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비평
창작문예수필은 무엇을 창작하는 문학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창작하는 문학인가?
창작문예수필에 관심 있는 독자가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 이런 문제들일 것이다.
이 작품이 그 대답을 해 주고 있다.
이 작품은 얼핏 보아서는 창작구조의 기본 구조라는 두 가지 방법 중 아무 방법에도 들지 않는 것 같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이것>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전혀 새로운 <저것>을 만들어내지도 않고, 또 <이것>이라는 소재 자체를 달리 변형시키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도 비평자는 '창작문예수필은 무엇을 창작하는가?'라는 질문에 이 작품이 그 대답을 해 주고 있다고 한다. 또 어떤 방법으로 창작하는가에 대한 대답도 해 주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이 작품은 국수 삶는 이야기가 소재다. 창작 방법에는 소재를 가지고 전혀 다른 어떤 것으로 만들어내는 방법과 소재 자체를 다른 모양으로 변형 시키는 방법이 대표적인 두 방법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국수 삶는 이야기 뿐이다.
그런가? 정말로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국수 삶는 이야기 뿐인가?
자세히 보자. 문학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남의 작품을 이 잡듯 해야 된다. 이 잡듯 하려면 옷을 벗겨야 된다. 그리고 뒤집어야 된다. 구석구석 까뒤집어 보되 특별히 솔기 속을 남김없이 까 뒤집어봐야 된다.
국수를 삶기 위해 냄비에 물을 올렸다. 조선간장과 멸치를 넣어서 다시 물을 만든다.
뜨거운 불에 끓인다.
이 문장은 본문에서 인용해 온 문장이다. 그런데 뭐가 빠졌지 않은가? 다시 한 번 더 보자. "국수를 삶기 위해 냄비에 물을 올렸다. 조선간장과 멸치를 넣어서 다시 물을 만든다. 뜨거운 불에 끓인다.'" 필자가 이 문장들 사이에서 빼어 놓은 문장이 하나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지난 1세기 동안 기존의 수필이라는 문학 아닌 문학이 입에 군내가 날 정도로 끓여먹고 또 끓여먹은 국수 삶는 방법은 천편일률적으로 똑 같은 방법이었다. 이제 독자들은 그런 군내나는 국수에 아예 진저리를 치고 있다. 그리하여 차라리 라면을 먹겠다고 하여 마켙마다 라면이 동이 날 정도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국수를 삶기 위해 냄비에 물을 올렸다. 조선간장과 멸치를 넣어서 다시 물을 만든다." 와 "뜨거운 불에 끓인다." 사이에 다른 무엇이 들어 있다. 필자가 위의 예문에서 일부러 빼 놓았던 것이 그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수필 1세기 동안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어쩌다 가뭄에 콩 나기 식으로 밖에 찾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것! 창조적인 것!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
"인생이란 솥에 내 나이를 넣고"가 그것이다.
이것이 창작문예수필의 정통 창작세계다. 창작문예수필은 무엇을 창작하는가? 소재에 대한 비유(은유 · 상징)를 창작하는 문학이다.
이 작품의 소재는 무엇인가? 국수 끊이는 이야기다. 이 작품이 창작하고 있는 국수 끓이는 이야기의 은유는 무엇인가? "인생이란 솥에 내 나이를 넣고"가 그것이다.
이래도 창작문예수필이 무엇을 창작하는 문학인지 모르시겠는가? 그러시다면 창작문학 할 생각 마시고 에세이스트로 성공하도록 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렇게 속옷까지 까 뒤집어서 이 잡듯 창작문예수필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는데도 그것이 눈에 안 들어 오는 분은 백철 교수께서 '문학은 형상이다. 그러므로 사물을 형상적으로 인식해야 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귀에 안 들어 오는 분일 것이다. 대신 <국수는 우리 생활에 빠질 수 없는 양식거리다. 요리하기 쉽고, 보기 좋고, 맛도 담백한 음식이다. 없이 살던 시절에는 국수 한 다발만 있어도 든든했었다> 라고 개념적인 사고방식에 출중한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임이 틀림 없을 것이므로 창작작가 되기 보다는 에세이스트로 성공하도록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은유를 창작하고 있다. 비평자가 굵은 줄 쳐 놓은 곳을 살펴보시기 바란다.
작가는 어떻게 은유를 창작하고 있는가? 그 방법은 시(창조)적 상상력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작가의 진정한 능력은 상상력에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상상력은 누가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만큼 상상력의 가치를 창작의 절대 능력으로 여긴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상상력도 훈련을 통해서 창조적 능력으로 터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문학평론가 이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