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을 벗어 양손에 들고 맨발로 황톳길을 살며시 밟았다. 흙에 발바닥이 닫는 순간 시원하고 촉촉한 느낌이 참으로 보드랍다. 발에 힘을 주어 걸음을 옮기려하니 빨판에 빨려 들어가듯 발바닥이 땅에 찰싹 붙는다. 발목을 움직이려 해도 꼼짝을 안한다. 주춤하고 섰다. 아니 폭신한 감촉에 마냥 서있고 싶었다.
명소로 잘 알려진 계족산 황톳길이다. 십 수 년 전 이곳에 들렀던 한 기업인이 맨발로 숲길을 걷고 난 후, 밤에 숙면을 취하게 되었고 머리도 맑아진 경험이 동기가 되어 맨발로 밟기에 좋은 황토를 가져와 깔기 시작하였다고 전한다.
발이 진흙에 찰싹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걷는 길이 힘이 들어가긴 하여도 가파르지 않고 완만한 산길이어서 오르기가 수월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맨발로 오가는 황톳길인 터라 딱딱하게 굳어지지 않도록 수시로 물을 뿌려주는 관리자의 노력 덕분인지 폭신폭신하여 걷기에 그만이다. 질척한 곳엔 발이 쑥쑥 들어가 잘 빠지지 않는 곳이 있어도 발 마사지를 받기라도 하는 것처럼 인도와 황톳길을 들랑날랑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황톳길에 찍힌 크고 작은 여러 모양의 족적들은 누구의 것일까? 신기하여 휴대폰으로 한 컷 찍어보니 선명하게 들어나는 발모양이 예술이다. 비틀비틀 넘어지려하자 서로 손을 잡아주며 다정하게 걷는 연인, 어깨동무를 하고 장난을 치며 걷는가 하면 홀로 참참이 걸어가는 이도 있다. 어떤 아이는 발이 흙에서 빠지지 않자 아예 털썩 주저앉아 얼굴에 황토를 바른다. 찰진 황토를 조몰락거리며 놀이를 하는 모습이 천진스럽다.
이때, 뱀이다! 누군가 소리친다. 황톳길 한가운데 구렁이 한 마리가 똬리를 틀었다. 모두가 섬찟 한 표정을 지으며 재빨리 피해 가지만 호기심에 기웃거리며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고도 뱀은 요지부동이다. 아랑곳없다는 듯 한참동안 머리를 꼿꼿하게 새우고 혀를 날름거리더니 스르르 사라진다. 뱀도 황토의 효능을 알고 힐링을 하려고 나온 건 아닐까? 간혹 촉촉한 곳에 사는 지렁이도 나와서 꿈틀대며 머물다 제 갈 길을 간다. 이 나무 저 나무를 날아다니는 각종 새들까지, 사람과 동물과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숲속의 향연장이 따로 없었다.
황톳길 옆쪽의 세족 장에서 발을 씻은 후 쉼터에 잠시 쉬어가란다. 아름드리나무 아래 팔각지붕의 정자가 그늘에 살짝 가려져 더욱 운치를 자아낸다. 계곡에서 흐르는 맑은 물소리와 살랑살랑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얼굴을 간질이며 해찰을 해대지만 그래도 나는 좋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정갈한 마루에 앉아 준비해간 간식과 차 한 잔을 마시는 여유로움이 더없이 행복하다. 더구나 황톳길을 맨발로 걸으면 혈액순환, 소화기능, 당뇨, 치매예방, 피로회복, 두통, 불면증해소에 치유가 된다는 입구의 팻말을 읽어서일까? 전신의 노폐물이 다 빠져나가는 듯 심신이 개운하고 날아갈 것만 같다. 일상에서 쌓였던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걸 보니 에코 힐링'eco healing'(지치고 상처 입은 몸과 마음을 자연 속에서 치유하는 일)이라는 신조어가 걸맞지 않나 싶다.
주변을 휘둘러보았다. 온갖 나무들과 야생화가 지천으로피어 향기로운 곳에 숲속음악회 공연장이 자리했다. 수려한 풍경이 낭만적이다. 주말에는 야외 숲 속 음악회 ‘에코페라 뻔뻔(Fun Fun)한 오페라단'의 클래식 공연으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단다. 평일인 지금은 연주자도 관객도 없어 고요하다. 나 홀로 무대가 보이는 관람석에 앉아 지그시 눈을 감았다. 서서히 감미로운 음악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마치 잠자는 숲속을 깨우려는 듯 격렬한 선율이 흥을 돋운다. 어깨를 들썩이며 음악소리에 동화 되어가는 나는 어느새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어쩌면 망중한을 즐기고 있던 꽃과 나무와 새들과 바람 소리가 잘 왔노라고 나를 환영해 준 것은 아니었을까?찰나에 다녀온 환상속의 숲속음악회였었나 보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울창한 나무들이 들어선 호젓한 산길을 천천히 걸으며 심호흡을 한다.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몸에 좋은 피톤치드가 휘산하는 듯 청량한 공기부터 다르다. 산 그림자가 드리워진 그늘인가 하면 쨍하고 햇살이 내려와 어우러지며 묘한 조화를 이룬다. 자연의 신비로움을 어찌 말로 다 표현 할 수 있으리. 가끔은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자연 속으로 들어가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하고 산림욕을 하고 황톳길, 아니 황톳길이 아니어도 괜찮다. 나무와 숲이 있는 곳, 어느 장소에서라도 에코 힐링 하여보자. 삶의 활력소가 될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