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의 불꽃 / 고 동 주
인체에 달린 발의 역활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설 수 있다는 것과, 걸을 때 땅 바닥을 디딜 수 있다는 기능쯤으로만, 그러니까 그 부위를 손처럼 창조성이 있을 것이라곤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 철벽같은 고정관념이 깨어졌다.
어느 봉사단체에서, 의지 할 데 없는 스무여 명의 노인들을 모시고 합동 칠순잔치를 여는 어버이 날이었다.
진행 순서에 따라 축하 연주가 있었다.
많은 하객들 앞에 아코디언이 무대 중앙에 먼저 등장을 했다. 그 뒤를 따른 연주자는 놀랍게도 뇌성소아마비 장애자였다. 손은 움켜 쥔 채로 오그라졌고, 안면도 일그러저 불안하여 넘어질까 보는 사람이 조바심 나는, 그런 지체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정말 딱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코디언 위로 올라가는 것은 손가락이 아니었다. 발가락이었다.
전신이 마비가 되었어도 그 중에 발가락만은 제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상체를 힘겹게 구부려 주름상자를 넘어지지 않게 하려고 버티면서 신축시키고, 손가락 대신 발가락으로 건반을 아슬아슬하게 짚어갔다.
[과수원 길], [오! 수산나], [사랑] 등 세 곡이 이어졌다.
이 광경은 연주라기보다 건강에 대한 도전이고, 오기였다. 생명의 환희이고 절규였다. 인간이 해낼 수 있는 한계 끝의 몸부림이기도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나의 손가락을 만져보았다. 발가락도 움직여 보았다. 새삼 아무런 이상이 없는 손가락 발가락에 대한 감사함으로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 감사함을 모른 채 때론 좌절과 분노, 고통 속에서 해맬 때도 있었고, 스스로 불행의 늪이라 생각할 때도 있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소행이었던가.
다 굳어버린 신체 중에 움직일 수 있는 단 한 부분, 발가락만으로도 세상에 이처럼 폭죽 같은 불꽃을 쏘아 올리는 사람이 있으니-.
그 발가락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그의 깊은 마음속에 피어난 영혼의 미소였던가.
그 여인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저 천사처럼 밝고 당당했다. 그 자신만만할 수 있는 저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샘솟는 것일까.
세상 사람들이 이 여인 앞에서 어찌 불행을 한탄할 수 있으랴!
내 건강한 손가락을 다시 폈다 오므려 주먹을 쥐어본다. 이 세상 다 지나가기 전에 무엇인가를 남겨야 하리라 다짐을 하면서.
우산 / 오 정 순 ( 창작적인 수필) (0) | 2011.07.23 |
---|---|
대장닭 / 백재식 (0) | 2011.07.11 |
부족함의 미학 / 홍 미 숙 (0) | 2011.07.05 |
외도론外道論 / 백재식 (0) | 2011.07.03 |
회전등 / 허표영(창작적인 수필) (0) | 2011.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