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洗心
김 홍 은
선박船舶 안에 물이 가득 차면 배가 무거워 잘 못 갑니다.
물을 퍼내야 가볍게 갈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탐
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없애면 이것이 바로 깨달음의 경
지에 오른다고 하였습니다. 다섯 가지를 버리고, 다섯 가지
를 끊고, 이 뿌리를 생각하여 닦으라고 하였습니다.
다섯 가지 집착을 분별할 줄 알면 생사의 깊은 물을 건널
수가 있다고 합니다.
언젠가 스님이 내게 들려준 법문이 떠올랐다. 그러면 오늘은 스님이 날 시험을 하시는 건가. 그렇지 않으면 유혹이라도 하여보겠다는 건가. 도대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쩌자고 연구실에 가만히 있는 나를 끌어내어 봄나들이를 하자는 것인가. 그러면 내가 그 동안 스님을 흠모하고 있음을 눈치라도 챘단 말인가.
너무도 화창한 봄날이다. 자연도 인간도 음양이 화합하여 조화를 이룸에 봄은 더욱 현란한가보다. 어디쯤 차가 달리고 있을 무렵 욕심이 일고 있었다.
어찌 이 중생이 그리도 쉽게 오욕을 끊을 수 있단 말인가. 저 미물의 곤충도 모두가 먹고 살려고 하늘을 날며 짝을 짓고, 하찮은 풀과 나무도 봄이 되어서 꽃을 피우고 수분受粉을 하는데 하물며 인간인들 이를 끊고 살아간다는 게 이치에 맞는 일이라고 생각이나 되는가.
스님은 내가 마음속으로 묻고 있는 질문을 알아듣기라도한 듯 묵묵히 창밖을 바라보면서 무슨 깊은 사념에 잠겨 있는 듯하였다. 도대체 무슨 일로 내게 전화를 하였단 말인가. 그리고 화창한 이 봄날의 호젓한 산길을 단둘이서 어디를 가자는 것일까.
먼 산기슭마다 나뭇가지는 연둣빛으로 가득하고, 진달래꽃은 만발하여 활활 타오르는 꽃불로 내 마음을 옮겨 붙어 현기증이 날것만 같다. 오늘따라 바라보이는 자연들이 예사롭게 보이질 않는다. 나뿐만 아니라 스님도 그렇겠지. 나는 동화속의 왕자라도 된 양 공연히 신바람이 나 있었지만 더욱 조심스럽게 핸들을 움직였다. 인간이 먹고 입고 자는 것을 참아내기도 어렵다지만 나이가 차면 몸으로부터 스스로 일어나는 성욕을 어떻게 이겨낸단 말인가.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 중에 하나가 또한 성性이 아니겠는가.
십여년 넘도록 가끔 스님의 거실에서만 거리를 두고 엄한 모습 앞에 늘 주눅 들어 마주해 가면서 뵈었다. 그러나 오늘이야말로 이처럼 편안하고 한가롭게 부담 없는 사이가 되어 어디론가 남녀가 가고 있는 이 순간이야말로 봄을 맞고 있는 자연들의 즐거움과 무엇이 다르랴.
청천을 지나 화양동을 향하여 달렸다. 봄바람은 싱그러운 천사의 손길처럼 느껴졌고, 산기슭에 서있는 속잎 트이는 나무들은 모두가 꽃이고, 계곡으로 흐르는 맑은 물위로 부서지는 은빛물결은 피아노 건반위로 쏟아지는 달빛쏘나타의 음률처럼 들리는 것 같다. 이 찬란한 마음의 율동, 사랑과 행복함이란 이런 순간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바로 마음의 평화를 가져 왔을 때, 가장 아름답고 가장 고요하지 않은가. 스님과 오랜 세월을 두고 가끔 시간을 마주하여 왔지만 오늘만큼 맑고 깨끗하고 순수하게 가까이서 느껴본 적은 없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드넓다. 잔잔한 푸른 바다의 수평선 너머로 항해하는 황홀함으로 무인도를 찾아가는 기분이다. 그런데 도대체 스님은 무슨 상념에 잠겨 있길래, 아무런 말씀도 없이 아까부터 차창 밖만 내다보는 것일까. 그리고 손에 든 저 낡은 바랑은 무엇일까.
인생의 고독이 쌓인 바랑을 걸머지고 절로부터 도망을 쳐 속세로 몸을 던지려는 것인가. 바랑 속에다 불경을 넣고 바람처럼 떠 다녔을 지난날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그동안 스님과 몇 차례 나들이를 하여 보았지만 언제나 빈손으로 다니시던 분이었기에 더욱 의문이 간다.
나는 잠재우던 사내의 본색이 왜 자꾸만 들어 내지려 하는 건가.
