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시내버스를 타려면 정류소로 가는 중간쯤에 옷 수선 가게가 하나 있다. 바로 앞에는 대한민국 어디든 배달을 할 수 있는 꽃 가게가 마주하고 있다. 추녀가 나직한 가게 안쪽 작업대 위에는 언제나 수선을 기다리는 옷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재봉틀 세 대가 놓여 있는 한쪽 벽에는 옷 색깔에 맞게 사용할 수 있는 여러 색의 재봉실이 대강 짐작으로 150개 정도 걸려 있다. 조그마한 전등이 밝게 켜진 재봉틀 앞에 오롯하게 앉아 있는 주인은 사십대 중반의 정필연 씨다.
필연 씨는 눈앞의 많은 일감 때문에 늘 바쁘게 지내면서도 아침 해가 솟아오를 때의 돋을볕처럼 환하게 잘 웃는다. 유행이 지난 옷을 맡기는 사람들이 까다로운 요구를 해도 그녀는 서그럽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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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다가 머리가 아프거나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싶을 때 할 일없이 옷 수선 가게에 간다. 갑자기 불쑥 찾아가도 재봉틀을 돌리고 있던 그녀는 화안한 얼굴로 커피를 끓이거나 따끈한 꿀물을 타서 사부자기 내놓는다. 지난 겨울에는 가스 난로 위에 고구마를 얹어 구워주기도 했다. 그녀에게는 무엇이든 다 받아낼 수 있는 맑은 눈빛과 삶이 뜨겁게 타오르거나 식을 때 그 옆을 지켜 줄 온도계가 있다. 그리고 다정한 목소리를 가졌다. 어쩌다 그녀가 보이지 않는 날이면 나는 서운해서 가게 안쪽을 기웃거려보기도 한다. |
그녀가 손보아 고치는 옷을 가만히 살펴보면 참 재미있다. 치마나 바지와 소매 끝을 올리거나 내리기도 하고, 바지 옆선을 줄이거나 넓히기도 하고 지퍼를 새로 달기도 한다. 웃옷의 품을 줄이거나 늘리기도 하고, 옷깃을 붙이기도 하고 떼어내기도 한다. 비옷을 고치기도 하고, 이불 홑청 솔기를 박음질 하기도 한다. 가방 끈을 달아주기도 하고 방석 씌우개도 기워준다. 어떤 때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치마나 바지 끝을 마무리 하는, 왼쪽에서 시작하여 오른쪽으로 바느질해 나가는 세발뜨기를 할 때도 있다. 청바지를 허벅지 중간길이에서 싹둑 잘라 버리고 아주 짧은 청치마를 만들기도 한다.
그녀는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것 외에 옷 고치는 일만 생각하는 것일까. 고개를 숙이고 바늘을 놀릴 때마다 사랑의 숨결이 옷 솔기 위를 지나간다. 그래서 맡겨진 모든 옷들은 그녀의 손 안에서 마땅한 예를 받는다. 그녀의 손에서 희망과 꿈을 새겨넣으니 옷들은 정직해지고 반듯해진다.
나는 그녀의 움직임 앞에서 시간이 딱 멈추어 버리는 듯한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이 멈춰진 시간 속에서 일에 온 정성을 다하는 그녀는 나에게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녀는 내가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지나치는 일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찾아낸다.
가게 안쪽으로 따스한 햇볕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볕이 고마워서 나는 오래도록 의자에 앉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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