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의 꿈 / 박 금 아 <천강문학상 대상 작>
지루한 장마였다.
홈통을 타고 내려오는 물소리에 밀려 오랜만에 베란다 청소를 했다. 화분을 밀어내고 물을 부으려고 할 때였다. 황갈색 왼돌이 달팽이 한 마리가 흙 부스러기 위를 한가로이 기어가고 있었다. 아차! 하는 순간, 물은 양동이를 떠나 해일처럼 돌진했다. 조난당한 배처럼 파도에 갇힌 신세가 된 달팽이를 건져 모종판에 놓아주었다. 비 오는 날이면 마당으로 나오던 달팽이를 잡아 담장 너머로 내던져 버리던 할머니 생각이 났다. 버릴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정을 내렸다. '그래. 너 스스로 길을 찾아 나갈 때까지 기다려주마.
그만으로도 인연인가. 오며 가며 지켜보게 되었다. 녀석은 낮 동안에는 껍질 속에서 꼼짝않고 있다가 저물녘이면 빠끔히 목을 빼고 나와 화초 줄기를 오르다가 내리고, 다시 오르기를 반복했다. 몇 날을 간다고 해도 못 오르지 싶었다. 무게에 눌려 다리마저 퇴화해버린 걸까.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이 천형 같았다. '껍질만 없다면….' 나선형의 껍데기가 부담스러워 보였다. 나도 평생을 껍질에 갇힌 채로 살아야 할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다.
큰 고민 없이 한 결혼이었다. 대학 동아리 선후배로 만난 남편과는 조건을 따져 본 적이 없었다. 결혼식 일주일 전에 시댁 식구들과 한집살이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깜깜이였다. 달팽이를 닮았던 듯, 내 눈은 지독한 근시였다. 신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었을 때야 어렴풋이 눈이 뜨이기 시작했다. 거실은 온통 잿빛이었다. 방안에 깔린 어둠은 더 짙었다. 안방에는 깊은 병으로 앞을 볼 수 없는 시어머님이 누워 있었고, 중풍으로 몸의 반쪽 기능을 잃은 시아버님이 곁을 지키고 있었다. 웬일인지 이십 대의 두 시동생이 거처하는 문간방에서도 빛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고장 나다시피 한 흑백 티브이가 유일한 불빛이었다.
시부모님께 첫 밥상을 올려드리자마자 녹의 홍상을 벗어 던졌다. 아버님의 낡은 운동복 바지를 빌려 입고 시장으로 달려갔다. 흰색 페인트를 사 들고 와 장식장이며 신발장, 방문을 하얗게 칠했다. 처음 해 본 칠 작업이었고, 어둠은 그렇게 한 번의 덧칠로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스물여섯의 나이는 너무 어렸다.
직장에 사표를 던지기만 하면 해결될 줄 알았던 것은 오산이었다. 식구들 모두에게 잃어버린 그 무엇이 되어야 했다. 시신경을 잃은 어머님의 두 눈이 되고,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아버님의 손발이 되고, 두 시동생의 어머니가 되어야 했다. 껍질이 하나씩 덧씌워질 때마다 숨이 막혀왔다. 밖을 보면 세상은 아득한 거리에 있었다. '저 빛 속으로 다시 들 수 있을까?' 눈이 부셨다. 한낮을 걷는 달팽이처럼 여린 해살에도 피부가 말랐다. 종일 두꺼운 커튼을 쳐 두었다. 볕이 들지 않는 집은 늘 눅눅했고, 곳곳에 이끼가 돋았다. 내 몸에도 푸른 녹이 슬 것 같았다.
달팽이가 되었다. 낮이면 집에 틀어박혀 있다가 밤이면 거리를 활보했다. 새내기 기자였던 남편은 매일 밤, 집을 비우다시피 했다. 그가 경찰서 당직실에서 기삿거리를 찾아 헤매는 사이, 집을 빠져나온 내 영혼은 잃어버린 나를 찾아 발에 티눈이 박히도록 돌아다녔다. '나의 나날은 밤에 와서 시선을 돌려준다.'던 베르코르처럼. 몽달귀신이 되었다. 밤만이 구원이었다. 짧은 외출에도 붉어지고 마는 내 눈은 밤의 일탈 후에야 생기를 찾았다. 밤의 시간 동안 반짝이던 영혼은 아침 해가 떠오르면 나팔꽃처럼 다시 시들시들해졌다. 싱크대 앞에 서면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느낌이 반복해서 들었다.
붉은 선으로 이룬 원고지 한 칸 한 칸이 밤새 내가 돌아다닌 길이었다. 아침이면 해독할 수 없는 문장들이 책상 위에 점액의 흔적으로 남았다. 달팽이가 온몸으로 써 내려간 상형문자처럼, 뜻을 알 수 없는 글씨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퇴색하기는커녕 더 선명해지는 것이었다. 어느 날이었던가. 이런 은빛 문장을 보았다.
'껍데기를 깨야 해!'
그 일은 쉽지 않았다. 달팽이 껍질처럼 집은 내 몸의 일부였으니까. 그 사이, 첫애가 태어났다. 한 생명을 오롯이 떠맡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목이 죄어 왔다. 더 미뤄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집에서 멀어지기 위해 안간힘으로 도움닫기를 시도했다. 젖먹이 아들을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아버님을 병실에 둔 채로 도서관 구석 자리로 들어갔다.
다시 날아보리라. 취업을 준비했다. 어린 학생들 틈에 끼여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었다. 몇 달 후, 날개를 펼쳤다. 추락이었다. 두 번째, 세 번째 비행도 마찬가지였다. 집을 벗어난 내 몸은 무중력 상태를 유영했다. 추락을 거듭하는 사이에 날개는 부서지고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책상에 엎드려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나를 일으켜 세운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즈음 슬금슬금 내 척추를 파먹어 가던 결핵균이었다. 나는 다시 '집'에 감금되었다.
달팽이는 우리 집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흐트러진 데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늘 부스스한 모습으로 지켜보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다행이었다. 집채를 지고서 오체투지로 배를 밀고 가는 모습은 구도자를 떠올리게 했다. 돌부리도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그런 녀석이 걸음을 멈춘 곳이 있었다. 난간 끄트머리에서였다. 껍질 속에 몸을 말아 넣고서는 꼼짝을 않는 모양새가 추락의 깊이를 가늠하는 듯했다. 날아보지 않고도 자신과 허공 사이, 그 간극을 어찌 알았을까. 조심스레 집어 화분에 다시 놓아주었다.
베란다로 들어오는 햇살이 아직은 뜨거운 늦여름 아침이었다. 밤에만 보이던 달팽이가 이른 아침부터 눈에 띄었다. 목욕재계를 한 듯 유난히 맑은 몸새였다. 머리를 꼿꼿이 들고서 아침 바람에 더듬이를 희번덕거리는 모습이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하는 것 같았다. 탄탄한 근육을 움직이며 뚜벅뚜벅 내딛는 걸음새가 화단을 접수해버릴 기세였다. 등에 실린 짐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 듯했다.
