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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선주 ㅡ 유혜자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10. 11. 2.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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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독한 선주

                                                                                                      유혜자

 

 가을, 건조한 거리의 햇빛은 가로수 잎세의 안쪽으로 파고들어 여름내 숨겨 있던 나무줄기와 둥치의 빛깔을 정결하게 드러내게 한다. 무성한 잎새들에 가려 있던 나무의 정체, 화려할 때는 막연하게 짐작만 하다가 가을의 투명한 대기 속에서나 눈여겨 보는 생리를 탓해야 할까.

 사람도 젊음을 지나서 어느 자리를 떠난 자연인일 때 참모습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작년 가을, 문화관광부 주관의 회의에 윤선생님과 함께 참석한 일이 있다. 그때 어느 중진작가가 함량미달의 작가들을 배출하는 문학강좌를 싸잡아 매도했는데 반론 기회도 안 준 주최측에 윤선생님은 불만이셨다. 나는 그 자리가 아니더라도 수필가가 매달, 혹은 계절마다 쏟아지는데비해 수준은 떨어졌다는 염려의 소리를 자주 들어온 터라 온당한 지적으로 여겼었다.

 그러나 70년대 부터 수필문학 이론의 정립과 질적 향상에 전념해온 윤선생님의 처지에선 도매금으로 무책임한 혐의를 받는 것이 적절치 않았다. 학자이며 수필가, 수필지도자로서의 긍지와 자존을 위하여 실력 있는 수필가 양성을 고집하시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문학인 모임에서 옆자리에 앉게 되어 그의 소신을 들은 바 있다. 수필가 양산 태세에서 자신은 질적 향상을 위하여 엄격하게 추천하기 때문에 성급한제자들의 불만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등단 후에도 끊임없는 공부를 독려하고, 명분 없는 상 제정은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그 당시는 솔직히 예기를 들으면서도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소신으로 출발했다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변했을 텐데 지속될 수 있을까"하고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었다. 그러나 몇 년 동안 받아본 수필집들 속에서 이따금 산딸기처럼 새콤하고 매력 있는 작품들을 발견할 수가 있었는데, 그 작가들이 번번히 윤선생님의 제자임을 이력 난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70년대 중반 수필중흥의 붐이 일 때 만난 윤선생님이지만, 자주 대했던 것은 70년대 후반이었다. MBC 라디오에 '남성살롱'이란 생방송 프로그램이었는데 타부서의 동료 PD가 멋진 고정 패널들을 정했다고 내게 자랑을 했다. 그 중의 한 분이 [다리가 예쁜 여인]이니 [잊어버리고 싶은 여인] 등 이색적인 수필집 제목에 호기심이 나서 정했다는 윤교수님이셨다. 정작 윤교수님을 만난 PD는 첫 인상이 과묵해 보이는 스타일리스트여서 달변이 요구되는 라디오에 적격자일까 염려를 했었다. 그러나 해박하고 재치 있는 화술로 6개월 동안이나 지속하셨다. 그 풍부한 소재와 화술의 비밀이 넓은 방에서도 알 수 있었다.

 그 후로도 오랫 동안 지면과 화면에서 만날 수 있는 다소 화려한 명성의 윤교수님이셨다. 그런데 1994년 봄, 그 내면에 숨겨진 진지함과 수필에대한 열정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론과 실제'가 함께 하는 심도 있는 수필을 주장한 윤교수님이 학무적인 연구를 위하여 [한국수필학연구소]를 세우고 [수필학] 창간호를 발행한 직후였다. 그 책에 실린 16분의 심오한 이론을 미처 독파하지 않은 처지에 교육방송 TV '문학산책 수필에로의 초대'에 함께 출연하면서 말씀대로 실천하는 진면목을 엿볼 수 있엇다. 그중애도 수필이 독자들에게 좋은 인식을 주려면 무엇보다도 수필가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내용에서 "단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가, 6개월 혹은 일년이 걸렸다는 말이 수필계에서 나왔다고 하면 수필의 발전이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 잊히지 않는다.

 성경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사람들이 약해짐을 보고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며 홍수로 지면에서 쓸어버리기로 한다. 그래서 의인 노아에게 그 가족과 모든 종류의 생물 한 쌍을 대피시킬 방주를 만들게 하였는데 노아는 많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혼탁한 풍토, 낮은 수준의 책들로 수필이 공해로 폄하되는 서글픈 세태에서 오염되지 않도록 큰배를 마련하신 윤선생님도 고독한 선주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와 윤재천 '수필의 길 40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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