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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닭 / 백재식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11. 7. 11.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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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장닭 / 백재식

 

  장닭은 수탁의 잘못된 일컬음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그러나 내가 자란 고향에서는 수탉을 모름지기 장닭으로 통한다. 다만 수탉은 암수를 가릴 때 으례적으로 쓰일 따름이다.

 집에서 닭을 키워 보면 닭의 수컷을 일컬어 장닭이라고 한 선지자의 적실한 언어감각에 탄복할 밖에 없다, 장닭이 장을 한자의 장將, 장丈, 혹은 장壯에 연원을 둔 것이 아닌가 싶다. 암닭의 무리를 이끌고 다니는 늠름한 모습이 장將닭이요 그 자태가 암닭에 비해 훌륭하게 의젓하매 장부다우니 장丈닭으로 명명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짐작해 보는 것이다.

 우리 집의 대 장닭은 휘하에 수탉 두 마리와 암탉 열 마리를 거느리고 있다. 훤칠한 목줄기에 떡 벌어진 가슴팍과 태깔이 반지르르한 붉은 깃털에 검은 색 멋진 꼬리를 지닌, 내가 보기에도 반할 만큼 탐스럽게 잘 생긴 수탉이다. 숫제 미스터 수탉 선발대회같은 것이 있다면 출품해 봄직도 한 그야말로 닭의 남성미를 깔축없이 갖춘 훌륭한 수탉인 것이다.

 그 잘생긴 허우대로 뭇닭을 거느리며 뜨락과 텃밭을 무소부지無所不至로 활보하는 모습은 가히 사위를 제압하고 남음이 있을만큼 위풍이 당당하다. 그의 걸음걸음을 관찰하면 장부다운 풍모가 한층 돋보인다. 한대로 서두르는 법 없이 한 자국 한 자국을 점잖게 옴겨놓는 발걸음이 지체 높은 옛 선비의 그것을 방불케 하고, 유난히 큰 볏을 연신 너풀거리며 기웃기웃 좌우를 경계하면서 걷는 폼은 그 옛날 투구와 패도를 장착한 장군이 군졸을 이끌고 앞장 서 가는 위용을 닮았다.

 그러나 그가 대장닭의 이름에 손색없는 구실을 하는 소의가 결코 그 빼어난 허울이나 위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권솔을 보살피는 매너의 책임의식이 참으로 장자답다.

 모이를 뿌리면 결코 먼저 덤비는 법이 없다. 뭇 닭이 몰려들어 정신없이 쪼아 먹는 이윽한 동안을 그는 우뚝 고개를 쳐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경계태세를 한층 가다듬는 것이다. 향응 중에 외적의 기습을 받고 망한 우리네 인간사의 숱한 패장들에 비하면 얼마나 슬기롭고 믿음직한 수장인지 모른다.

 암닭을 거느리는 매너 또한 우리 인간의 남정네들이 배울 바가 많다. 항상 넓은 가슴과 푸근한 것으로 감싸듯하며 거느리는 것이다. 앞 자리를 마련해 놓으면 점검이라도 하듯 으레 제가 먼저 들어가 앉아보고 나온 다음에야 암닭을 들여보낸다. 그러고는 알을 낳는 동안 줄곧 둥지 곁을 지키며 떠나지 않는 것이다.

 한번은 개집에 매어 놓은 진돗개의 목줄이 풀려 뜰악에서 평화롭게 노닐던 닭들을 개가 습격하는 바람에 큰 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다. 평소 같으면 대장닭의 통제 아래 무리를 지어 개집 근처, 그러니까 개의 목줄이 미치는 거리의 한계선 밖 언저리를 얼씬 거리며 약을 올리곤 하던 터수이지만, 일단 그 안전판이 무너진 마당에서는 겆잡을 새가 없다. 처음 맞닥뜨린 암닭 한 마리가 비명 소리와 함꼐 피투성이로 쓰러지고, 남은 닭들은 혼비백산 사분 오열로 분주하는 난장판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판국에서도 대장닭만은 그 자리를 맴돌며 뭇 닭들의 피난을 재촉하듯 꼬꼬댁 소리를 부산하게 내지르다가, 위기일발 피격직전에 이르러서야 요란한 날개짓과 함께 멀리멀리 달아나는 것이었다.