모처럼 나도 외출을 하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나선 길은 낯설기만 했다. 서점에 들러 책 몇 권을 사고, 영화를 보고, 커피숍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시켜놓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집 생각이 나면서 달팽이가 걱정되었다.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을 때는 전에 없던 정적이 감돌았다. 신발을 벗는 둥 마는 둥 베란다로 달려갔다. 화초 이파리를 뒤지고, 줄기를 흔들어 보아도 달팽이는 온데간데 없었다.
모종판에 담긴 검은 흙 위에 은빛 길이 나 있었다. 길은 상추 이파리를 지나 한련화 줄기를 타고 꽃송이를 향했다. 눈으로 달팽이가 갔을 길을 숨죽여 따라가다가 악!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달팽이는 뚝 끊어진 길 아래 큰 화분 뒤 타일 바닥에서 싸늘한 죽음으로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부서진 껍질을 온몸에 덮고서 몸이 바싹 마른 채로. 창틀에 걸어두었던 걸개 화분이 떨어져 내리면서 깔리고 만 것이었다. 녀석이 죽을 때 그랬을까. 숨이 할딱거려졌다. 목울대를 뚫고 외마디 소리가 나왔다.
"아, 내 껍질. 소중한 내 집!"
굳게 닫혀 있던 창을 열어젖혔다. 저무는 햇살 속으로 가느다란 은색 빛줄기 하나가 반짝이며 길을 내고 있었다.
사랑, 어린 물고기가 떠난 자리에 남는 것 / 박 금 아
행복했던 때를 떠올리면 어린 날로 돌아간다.
학교에 다니느라 일찍부터 섬에 있던 집을 떠나 친할아버지 집에 머물렀던 나는, 방학이면 외가로 가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친가에서 외가까지는 버스로 삼십 분 거리였다. 내려야 할 정거장을 놓칠까 봐 가는 내내 창에 눈을 박다시피 했다. 출발하고 십 분 정도 지나면 ‘남양 고아원’이라고 적힌 분홍 간판이 나오고, 남양 지서를 지나면 친척 할머니 집이었다. 꽃나무가 많던 그 집을 보며 우리 집에도 나무가 많았으면 하고 생각에 잠긴 사이, 멀리 대포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면 큰이모네가 저 바다 마을 어디쯤일까 헤아려보았다. 그러다 버스 옆구리로 포도밭이 보이면 금세 용현초등학교 앞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면 버스가 일으키고 간 먼지 속을 달려 구멍가게로 갔다.
낡은 나무 문을 밀고 들어서면 가겟집 할머니는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자야, 왔나?” 하며 허리를 펴고 일어나 커다란 왕사탕 한 알을 내밀었다. 외할머니가 외상 장부에 미리 올려 두었기 때문에 나는 늘 당당했다. 그 가게를 지나 외가까지는 삼십 분을 더 걸어야 했다. 미루나무가 줄지어 선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들판에서 일하던 이웃 어른들이 “자야, 방학해서 외갓집에 오나?” 하고 반겨주었다. 길 모롱이를 몇 번 돌아 외가 지붕이 보이면, 길가에 나와 기다리고 있던 외할머니가 “자야, 어서 오니라.” 하며 나를 향해 달려왔다. 그때면 입안의 사탕은 작아져 있었다.
사탕을 건네던 가게 할머니의 눈빛, 들녘에서 이름을 불러주던 목소리, 양팔 가득 벌리며 달려오던 외할머니의 모습까지 외가로 향하던 그 길은, 나를 부르던 사람들의 기억으로 가득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존재를 삶으로 계속해서 호명하는 일이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하루가 다 가도록 한 번도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도, 누군가의 눈빛을 마주하지 않고도, 속내를 나누지 않고도 잘 살아가는 것 같다. 서로를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가 된 걸까. 언제부터인가 ‘혼자 자는 방’을 일컫는 ‘혼방’이라는 단어가 생겨나더니 ‘혼밥’, ‘혼술’, ‘혼코노’, ‘혼영’, ‘폰카’까지…. 언어의 온상에서 병아리처럼 신조어들이 부화했다. ‘혼덕질’에 이어, ‘혼살’ 족이 살기 좋은 주거 환경을 일컫는 ‘혼세권’이라는 말까지 일상어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정말로 사랑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걸까.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사랑을 인간의 근원적인 고립감을 극복하려는 행위라고 했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분리되어 버린 존재들이며, 그 분리의 아픔 속에서 ‘다시 연결되려는’ 갈망을 품는다고 말이다. 수많은 예술 작품이 사랑을 노래하는 것도, 인류가 오래도록 추구해 온 본능적 기쁨과 희망의 접점이 ‘사랑’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랑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에도 사랑은 여전히 태어나는가?
사랑은 다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탄생하지만, 많은 사람은 점점 혼자 사는 삶을 택하며, 그것을 ‘자유’라고 부른다.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누군가에게 기다려지기를 포기한 이 시대에 사랑은 미처 태어나지도 못하고 스러지는 감정처럼 보인다. 또 사랑은 긴 시간을 들여 천천히 자라나는 감정이어서 광속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을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점점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진다.
영화 〈오키쿠와 세계〉는 그런 세상 속에서도 사랑이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몰락한 사무라이의 외동딸 ‘오키쿠’와 인분人糞을 퍼다 농부들에게 팔아서 먹고사는 ‘츄지’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키쿠의 아버지는 어느 날 결투에 나섰다가 목숨을 잃는데, 그날 아침 화장실에서 똥을 가지러 온 츄지를 만난다. 츄지가 자기 딸과 이루어갈 사랑을 내다보기라도 했던 것일까. 불쑥, ‘세계’에 관해 묻고는 말한다. “세계는 끝이 없어.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면 이 세계에서 당신이 제일 좋다고 말해줘. 그보다 더 좋은 말은 없어.” 유언과도 같은 말을 남기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무라이들을 따라나선다. 아버지가 결투에 나섰다는 것을 나중에야 안 ‘오키쿠’는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가 성대聲帶를 다쳐 목소리를 잃는다.
오키쿠는 말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세상과 단절된 채로 일 년여를 방 안에서 보낸다. 이웃 사람들이 그녀를 돌보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매일 그녀의 문 앞에 다가가 아주 작은 소리로 방문을 두드리고, 나지막이 이름을 불러준다. 그들은 침묵에 동행하는 방식으로 그녀를 사랑한다. 어느 이웃이 집에서 구워 가지고 와서 오키쿠의 방문 앞에 놓고 간 작은 정어리 두 마리는 ‘우리는 언제나 너와 함께 있으며, 우리 모두 지금의 모습 그대로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 주는 듯하다.
