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길
도 종 환
산방으로 오는 좁은 고갯길을 넘는데 강아지만한 어린 고라니 한 마리가 놀라 고개를 돌리고 쳐다봅니다. 그동안 차 불빛 같은 건 본적이 없는지 그냥 서 있습니다. 나도 그냥 차를 멈추고 서 있었더니 고라니는 길가 풀숲에 가서 쪼그려 앉습니다. 가서 덮석 안아올까 하다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자연에 사는 것들은 자연에서 자라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데려오면 어미는 얼마나 애가 타서 낮이고 밤이고 우리집 근처를 맴돌겠습니까? 다만 두어달 후면 기온이 뚝 떨어지고 눈발이 흩날릴 텐데 그 전까지 빨리 몸집이 커지고 튼튼해지길 바라며 고개를 넘었습니다.
뒷마당에 차를 대려는데 산토끼가 풀을 뜯습니다. 요즘은 매일 내려오다시피 합니다. 내가 게을러 토끼풀과 질경이가 제법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데고 그냥 두었더니 산토끼들에게는 아주 좋은 텃밭이 되었습니다. 산토끼도 천천히수풀 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기는데 크게 놀란 표정은 아닙니다. 곁눈질로 저를 쳐다보는 눈길이 식사 시간에 불쑥 나타나 방해를 받는 게 탐탁치 않다는 표정입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려는데 푸드득 하는 소리가 추녀 밑에서 납니다. 손전등을 비추며 이리저리 살피고 있으니 커다란 새 한 마리가 추녀 밑의 벌집 속에서 나옵니다. 추녀 밑에는 항아리만한 벌집이 있습니다. 벌들이 떠나고 난 뒤 비어 있는 벌집입니다. 언제부턴가 새들이 그 윗쪽을 파내고 거기 들어가 살고 있습니다. 내가 손전등을 비추고 있어도 날아가지 않는 걸 보니 그 안에 지켜야할 새끼가 있거나 알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만 생각하면 금세 날아갈 텐데 빤히 내려다 보며 고개를 갸웃 거릴 뿐 날아가지 않습니다. 나도 올려다 보며 그냥 두고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날짐승도 길짐승도 벌레들도 내 집을 제 집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냥 들어와 삽니다. 아니 사실 나도 이 숲에 그냥 들어와 살고 있는 거지요. 이 산속에 사는 짐승이나 벌레나 곤충들에게 물어보지 않고 불쑥 들어와 살고 있으니 서로 결계하기는 마찬가지이지요.
일찍이 용아화상(龍牙和尙)은
"문간에 서 있는 나무를 깊이 생각한다.
새들로 하여금 깃들게 하는데
오는 자 무심코 받아드리고
가는 자 다시 오길 바라지 않는다.
사람 마음이 저 나무 같기만 한다면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련만"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나무의 마음으로 살 수는 없겠지만 내 곁에 깃들어 살고자 하는 것들은 아무 욕심 없이 받아드리고자 합니다. 삿된 마음이나 욕심을 조금 내려 놓으면 편안한 길로 갈 수 있다고 숲은 가르쳐 줍니다. 그 길은 사실 쉬운 길입니다. 이현주 목사의 말씀대로 "쉬운 길을 쉽게 가는 것이 불보살(佛菩薩)의 길이요, 쉬운 길을 어렵게 가는 것이 중생의 길"입니다. 우리가 사서 고생을 하며 어렵게 가고 있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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