 이런 대장닭은 그만큼 권속을 다스리는 카리스마 또한 대단하다. 그가 모이를 줍기 위해 모이판에 다가서면 정신없이 모이를 쪼던 뭇닭들은 일제히 식사를 중지하고 몇 걸음 물러나서 자리를 양보하게 마련이다. 그리고서 얼마동안 기다렸다가 대장닭의 식음이 삼매경에 들 즈음에서야 비로소 조심스레 다가와 회식에 동참하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부주의하게도 이 예도를 망각하고 버릇없이 곁에 와서 함부로 부리를 놀리다가는 그것이 비록 애첩 격인 암닭이라 할지라도 치도곤을 맞고 쫓겨나는 것이다.

 총증에서 무엇보다도 불쌍한 존재는 두 마리의 수탉이다. 그들은 언제나 대장닭의 눈치를 슬슬 살피면서 겉돌아야 한다. 한데 어울려서 모이를 줍거나 뜨락을 거닐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느닷없이 대장닭에게 뒤통수를 쪼여 비명을 지르기가 일쑤이다. 한 번은 그 중 한 놈이 대장닭 옆에서 목줄띠를 뻗고 기지개를 켜다가 호되게 얻어 맞고 나동그라지기도 했다. 쪽을 못쓴다는 말이 바로 이것을 두고 생겼거니 싶은 광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숫놈 구실을 한답시고 암닭을 넘보기란 더더욱 어림없는 노릇이다. 마치 환관이 임금 앞에서 궁녀를 넘보는 일 만큼이나 안될 궁리인 것이다. 어쩌다가 한 놈이 그것을 시도하다가 울타리 끝 구석빼기 까지 쫓겨 달아난 일이 있다. 궁중의 법도였지만 능지처참을 하고도 남을 죄과이지만, 그만 정도의 흔띔으로 끝내는 것이 고작이니 자못 우리내 인군人君의 도량보다 크고 넓다 하겠다.

 하기는 대장닭 그도 한때는 그런 수모와 핍박 속에서 성장한 쓰라린 과거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우리집 울타리 안에서의 계보로 따져 그는 3대 째의 대장닭이다. 그는 할아버지 닭의 권자를 찬탈하여 대장닭이 된 애비닭의 시하에서 한동안 죽어지내다가, 어느날 처절한 결투 끝에 애비 닭을 물리치고 마침내 오늘의 대권을 그에게는 친 조모이자 바로 어미가 되는 씨암닭까지를 자신의처첩으로 차지하고만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혈통 속에는 에디프스적인 숙명의 피가 면면하게 흐르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권력 그것의 생태가 숙명적으로 에디프스의 혈통을 지닌 것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 숙명의 피는 의당 그가 미구에 맞이할 운명, 즉 그가 지금 누리고 있는 절대 권력의 비참한 종말을 예비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상불 그 운명의 조짐이 그들의 내부에서 서서히 무르익고 있었다. 요 며칠새에 부쩍 체구가 우람스러워진 수탉 한 마리의 거동이 심상치 않는 것이다. 여느 때 같으면 고개를 조아리고 물러났어야 할 대장닭의 경고성 도발에도 꿈쩍 않고 버텼다. 눈만 한번 껌벅하고서 콧방귀라도 뀌는 눈치였다. 그것은 마치 머리 큰 자식이 부모의 말을 대수롭잖게 받아넘기는 그런 시건방진 태도 같기도 했다. 힘으로는 당할 수 없는 후레아들의 빗나간 대거리에는 별 수 없이 이쪽에서 강경자세를 거둬들일 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놈이 이제는 대장닭이 보는 앞에서 암탉들을 마구 덮치기 시작이다. 그럴 때마다 대장닭의 거동을 살펴보면 짐짓 외면이라도 하듯 먼 산만 멀뚱히 바라볼 뿐인 것이다. 그 기죽은 듯한 자태가 왼일인지 처연해 보인다. 그제사 눈에 뛴 것이지만, 그의 삽상한 검은 꼬리에 언제 생겼는지도 모를 흰 깃털 한 오리가 도드라져 보였다.마치 초로의 귀밑머리에 내비친 흰머리카락과도 같이....

 

                             백재식 ㅡ 한국수필문학진흥회 부회장 역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서울경찰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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