마침내 오키쿠는 세상 속으로 걸어 나온다. 어느 겨울 아침, 조심스레 만든 주먹밥을 들고 츄지의 집을 찾아 나서는데, 수레에 부딪혀 넘어지면서 주먹밥은 수레바퀴에 깔려버리고 만다. 츄지를 만난 오키쿠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 하지만 그럴수록 더 답답해진다. 결국 자신을 내던지듯, 츄지의 가슴에 주먹밥을 싼 껍데기를 거칠게 안겨주며 울음을 터뜨린다. 그제야 츄지는 울컥하며 묻는다. 당신은 무사의 딸이고 나는 이런 신분인데 괜찮겠냐고. 괜찮다는 오키쿠의 끄덕임에 츄지의 눈빛이 빛나는가 싶더니 무슨 말인가를 찾는다. 망설이던 츄지는 말로는 대답할 수 없다며 갑자기 주먹으로 가슴을 치기 시작한다. 이마를 치고 땅바닥에 앉아 하늘 끝을 가리켰다가 땅을 친다. 먼 데를 가리키는 손끝은 떨리고, 눈빛은 막막하다. 그때 눈이 내리고…, 몸짓은 격해진다. 할 수만 있다면 세상의 언어를 다 끌어모아서라도 사랑을 전하겠다는 결기로 몇 번이나 하늘을 가리키고 땅을 치는 행동을 반복한다. 마침내 주먹밥을 싼 껍데기를 펼치더니 격한 동작으로 먹는 시늉을 한다. 오키쿠가 꼭꼭 싸서 담아 건넨 사랑의 마음을 온전히 다 받아들이겠다는 듯이. 함지박에는 눈이 반쯤 쌓이고, 오키쿠의 가슴에도 사랑의 말들이 소복이 쌓여간다. 이 장면에서 ‘눈’은 말보다 강한 언어가 된다. 오키쿠와 츄지는 말없이 서로를 껴안는다. 그들을 덮은 눈처럼 사랑은 그들의 세계를 덮는다.
이 영화는 묻는다. 사랑은 왜 말로 다 표현될 수 없는가. 프롬이 말했듯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기술이고, 태도이며, 훈련이고, 관계 속에서 실현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 기술에는 네 가지 요소인 배려와 책임, 존경, 이해가 필요하며, 그것들이 모여야 비로소 사랑은 완성된다. 영화〈오키쿠와 세계〉는 그 네 가지를 다 보여준다.
그런데…. 사랑은 어떻게 발견되는가?
사랑은 종종 지난 뒤에 더 또렷해진다. 영화〈라벤더의 연인들Ladies In Lavender〉은 그 점을 잘 보여준다. 사랑 한 번 하지 못한 채 노년에 이른 ‘우르술라’에게 어느 날 사랑이 찾아온다. 우르술라는 언니와 함께 파도에 실려 해변으로 떠밀려 온 청년 안드레아를 구하고, 기억을 잃은 그를 자기 집에 머물게 하면서 회복을 돕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르술라는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사랑의 감정에 휩싸인다. 그러나 한 번도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채로 그를 떠나보낸다. 슬픔으로 보내던 어느 날, 우르술라는 안드레아의 연주회 소식을 듣고 언니와 함께 찾아간다. 객석에서 안드레아의 연주를 들으며 함께했던 날들을 떠올린다. 그러다가 안드레아를 발견했던 바닷가에서 손안에 든 작은 물고기를 놓아주는 상상을 한다. 어린 물고기는 그녀를 벗어나지만, 우르술라의 빈손에는 사랑이 남는다. 순간 조슈아 벨Joshua Bell의 바이올린 연주가 애절하게 울린다. 말로 전하지 못했기에 더 간절한 사랑. 떠나보냄으로써 온전히 드러난 사랑. 어린 물고기가 떠난 빈손처럼, 사랑은 떠나간 자리에서 더 돌올하다. 영화 〈라벤더의 연인들〉에는 라벤더 꽃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데, 사랑은 이런 것이라고 또렷이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칼릴 지브란의 말처럼,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찾지 못했다고 해서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찰리 맥커시는 그림책《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에서 소년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성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그 물음에 두더지는 “사랑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성공하기를 목표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건네는 선물 같은 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두더지는 말한다. ‘사랑’은 집으로 가는 길을 잃었을 때, 우리를 집으로 데려다주는 그런 것이라고.
겨울밤 장독에서 꺼내주던 외할머니의 홍시, 처음 학교 가던 날 복을 빌며 등 뒤에서 기도하던 아버지의 눈길, 화롯가에 내 몫으로 남겨져 있던 밤 몇 알, 힘들었던 신혼 시절 내 눈물을 말없이 닦아주던 친구의 손수건…. 모두는 시간 속에서 사라졌지만, 기억 속에서는 ‘사랑’으로 남아 나를 호명하며 끝끝내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끔, 내가 길을 잃었을 때, 내 이름을 불러 다시 집으로 데려다준다.
온 생애를 다해 배우고 익혀도 사랑은 여전히 어려운 기술이다. 성경이 계명의 완성을 ‘사랑’이라 말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영화 〈라벤더의 연인들〉에서 ‘우르술라’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지켜낸 ‘어린 물고기’를 움켜쥐지 않고 놓아주는 기술을 평생에 걸쳐 배워가는 것이지, 다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금씩 조금씩 그것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떠나보냄으로써 오히려 온전하게 남는 사랑. 그렇게 남은 사랑은 우리의 생을 유영하며 어느 순간 문득, 가슴을 파닥이며 살아 있음을 깨닫게 할 것이다. 그래서 신神은, 우리가 평생을 통해 배워야 할 과제로 ‘사랑’을 남겨둔 것이 아닐까.
은빛 당나귀가 쓴 벌거숭이의 시詩’' / 박 금 아
《플라테로와 나》를 펼쳐 들고 있으면 포도 향기가 달큼하게 번지는 언덕 위에 앉은 듯하다. 보랏빛 노을 속으로 “목가적인 방울 소리”가 퍼지고, 또각또각, 어린 당나귀의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다. 조금 있으면 마을 산책을 마친 나귀와 시인이 은빛 갈퀴를 흩날리며 포도밭 어귀를 돌아 나올 것이다. 또각! 안장에 작은 보퉁이를 얹은 당나귀는 흠칫 놀라 걸음을 멈출 테지. 그러고는 금세 “흑수정으로 만든 딱정벌레처럼 단단한 눈망울”을 굴리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정한 울음소리를 낼 테고, 그러면 “홍방울새와 검은방울새와 박새” 몇 마리가 “언제나 푸르고 시들지 않는 선인장과 접시꽃과 인동덩굴이 무성한” 풀밭 사이로 날아갈 것만 같다.