미모의 젊은 여인을 옆에 두고도 아무런 감정이 없다면 사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저 대청마루처럼 시원스런 넓은 이마, 간드러진 초승달 같은 눈썹에다 쌍꺼풀진 양미간에 선해 보이는 눈매. 거기에 오똑한 콧날에 막 피어날 듯한 연꽃 봉오리처럼 은은한 빛깔의 입술과 도톰한 고운 양 볼이며, 정성드려 빚어낸 송편 같은 귀, 그리고 백옥같이 깨끗한 하얀 목덜미. 위엄은 배어 있되 애교스런 목소리에 화사한 미소를 머금은 이 여인을 두고 어느 누가 반하지 않겠는가.
남의 앞에서는 지성을 찾고, 인륜을 따지며 교육자라는 이유만으로 성인군자의 가르침을 따르고, 이를 가르치며 지키려 노력하며 왔건만 오늘은 방탕이라는 단어에 빠져 저 스님을 유혹하리다. 내 인생의 포장을 벗겨버리고 그저 한 마리의 야생마가 되어 파릇파릇하게 돋아난 풀밭에 누워 마음까지 풀물을 드리고 싶다. 이런 마음의 갈등을 느끼며 산 고개를 넘고 있었다.
사람이라면 인륜을 따르고 예의를 지키는 게 사람의 도리라 하였고, 하늘을 우러러보나 땅을 굽어보나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사는 부앙무괴俯仰無愧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비구니가 아니던가. 그러나 스님도 이 봄은 견뎌내지 못하고 마음을 어찌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닌지도....
아마 스님은 이런 유혹을 담은 날들도 수없이 많았겠지. 그런데 마음의 유혹들을 어떻게 떨쳐버리고 아름답고 고고하게 인생을 지켜 왔을까. 그래 맞아 예불이란 게 있고, 백 팔 번뇌를 잊는 기도가 잡념을 떨치게 하였겠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 법당에서 지칠 줄 모른 채 염불을 하며 절을 하던 모습이 스친다.
빈 독도 물이 고이면 넘치는 법이지. 마음으로부터 넘치는 욕정을 덜어내야 한다. 수색을 마음대로 퍼낼 수 없는 스님이 공연히 가련하다는 생각이 들며, 언젠가 소설에서 읽었던 여승들의 생활을 그려낸 글의 부분이 떠올랐다.
열기가 많은 한 여승은 욕정이 넘쳐 이를 이겨내려고 한겨울의 얼어붙은 계곡의 얼음을 깨고, 몸은 물속에 풍덩 빠트렸다가 나와서 달빛에 서서 장삼자락으로 물기를 닦아낸다는 구절에서 인간의 본성을 참아내는 아픔을 느꼈었다. 인고의 세월을 견뎌낼 때 우리의 삶은 더욱더 아름다운가보다. 어쩌면 이 스님도 수 없는 이런 날들이 오고 갔겠지.
오늘따라 스님이 유난히 아름답게 보인다. 나무도 봄이 되어 물이 오르면 가지마다 아름답듯이 스님의 순수한 그 모습이 봄바람을 쏘여서인지 상기된 얼굴이 한 송이의 꽃 같다.
"교수님. 왼쪽 길로 가세요. 이 산을 넘으면 목욕탕 물이 참 좋아요. 우리 목욕하고 가요."
나는 목욕을 하고 가자는 이 한마디에 사정없이 숨이 막혀오는 듯하였다. 그리고 스님이 한말을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하며 자신도 모르게 뜻도 모르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 튀어 나왔다. 그리고 내 온몸에서는 물기가 촉촉히 돌고 있었고 자신도 모르게 긴 한숨이 몰아쳐왔다.
내 오욕의 때를 모두 씻고 가자는 건가. 세심洗心, 세심을 수없이 되 뇌이면서 멀찌감치 길가에 버티고 서 있는 안내판이 알려주는 대로 초행길을 조심스럽게 달리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언제나 바른 도道를 생각하며, 몸과 마음을 바로 지키지 못하면 어찌 수제修齊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바른 생각의 행실을 하는 것만큼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또 있겠는가.
법法으로 살면 범犯함이 없어 착함을 더한다고 하질 않던가. 살아오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언제나 자신의 생각으로 추측하고 판단하여온 날들이 얼마나 많았나.
오늘도 나 혼자만의 착각이 아닌가. 내 마음의 그릇됨도 잊고 부끄러워 할 줄 모르며, 수오지심羞惡之心만 따지며 살아온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꿈틀거리었다. 차는 꽃처럼 연둣빛 속잎이 가득히 피어나 있는 꼬불꼬불한 낙엽송 숲길을 조심스럽게 달리었다. 어느 때보다 차창 밖으로부터 스며드는 봄 향기가 가슴을 채웠다.
어느새 숲속에 싸여있는 목욕탕 건물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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