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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인생 / 임지윤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11. 2. 15.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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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인생 / 임지윤

 

우리 집은 일요일 낮이면 라면을 끓이지만 나는 라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시골에서 직접 밀을 심어 만든 시꺼멓고 거칠한 국수가 먹고 싶다.

 국수를 삶기 위해 냄비에 물을 올렸다. 조선간장과 멸치를 넣어서 다시 물을 만든다.
 
인생이란 솥에 내 나이를 넣고 뜨거운 불에 끓인다.
 
호박을 썬다.
 
내 인생을 가지런히 다듬질한다.
 
초록색의 꿈을 넣고 휘젓는다. 끓는다.

 가지런하게 차곡차곡 쌓여진 수많은 욕심들을 넣는다. 사회라는 집게로 뭉치지 않게 조금씩 거미줄처럼 엉키도록 잘 젓는다. 부르르, 보글보글, 하얀 녹말이 맥주 거품처럼 넘친다. 내 청춘인가 보다. 단단하던 내 초록색 꿈이 숨죽이며 끓고 있다.

 뜨겁게 엉켜있던 것들이 쏟아지는 찬물에 벼락을 맞는다.
 
퍼지지 않는 삶이 되기 위해 뜨거운 기운을 가셔낸다.
 
물기를 뺀다. 더 이상 처지고 퍼져서 탄력 잃은 국수가 되기 전에 매끄러운 상태로 건져내야 한다.

 상큼하고 진한 청춘의 오이를 썰고, 삶의 고단함에 영양을 주는 고기를 다지고, 무덤덤한 맛 같지만 화려한 색을 지닌 당근으로 곱게 채를 썰어 삼색의 고명을 얹는다.

 고슬고슬한 김가루를 뿌리고 개운한 멸치 다시 물을 붓는다.
 
눈물 나는 쪽파와 세상 매운 고춧가루를 엄마의 마음인 조선간장에 섞는다.
 
참기름을 친다. 때로는 살다 보면 매끄럽고 고소한 삶이 내게도 도는 것 같다.
 
부러울 것 없는 포만감이 밀려온다. 세상이 내 것 같다.
 
그러나 뒤끝은 허전하다. 먹지 못한 밥 생각이 나는 것일까.

 국수 위에 가려졌던 거품이 아직 덜 걷혀진 것일까. 싱거운 인생이 되지 않으려고 인생의 짠맛을 너무 섞은 탓인가. 누구든 선택하지 않은 삶이 그리운 법이다.

 담백한 국수 맛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라면을 먹지 않으려고 한다. 배가 고픈지 부엌을 들락날락하면서 국수가 끓고 있는 솥을 바라보고 있다. 아이들에게도 또 다른 국수 인생이 펼쳐지겠지. 국수 맛을 느끼는 날이 올 테지.

 

 

   

창작비평

  창작문예수필은 무엇을 창작하는 문학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창작하는 문학인가?

  창작문예수필에 관심 있는 독자가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 이런 문제들일 것이다.

  이 작품이 그 대답을 해 주고 있다.
  이 작품은 얼핏 보아서는 창작구조의 기본 구조라는 두 가지 방법 중 아무 방법에도 들지 않는 것 같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이것>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전혀 새로운 <저것>을 만들어내지도 않고, 또 <이것>이라는 소재 자체를 달리 변형시키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도 비평자는 '창작문예수필은 무엇을 창작하는가?'라는 질문에 이 작품이 그 대답을 해 주고 있다고 한다. 또 어떤 방법으로 창작하는가에 대한 대답도 해 주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이 작품은 국수 삶는 이야기가 소재다. 창작 방법에는 소재를 가지고 전혀 다른 어떤 것으로 만들어내는 방법과 소재 자체를 다른 모양으로 변형 시키는 방법이 대표적인 두 방법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국수 삶는 이야기 뿐이다.
  그런가? 정말로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국수 삶는 이야기 뿐인가?

  자세히 보자. 문학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남의 작품을 이 잡듯 해야 된다. 이 잡듯 하려면 옷을 벗겨야 된다. 그리고 뒤집어야 된다. 구석구석 까뒤집어 보되 특별히 솔기 속을 남김없이 까 뒤집어봐야 된다.

  국수를 삶기 위해 냄비에 물을 올렸다. 조선간장과 멸치를 넣어서 다시 물을 만든다.
 
뜨거운 불에 끓인다.

  이 문장은 본문에서 인용해 온 문장이다. 그런데 뭐가 빠졌지 않은가? 다시 한 번 더 보자. "국수를 삶기 위해 냄비에 물을 올렸다. 조선간장과 멸치를 넣어서 다시 물을 만든다. 뜨거운 불에 끓인다.'필자가 이 문장들 사이에서 빼어 놓은 문장이 하나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지난 1세기 동안 기존의 수필이라는 문학 아닌 문학이 입에 군내가 날 정도로 끓여먹고 또 끓여먹은 국수 삶는 방법은 천편일률적으로 똑 같은 방법이었다. 이제 독자들은 그런 군내나는 국수에 아예 진저리를 치고 있다. 그리하여 차라리 라면을 먹겠다고 하여 마켙마다 라면이 동이 날 정도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국수를 삶기 위해 냄비에 물을 올렸다. 조선간장과 멸치를 넣어서 다시 물을 만든다."  "뜨거운 불에 끓인다."  사이에 다른 무엇이 들어 있다. 필자가 위의 예문에서 일부러 빼 놓았던 것이 그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수필 1세기 동안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어쩌다 가뭄에 콩 나기 식으로 밖에 찾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것! 창조적인 것!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

  "인생이란 솥에 내 나이를 넣고"가 그것이다.

  이것이 창작문예수필의 정통 창작세계다. 창작문예수필은 무엇을 창작하는가? 소재에 대한 비유(은유 · 상징)를 창작하는 문학이다.
  이 작품의 소재는 무엇인가? 국수 끊이는 이야기다. 이 작품이 창작하고 있는 국수 끓이는 이야기의 은유는 무엇인가? "인생이란 솥에 내 나이를 넣고"가 그것이다.
  이래도 창작문예수필이 무엇을 창작하는 문학인지 모르시겠는가? 그러시다면 창작문학 할 생각 마시고 에세이스트로 성공하도록 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렇게 속옷까지 까 뒤집어서 이 잡듯 창작문예수필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는데도 그것이 눈에 안 들어 오는 분은 백철 교수께서 '문학은 형상이다. 그러므로 사물을 형상적으로 인식해야 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귀에 안 들어 오는 분일 것이다. 대신 <국수는 우리 생활에 빠질 수 없는 양식거리다. 요리하기 쉽고, 보기 좋고, 맛도 담백한 음식이다. 없이 살던 시절에는 국수 한 다발만 있어도 든든했었다> 라고 개념적인 사고방식에 출중한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임이 틀림 없을 것이므로 창작작가 되기 보다는 에세이스트로 성공하도록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은유를 창작하고 있다. 비평자가 굵은 줄 쳐 놓은 곳을 살펴보시기 바란다.

  작가는 어떻게 은유를 창작하고 있는가? 그 방법은 시(창조)적 상상력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작가의 진정한 능력은 상상력에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상상력은 누가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만큼 상상력의 가치를 창작의 절대 능력으로 여긴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상상력도 훈련을 통해서 창조적 능력으로 터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문학평론가 이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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