20세기 스페인 문학의 백미로 손꼽히는《플라테로와 나》는 후안 라몬 히메네스Juan Ramón Jiménez(1881~1958)가 쓴 산문 시집詩集이다. ‘안달루시아 애가哀歌’라고도 불리는 이 시집으로 히메네스는 장식 없는 투명한 언어naked poetry를 통해 스페인어의 미학을 극대화하여 시적 순수성을 획득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195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1914년에 초판이 발행된 이 시집은 시인의 고향인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작은 도시 모게르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고향을 넘어 20세기 초 스페인 전역의 시대적 아픔을 품고 있다.
히메네스는 포도주 사업을 하던 가정의 막내로 태어나 열다섯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첫 시집을 펴내던 해,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고향으로 돌아갔고, 심한 우울증을 앓으며 마드리드에 있던 주치의 루이스 시마로 박사의 집에서 2년간 요양했다. 그곳에서 철학과 문학을 깊이 있게 탐독하며 시적 토대를 닦지만, 향수를 이기지 못하고 모게르로 돌아간다.
다시 본 모게르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유년의 영혼이 담겨 있던 옛 고향은 사라지고, 내전으로 파괴된 황폐한 고향이 있을 뿐이었다. 구리광산 개발로 강은 오염되고, 포도밭도 물고기도 사라져 버렸던 것. 남은 것은 가난한 아이들과 겁에 질린 사람들, “쉬 부서지는 가냘픈 유리 붓꽃”과 “시커멓고 무시무시한” 그림자들뿐이었다. 시인은 은빛 당나귀와 함께 모게르를 걸으며 깊은 침묵으로 응시한다. 그리고 시를 통해 그 존재들로부터 유년의 모게르를를 복원해 낸다.
히메네스에게는 여러 명의 스승이 있었다. 그중, 히메네스의 시 세계에 깊은 영향을 준 인물은 두 명이다. 자연주의 교육자 프란시스코 히네르(1839~1915), 그리고 인도의 시성 타고르다. 히네르는 인간을 바꾸는 힘은 정치나 무력이 아니라 사상과 교육에 있다고 믿었으며, 자연을 스승 삼아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법을 가르쳤다. 히메네스는 이런 생각을 ‘자연과 예술과 삶은 하나’라는 신념으로 받아들였다. 이어 그는 아내 세노비아가 주도한 타고르의 《기탄잘리》 번역에 참여하며 동양적 정신과 우주적 감성에 눈떴고, 어린이와 자연을 진리의 원형으로 보는 세계관을 자신의 시학으로 발전시켰다.
1915년,《플라테로와 나》출간* 이듬해 그는 세노비아와 결혼하고 미국 여행을 떠나며 언어와 사상의 지평을 확장한다. 이후 《영혼의 소네트》, 《갓 결혼한 시인의 일기》 등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문학의 본질에 더욱 가까워진다. 시 외에도 단편소설과 비평 등을 쓰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어머니의 사망을 계기로 다시 칩거에 들어간다. 이후 ‘죽음’은 시인의 시적 세계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1936년에 일어난 스페인 내전은 그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는 파시즘에 반대하는 지식인으로서 결국 망명길에 오른다. 그 후, 생애 마지막 22년을 푸에르토리코와 남미 대륙에서 집필과 강연으로 바쁜 날들을 이어가지만, 모국어를 쓰는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상실감에 시달렸다. 그는 ‘망명자라는 것은 내 언어가 곁에 없다는 의미’라며, 자국어를 말하며 살아가지 못하는 자신을 ‘죽음보다 더 죽은 존재’로 인식했다. 신경쇠약이 악화하면서 스페인어권으로 가라는 조언을 듣고 푸에르토리코에 정착하던 중에 노벨문학상을 받지만 사흘 후 평생의 동반자였던 아내를 떠나보내고, 1년 반 후 그도 아내의 뒤를 따른다.
《플라테로와 나》는 내적 성찰과 깊은 관조로 시적 미학을 극대화한 작품이라는 찬사와 함께, 문학에서 소외되었던 자연과 동물, 어린이의 세계를 철학적 응시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히메네스의 시 철학을 집대성한 책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자신의 시가 오직 플라테로의 눈빛처럼 따뜻한 감성으로 채워지기를 바랐다. 시는 대상이 지닌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까지 다 품어야 내적 진실에 닿을 수 있다고 보고, 수사학적 장식을 배제하려고 했다. 이런 시도는 시의 내용과 함께 형식에도 변화를 불러왔으며, 시와 산문의 경계를 허물었다. 《플라테로와 나》는 히메네스가 완성한 ‘벌거숭이 시론詩論’의 시발점이자, 이후 그의 문학을 전기와 후기로 나누는 경계가 된다.
‘플라테로’는 시인의 고향에 있던 ‘은빛 나귀’를 부르는 말이다. 그러나 《플라테로와 나》는 시인이 키웠던 한 마리 당나귀만을 대상으로 쓴 글이 아니다. 은빛 나귀들 전체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시집은 단지 한 마리 당나귀에 대한 헌사라기보다는, 은빛 나귀들이 상징하는 보편적 존재들에 대한 노래다. 시인은 플라테로라는 은빛 나귀를 존재의 본질을 비추는 거울로 삼는다. 말은 하지 않지만, 시인의 언어를 알아듣고 함께 응시하며 걷는 플라테로는 영혼의 동반자이자 내면의 타자다. 그는 자라더라도 사람처럼 변하지 않고, 변하더라도 타락하지 않는다. 플라테로와 함께 고향 마을을 걷는 일은 곧 삶의 근원을 찾아가는 성찰이자, 투명한 시로 나아가는 길이다.
히메네스의 시적 여정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나귀처럼 두 발로 굳건히 딛고 있다. 시집의 서문에는 “플라테로의 두 귀와 같이 즐거움과 고통이 쌍둥이처럼 짝을 이룬 이 조그만 책”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우주 속 존재가 지닌 양면성을 시를 통해 꿰뚫어 본 시인의 통찰이다. 기쁨과 슬픔, 생과 죽음, 시작과 끝은 모두 같은 자리에서 짝을 이루고 있으며, 시는 그 모순 속에서 피어난다는 메시지다. 삶 또한 결코 단선적이지 않으며, 그 양면성으로 인해 더 단단해지고, 시는 그 복잡한 그물망을 투명하게 받아 안는 언어라는 역설이다.
시집 속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힘없는 존재들이다. 이는 히메네스가 《시적 정치》에서 “시인은 불공평과 기아, 가난, 인기와 증오, 범죄가 가장 나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한 세계관과 닿아 있다. 특히 어린이는 히메네스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존재다. 아이는 타고르가 말한 것처럼 “우주의 리듬에 가장 가까운 존재”이며, “신이 우주에 심은 꽃”이다. 아이들의 손짓과 말은 시가 되고, 그 순수한 감성은 어른들이 잃어버린 순수의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히메네스에게는 전쟁과 가난으로 희생된 아이들을 돌보는 삶 자체가 곧 시의 연장이었다.
