀 드렸던 에피소드도 생각난다. 보은군 내북면 중초초등학교! 눈을 감으면 첫 출근 날 느꼈던 그 곳의 풍광이 어제인 듯 되살아나서 나를 그리움에 젖게 한다. 아버지는 4월초 처음 교사발령을 받고 임지로 떠나는 딸을 학교까지 동행해 주셨다.
봄비가 하루 종일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까지 마중 나온 전달부를 따라 학교에 당도 했을 때 나는 그만 탄성을 지를 뻔 했다. 열 그루가 넘는 아름드리 벚나무가 교문입구 양옆으로 쭉 서 있었는데 활짝 핀 벚꽃이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에 눈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논과 밭, 그리고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학교. 동화 속처럼 아름다운 그곳에서 나는 3년을 근무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하루를 보낸 후면 곧장 하숙집으로 돌아와 호롱불을 밝히고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중초는 내 일생에서 가장 많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색에 잠겼던 문학의 산실이다. 첫 단편소설 아픈미소도 이 곳에서 태어났다. 교실 유리창문을 통해 보이는 실타래처럼 하얗게 풀린 산길로 오랜지빛 자전거를 탄 우체부가 하루에 한번씩 왔다. 각종 잡지와 신문에 투고했던 글들이 활자화 되어 돌아와서 나를 기쁘게 했다. 지금도 오랜지빛 자전거를 보면 그 때가 떠올라 가슴이 뛴다. 교사들이 보는 교육용 월간잡지 교육자료 교단문단에 나는 어느덧 단골필자가 되었다. 조연현 선생님은 그 때 교육자료 교단문단의 심사위원이셨다. 그러니까 속리산 법주사에서 사진을 찍던 날은 근 2년 동안 편지로만 인사를 드렸던 선생님을 처음 뵙는 날이다. 스틱을 집고 서 계신 선생님의 모습은 여유와 멋이 있어 보이는데, 커다란 가방을 든 나는 잔득 긴장감이 배어있다. 가방 속에는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싶은 원고를 몇 편 넣고 갔을 것이다. 새삼 사진의 위력을 실감한다. 어쩌면 그냥 흘러가버렸을지도 모르는 소중했던 시간이 아닌가. 42년 전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 법주사 경내의 그 사진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고 싶다. 틀림없이 그는 은행잎이 노랗게 깔린 경내를 선생님과 함께 걷고 있을 때 옆으로 와서 사진 찍기를 권했을 것이다. 미륵불상을 배경으로 잡은 구도가 매우 안정감이 있고 멋들어진 글씨까지 넣은 재치가 가히 예술이다. 이듬해 봄 나는 집이 있는 청주로 이동발령을 받고 중초를 떠나왔다. 도시 생활에 재미가 붙고 혼담이 오가면서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결혼, 아이 낳고 사느라 바빠 안부 편지 한 줄 올리지 못하고 살았다. 시아버님 장례식 날 문상 오신 선생님을 보고 깜짝 놀랐다. 꼭 10년 만에 뵙는 것이다. 선생님이 시아주버님이 교수로 계시는 한양대학교 문리대 학장으로 오신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이민 간줄 알았지요. 글 써서 가지고 오세요.”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된 중년의 나에게 선생님은 다시금 젊은 날의 꿈을 일깨워 주셨다. 글을 쓴다는 것은 충실하게 사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글을 쓸 수밖에 없는 마음이나 인생이 있다고 말씀해 주시던 선생님! 선생님이 작고하신지도 벌써 26주기가 되었다. 그 시절 그 자리가 새삼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