《플라테로와 나》가 출간되었을 당시, 많은 독자는 이 책을 어린이를 위한 작품으로 알았지만, 시인은 서문에서 단호히 “아니다”라고 썼다. 그는 성인이 읽는 책은 아이들도 읽을 수 있다고 믿었기에 아이들만을 위한 책은 써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 시는 특정 독자를 가르는 장르가 아니라 삶 그 자체를 담아내는 언어의 그릇이었다.
히메네스의 생애를 톺아가다 보면 그가 시와 함께 성장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에게 시詩와 삶은 하나였다. 꿰뚫는 시선으로 일상 속 존재가 가지는 서정의 본질을 보편적인 언어로 담아내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과 만나게 한다. 그는 시를 문장의 가두리로 가두지 않는다. 그의 시가 깊은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으면서도 어른은 물론, 어린이들에게도 쉽게 읽히며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다.
“플라테로야, 네가 나보다 먼저 죽더라도 … 늪지대나 산길 벼랑에 버려지는 일은 없을 거야. … 나는 네가 좋아하는 피냐 언덕의 크고 둥근 소나무 아래에 너를 묻어줄게. … 사내아이들은 신이 나서 뛰어다니고, 여자아이들은 네 곁 작고 나지막한 의자에 앉아 바느질을 하겠지. 내가 외로울 때는 네게 시를 읽어 줄 거야. 오렌지밭에서 빨래하는 처녀들의 노랫소리도 들을 수 있을 거야.”
- 시 <네가 죽으면> 부분
은빛 나귀 플라테로는 끝내 한마디 말도 하지 않지만, 존재 전체로 시인의 기도를 듣고 응답한다. 이 침묵 속의 동행이야말로 히메네스가 꿈꾼 시의 궁극이었다.
《플라테로와 나》를 다 읽고 나면 스페인의 작은 마을 포도밭 어귀에서 시인과 플라테로가 올리는 삼종기도**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기도를 올리는 그 순간에도 삶은 여전히 우리를 슬프게 하겠지만, 은빛 나귀와 함께라면 우리의 영혼은 어느새 깜깜한 밤, 삼나무숲 우듬지 너머에서 반짝이는 별에 가 닿아 있을 것이다.
*《플라테로와 나》초판은 1914년 출간되었지만, 현재 알려진 완성판은 1917년에 나옴
**가톨릭교회에서 하루 세 번 아침, 낮, 저녁에 종을 칠 때마다 드리는 기도
다니야르의 노래처럼 / 박 금 아
친기즈 아이트마토프의 《자밀라》를 읽고
소설은 한 폭의 그림처럼 문을 연다. 바람이 지나간 황갈빛 스텝 위, 산등성이 너머엔 희푸른 구름이 걸려 있다. 가을 들길을 나란히 걷는 남녀의 그림자는 스텝 속으로 스며들 듯하다. 그림의 화가이자 이야기의 화자인 '세이트'는 그들 중 한 사람의 이야기를 말하겠다고 하지만, 책을 읽어가다 보면 그것은 한 시대의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의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 전쟁의 상처 속에서 인간이 살아 있음을 증언하고, 그 상처가 예술로 바뀌는 여정을 그린 그 그림은 소설의 첫 문장이 되어 독자의 마음에 걸린다.
《자밀라》는 중앙아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친기즈 아이트마토프가 1958년에 발표한 소설로, 독소전쟁 중의 키르기스스탄 후방 농촌을 배경으로 한다. 젊은 남자들은 전선으로 떠나고 마을엔 여자와 노인, 소년들만 남았다. 열다섯 살 '세이트'는 두 형이 전쟁터로 떠나자 집단농장에서 일한다. 어머니를 모시며 힘든 시간을 살아가는 그에게 작은 집 형의 아내인 '자밀라'는 힘이 되어주는 존재다. 결혼 넉 달 만에 남편을 전선에 보낸 자밀라는 겉으론 무척 강인해 보이지만, 남편이 없는 부재의 시간을 쓸쓸히 견디고 있었다.
그 무렵, 마을에 전쟁에서 돌아온 부상병이 나타난다. 그 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외가로 떠났다가 떠돌이 생활을 하며 성장한 '다니야르'였다. 언제나 우수에 찬 눈빛을 하고서 생각에 잠긴 사람처럼 사람들과 말을 나누는 적이라고는 없던 그는 일을 마친 밤이면 홀로 망루 언덕에 올라앉아 세상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어느 날 협동농장의 작업반장이 세이트의 어머니를 찾아온다. 남자를 대신해 자밀라에게 곡식을 수레에 실어 역까지 옮기는 작업을 맡기면서 세이트와 자밀라, 다니야르 세 사람은 함께 그 일을 하게 된다. 하루 일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오는 저녁이면 자밀라는 고된 몸을 수레에 실은 채 노래를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다니야르에게 노래를 청한다. 머뭇거리던 다니야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스텝이 깨어나고, 바람과 강물까지 화답하는 듯했다. 노랫말 없이 흥얼거리는 노래는 골짜기를 메우며 스텝의 밤공기를 흔들었다. 대지의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목소리에는 고향의 바람과, 사람과 땅을 향한 사랑, 살아 있음에 대한 뜨거운 감사가 스며 있었다. 세이트는 그 선율 속에서 인간이 세상과 화해하는 순간을 들었다. 노래는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 하나의 빛으로 남아 세상을 끌어안고 싶게 했다.
다니야르의 노래는 닫혀 있던 자밀라의 마음을 열었다. 밤마다 그는 노래했고, 자밀라는 애써 피하려 하지만 자꾸만 그에게로 향하는 마음을 느끼며 슬퍼한다. 세이트는 형수인 자밀라가 다니야르를 사랑하게 되는 걸 원치 않았지만,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어느 밤, 서로를 향해 다가가는 두 사람을 보며 다짐한다. 그들의 사랑을 색으로 남기리라고.
자밀라로서는 다니야르를 향한 사랑을 접으려면 일을 그만두는 방법밖에 없었다. 며칠 뒤, 그녀는 작업반장에게 수레를 끄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거절당한다. 다시 수레 쪽을 향해 걸어가는 자밀라를 지켜보며 세이트는 그때 그녀가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들어섰음을 느낀다. 그 여름의 끝자락에서 그는 자밀라와 다니야르, 말수레가 있는 첫 그림을 그렸다. 그것은 사랑을 이해하려는 눈길이자 예술의 시작이었다. 세이트는 그 순간 더 많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였다.
자밀라는 곧 귀환을 알리는 남편의 편지를 받는다. 그날 밤, 세이트는 탈곡장에서 자밀라가 다니야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을 듣는다. 그리고 얼마 후, 마가목이 붉게 타오르는 강가에서 평소와 다른 옷차림을 한 두 사람이 바늘풀이 뒤덮인 잡초밭을 건너는 것을 본다. 금세 협곡 쪽으로 사라져가는 그들을 쫓아가 붙잡으려는 듯 세이트는 강물로 뛰어들며 이름을 부르짖는다. “자밀라아! 자밀라아아아ⵈ.” 그러나 더 나아가지 못한 채로 강에 쓰러져 흐느낀다. 훗날 그는 고백한다. “그때야 알았다. 나도 자밀라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자밀라는 나의 첫사랑이었다.” 그렇게 그는 자밀라와 다니야르 그리고 유년을 떠나보냈다.
프랑스 시인 루이 아라공(Louis Aragon, 1897–1982)은《자밀라》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고 했다. 그가 말한 아름다움은 한 남녀의 사랑을 넘어, 전쟁과 고통 속에서도 인간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사랑의 힘이었다. 그는 믿었다. 전쟁이 인간을 파괴할 수는 있어도 사랑만은 파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 소설의 작가 친기즈 아이트마토프 역시, 스탈린의 숙청으로 아버지를 잃고 전쟁과 굶주림 속에서 성장하며 깨달았다. 다 부서져도, 사랑은 남는다는 것을. 《자밀라》는 그가 체험으로 얻은 그 믿음의 서사였다.
세 살에 부모를 잃고 사막과 탄광을 떠돌다 전쟁에서 돌아온 다니야르는, 고난 속에서도 노래로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그에게 노래는 희망이자 생존의 증거였다. 어릴 때 어머니를 잃고 말을 치던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던 자밀라를 활기차게 당당하게 살아내게 한 것 역시 사랑이었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날아온 남편의 편지에는 의무와 체면뿐, 아내를 향한 사랑의 온기라고는 담겨 있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다니야르의 노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삶의 깊이와 따뜻함을 전했고, 자밀라에게 처음으로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했다. 다니야르를 향한 사랑은 부정(不貞)이나 일탈이 아니라 진실한 감정을 향해 나아간 선택이었다. 세이트는 깨닫는다. 예술은 타인의 영혼이 내 안에서 울릴 때 시작되며, 그 떨림을 세상에 전해야 한다는 것을.
독서 모임에서 처음《자밀라》를 만났다. 자막 없는 영화를 먼저 봤지만, 화면만으로도 마음이 깊이 흔들렸다. 다니야르의 노래처럼 말이 없어도 전해지는 감정이었다. 이후 아이트마토프의 다른 작품들을 읽으며 키르기스스탄에 매혹되었고, 세이트의 그림 한 장은 나를 그 먼 곳으로 이끌었다.
이듬해 6월, 나는 키르기스스탄으로 향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흰 설산과 그 아래를 흐르는 하얀 강줄기가 눈앞에 펼쳐졌다. 강기슭에서 들꽃들은 지천으로 피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세이트의 그림 속 풍광은 볼 수 없었다. 자밀라와 다니야르가 사랑을 찾아 걸어가던 그 황갈색 스텝은 두어 달 뒤에야 모습을 드러낸다고 했다. 아쉬웠다.
돌아와《자밀라》를 다시 읽었다. 다음 해 8월, 다시 그곳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같은 나라를 해를 이어 간다는 것이 망설여졌지만, 가고 싶었다. 다시 본 텐산산맥의 산들은 마른 풀빛으로 누워 있었고, 길가의 자주개자리풀과 바늘꽃은 자밀라와 다니야르가 손을 잡고 떠나는 그림 속 풍경처럼 허리 높이로 자라 있었다. 강가의 마른 풀들도 세이트가 자밀라를 떠나보내며 울부짖던 그날의 풀들 같아 보였다. 나는 어느새 그 길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달려가며 나도 모르게 외쳤다. 그 날의 세이트처럼.
“자밀라아! 자밀라아아아ⵈ.”
건조한 바람이 풀잎을 스치자 어떤 속삭임이 들려왔다. 그때 알았다. 내가 두 번이나 그 땅을 찾은 이유를. 내가 보고 싶어했던 것은 세이트의 그림처럼, 사랑이 지나간 자리의 색이었다.
내 글의 존재 이유를 생각했다. 왜 쓰는가.
세이트가 다니야르의 노래에서 예술의 의미를 깨달았듯,《자밀라》를 읽으며 글쓰기의 이유를 들었다. 쓰는 일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함께 ‘살아내는’ 일일지 모른다. 나는 아직 그 노래를 부르지도, 그만큼 살아내지도 못한다. 다만 쓴다. 그리고 바래어 본다. 언젠가 내가 쓴 문장 어딘가에서 희미하게라도 다니야르의 노래가 들리고, 여리게라도 한 번쯤 자밀라의 심장이 뛰어주기를.
빨간 구두 / 박 금 아
금남호 갑판 너머로 붉은 파도가 일렁인다. 눈을 감고 고개를 약간 오른쪽으로 뉜 아버지의 얼굴에 까치놀이 앉았다. 허리춤 아래로 내린 왼손과 엇비스듬히 내민 오른발에서는 까딱까딱 박자를 맞추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사진엔 나오지 않았지만, 목엔 굵은 핏줄이 불거졌을 거다. 토끼띠 계모임으로 부부 동반 다도해 관광을 다녀오던 날이라고 들었다.
아버지는 노래를 좋아했다. 목젖을 몹시 떠는 특유의 바이브레이션으로 소절의 끝 음을 낼 때는 원래 박자보다 길게 내뽑는 것이 주특기였다. <바다가 육지라면>, <울어라, 열풍아!>를 부를 때면 왠지 모를 구슬픔마저 실려 나왔다. 일찍 부모를 떠나 자란 내가 느끼는 외로움도 비슷한 것이었을까. 아버지의 노래들은 초등학교 시절, 나의 애창곡이 되었다. 친구들이 고무줄놀이를 하며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 봉~” 할 때 나는 저만치에서 사금파리 같은 것으로 땅에 그림을 그리며 “바다가 육지라면~” 하고 흥얼거리곤 했으니 말이다.
평소에는 활기찼지만, 혼자 있을 때 아버지는 외로워 보였다. 방학을 맞아 섬 집으로 갔을 때였다. 집 뒤꼍 대숲에서 놀고 있는데 아버지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바람에 실려 왔다. 깨금발을 하고 내려다보니 아버지는 담장에 기대고 서서 앞바다를 보고 있었다. 바다에는 너울이 일었다. 아버지의 노래는 파도에 잠겼다가 떠올랐다 하더니 어느 순간 들려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노래를 멈추고 그 자리에 서 있었을 뿐인데 나는 왜 아버지가 운다고 여겼을까.
아버지는 열다섯 무렵부터 다른 친가 식구들과 떨어져 섬에서 바닷일을 하고 살았다.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던 아버지 아래 고모와 두 명 삼촌에 비해 중학교 공부도 마치지 못하고 일만 했다. 내가 좀 더 자랐을 때야 나는 그 모든 일이 아버지가 서자였기 때문에 비롯되었다는 걸 알고 아버지가 불쌍했다.
오래전, 프랑스에 살 때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부모님이 우리 집에 다니러 왔다가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여행을 가던 중에 일어난 변고였다. 그 사고로 부모님과 같이 왔던 막내는 큰 부상을 입었다. 미혼이었던 여동생은 얼굴에 심한 상처를 입어서 가족의 충격이 컸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색이라곤 없었다. 오랜 입원 생활로 지쳐 갈 때도 불평이라곤 내보이지 않았다. 운전자였던 남편을 배려한 뜻도 있었을 테지만, 슬픔은 되새김질해서는 안 된다는 듯 언제나 환했다. 어떤 때 아버지는 파리 생활을 즐기시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퇴원하고 집에서 통원 치료를 받을 때는 자주 시장 구경을 다니셨다. 가까운 벼룩시장을 찾아 은제(銀製) 찻숟갈이나 찻잔을 사 들고 오기도 하고, 어느 날엔 영화 《네 멋대로 해라》에서 주인공 장 폴 벨몽도가 쓰고 나왔던 것과 똑같은 모양의 중절모도 사 왔다. 하루는 우리가 살던 불로뉴 비양쿠르(Boulogne-Billancourt)에서 지하철을 타고 방브(Vanves) 시장을 다녀왔다며 구두 한 켤레를 보여주는데 뜻밖에 빨간색이었다. 나도 모르게 “아버지가 신을라꼬예?” 하고 내뱉는 바람에 무안하게 해드리고 말았지만, 아버지는 웃기만 했다. 상자 속을 지키던 신발은 한국에 와서도 신발장에만 있었다. 어장을 접은 후로는 친정집 2층에서 두문불출하던 아버지처럼, 좀체 땅바닥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그런 어느 해 봄, 초등학교 총동창회가 있던 날이었다. 집 뒤 각산으로 오르는 언덕길의 벚나무들이 불어오는 봄바람에 참돔 비늘 같은 꽃잎을 날리던 저녁답이었다. 거울 앞에서 포마드로 머리를 빗어 넘긴 아버지는 파란 줄무늬 와이셔츠에 벨몽도 모자를 쓰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대문을 밀고 나서는 아버지를 본 누군가가 “아부지예, 빨간 구두를 신고 가실라꼬예?” 하고 물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한 번 씨익, 웃어 보이고는 겅중겅중 노루걸음으로 언덕길을 올라갔다. 며칠 전부터 곳곳에 삼천포초등학교 총동창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어서 나도 처음으로 한 번 가볼까 하던 참이었는데 뜻밖에 본 아버지 모습에 포기해 버렸다.
다음날 어판장은 전날 있었던 동창회 이야기로 난리였다. 사람들은 아버지의 빨간 구두 이야기를 떠올리며 배를 움켜쥐고 웃어댔다. 대관절 아버지는 그날 동창회에서 무슨 일을 했던 것일까. 당신도 한 번쯤 세상이라는 무대 한가운데에서 주인공으로 서 보고 싶었을까. 자신의 몸뚱이를 칭칭 감고 있는 오라를 풀어 내던져 버리고 솟구쳐 오르고 싶었을까.
그날 후 아버지는 다른 신발은 저만치로 밀쳐버렸다. 빨간 구두만 신었다. 빨간 구두가 남은 생을 이끌어 줄 것으로 믿었을까. 어머니가 손질해 준 모시 한복을 입고 증조할아버지 제사를 지내러 갈 때나 정장 차림을 하고 조카딸 결혼식에 갈 때조차도 빨간 구두를 신었다. 누가 말려도 듣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더는 웃지 않았다. 아버지가 정신이 이상해졌다고들 수군댔다. 아버지의 마지막 배였던 어흥 7호를 데려가 버린 화마(火魔)가 아버지를 쏘삭질을 해대는 거라고 했고, 점괘를 치는 누군가는 핏덩이 입에 젖 한번 물리지 못하고 집을 나가 세상을 떠돌던 생모가 죽어 이제야 아들을 찾아온 거라고도 했다. 나는 언젠가 아버지가 텔레비전에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신고 나온 빨간색 구두를 유심히 보던 일을 떠올렸다.
평생 바닷일을 하며 검정 장화를 신고 살아야만 하는 운명이었을까. 아버지는 처음 빨간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섰던 그 봄날 저녁 후, 채 두 해도 지나지 않아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나버리고 말았다. ‘빨간 구두’를 신고부터는 춤을 멈출 수 없어 발목을 잘리는 형벌을 당하고 만 카렌*처럼.
*1845년에 출판된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 속 소녀
그 여름의 엉겅퀴꽃 / 박금아
그 여름의 엉겅퀴꽃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 야로슬라브스키행 횡단 열차에 몸을 실었다. 4인실 쿠페 이 층 침대칸에 올라 짐 정리를 끝냈을 때는 깜깜한 밤이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여름이었지만 추웠다. 뜨거운 물을 구하러 통로로 나갔다. 열차 바퀴 구르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객실의 문들은 통로를 향해 있었는데 다 닫힌 채여서 을씨년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비밀경찰이 와서 어디론가 끌고 가버린다 해도 쥐도 새도 모를 것 같았다.
이등칸의 사모바르(samovar)에서는 물이 나오지 않았다. 사모바르를 찾아 걸음을 옮기다 보니 일등칸이었다. 객실 문 하나가 열려 있었다. 그 앞을 지나는데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갔다. 2인용 칸에서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 속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주인공 안드레이 톨스토이와 제인의 첫 만남 장면을 보고 있는 듯했다. 그들과 내가 같은 모스크바행 열차에 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옮겨가다 보면 삼등칸 어딘가에서 한 무리의 사관생도들도 만날 것 같았다. 필름은 빠르게 돌아 왕립 사관학교 생도였던 안드레이를 사로잡고 종내에는 시베리아로 유형의 길을 떠나게 만든 제인, 사랑했던 주인집 총각 안드레이의 아내가 되어 유배지로 따라간 두나샤의 슬픈 눈빛이 여름 시베리아 숲의 자작나무 이파리처럼 차례차례 반짝였다가 사라져갔다. 보온병에 물을 담아 오니 내 방 앞 통로에서 한 남자가 노트북 작업을 하고 있었다. 눈짓으로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쿠페로 들어갔다.
침대칸에 올랐지만 쉬 잠들지 못했다. 츠르륵 츠르륵. 열차 바퀴 구르는 소리가 나를 먼 북국으로 데려가는 듯했다. 자다 깨기를 반복한 끝에 완전히 눈을 떴을 때는 쿠페 창으로 이슬에 젖은 희부연 시베리아가 들어왔다.
통로로 나갔다. 한 남자가 스마트폰으로 열차 밖 풍경을 담고 있었다. 지난밤 그 남자였다. 그는 내 방 오른쪽 쿠페에서 나온 것 같았는데 사진을 찍어서 어딘가로 계속 전송했다. 나도 반대편 왼쪽 창가에 서서 동터 오는 벌판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말을 걸어왔다. 해외여행을 한 적 없는 가족에게 풍경을 담아 보내는 중이라고 했다. 사진 찍는 소리가 너무 커서 미안하다며, 그도 첫 해외 나들이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밥을 먹고 잠자는 시간을 뺀 3박 4일 내내 남자와 나를 열차 통로 창가에 붙들어놓았다.
열차가 정차할 때는 내려서 몸을 풀며 야생의 들판을 심호흡했다. 그는 철로 변과 레일 사이에서 피어나는 야생화를 담느라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구름송이풀과 자주방가지똥, 분홍바늘꽃, 좁은잎해란초, 터리풀…. 풀들은 고만고만한 키로 서로에게 기대어 서서 꽃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여리디여리게 피는 모양이 엄마 손을 잡고서 수줍음 타며 나들이를 나온 어린 소녀들 같았다.
그 꽃들 속에서 다르게 피어나는 들꽃이 있었다. 가시엉겅퀴였다. 실한 몸통에 큰 가시를 올리고서 진한 자줏빛으로 핀 모양이 제 속의 한을 가시로 돋우어 올린 듯하여 다가서기조차 두려웠다. 다른 풀꽃들이 고개를 숙이고서 만만한 빛으로 나직이 흔들리며 피어나는 것과 달리, 엉겅퀴는 시린 바람 속에서도 하늘로 고개를 쳐들고서 맹렬한 자태로 꼿꼿이 서 있었다. 흔들림조차 없이 돌올했다. 열차 바퀴 아래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저 한 몸으로 광막한 벌판을 지켜내기라도 하겠다는 듯 굳건했다. 혹, 뽑아내려고 했다가는 손가락을 베기라도 할 것처럼 억센 힘이 느껴졌다.
나는 그 여름의 시베리아 횡단 열차 안에서 또 한 포기 엉겅퀴를 보았다. 강마른 체구에 툭 불거져 나온 광대뼈와 짙은 눈썹, 날카로운 콧날, 감쳐물다시피 한 입술. 양미간에 깊게 팬 주름과 지나칠 정도로 옴폭하게 들어간 눈은 모지락스러운 인상을 자아냈다. 횡단 열차 철로 변에서 강렬한 빛으로 피어나던 가시엉겅퀴를 떠올리게 했다.
자신을 시민운동가라고 소개한 그는 서울의 위성도시에서 살고 있었다. 대학에 다닐 때는 운동권이었다고 했다. 좋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대열의 앞에 섰다가 감옥에 잡혀 들어가기 여러 번이었다. 학생 신분으로 사회를 개혁하기에는 아무래도 힘이 부족했다. 학교를 졸업하자 함께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길을 찾아 떠났다. 대기업에 취직했고, 고시 공부를 하거나 자격증을 따러 갔다. 그도 고민이 깊었다. 직장에 들어가 평범한 가장이 되어 아들딸 낳고 그제라도 부모님께 효도하며 살고 싶었지만, 좋은 세상이 되려면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는 판단으로 결국 시민운동단체를 택했다.
자신이 시민단체를 이끄는 동안 그는 동료들이 꿈을 이루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다. 그러면 살만한 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동료들은 잠시 대열을 떠나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람대로 많은 동료의 꿈은 이루어졌다. 그러나 몇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의 꿈은 아득히 멀기만 하다. 동료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그들의 힘은 오직 자신들과 가족을 지키는 데에만 쓰이는 것 같았다. 돌아오라고 암만 외쳐도 반향 없는 메아리일 뿐이었다.
잘리고 베인 상처들은 가시로 돋아 세상을 향한 굳은 맹세가 되었을까. 제 가시로 자신을 찌르며 견디었을 거다. 그 가시들이 붉은 자줏빛 꽃으로 피어난 걸까. 한 송이 엉겅퀴꽃을 피우는 데 그리도 많은 가시가 필요했던 것일까. 자세히 보니 한 개의 총포(總苞, 모인꽃싸개) 안에 수백 개의 통꽃이 들어 있다.
궁금했다. 선택을 후회해 본 적이 없느냐는 물음에 그는 대답 대신 웃었다. 그러다 말했다. 후회한 적이 있다고. 그것도 여러 번. 그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동안 살림에 필요한 돈은 학생운동 시절에 만난 아내의 몫이었다. 아내 역시 시민단체에서 일하기에 늘 빠듯했다. 아이를 더 낳아 키울 형편이 되지 못해 결혼 때의 약속을 어기고 자식을 한 명만 둔 일이 가장 미안하다고 했다.
언뜻 내비친 대로 그는 정말 달걀가리만 쌓았던 걸까. 그는 이제 그들을 이해한다고 했다. 그들 모두 도반이었다고 했다. 우리가 지금 이만큼 잘 살 수 있는 것도 각자가 저만큼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도 했다. 그의 입에서 귀에 익은 시구가 가만가만 새어 나왔다.
누가 내게 사랑을 물어 온다면
그냥 시베리아로 달려가
엉겅퀴 한 송이 가슴에 물들여주리
-송종찬 <시베리아의 들꽃> 부분
그에게도 사랑은 가시로 피워내야 하는 한 송이 엉겅퀴꽃이었으리.
바이칼 호수 박물관을 보고 근처 야시장을 돌아 나올 때였다. 그가 뜻밖에 못난이 진주목걸이 하나를 들어 보이며 난생처음으로 산 보석이라고 했다. 아내에게 선물하려고 이만 원을 주고 샀는데 좀 봐달라며 웃는 낯빛이 그 여름, 시베리아 횡단 철도 철로 변에서 피어나던 엉겅퀴꽃처럼 붉었다.
피레네의 다락방 / 박 금 아
프랑스 피레네산맥의 어느 산자락 작은 마을에서였다. 남편의 파견 근무로 파리 근교에 머물고 있던 때였다. 아이들의 봄방학을 맞아 루르드 성지를 거쳐 피레네로 여행을 떠났다.
새벽녘 파리를 떠나 오후 세 시쯤 루르드에 닿았다. 성지를 돌며 ‘십자가의 길’을 걷고, 기적의 샘터에서 기도를 마치고 나니 어느새 어둑해져 있었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큰비로 바뀌었다. 언덕에서 내려다본 들판은 빗줄기에 가려 끝이 보이지 않았다.
여정을 바꾸어 마을에서 하룻밤 묵어가기로 했다. 마을 쪽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숙소는 보이지 않았다. 들판 가운데 집 몇 채는 모두 굳게 닫혀 있었다. 그사이 비는 장대비로 변했다. 포장이 안 된 길은 앞뒤 분간도 안 되었다. 차를 세우고 돌아보는 사이 몸은 순식간에 젖었다. 끄트머리 농가 한 채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젊은 여인이 아기를 안고 나왔다. 하룻밤 묵어갈 곳을 찾는다는 말에 우리를 보더니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여자는 서둘러 수건을 가져와 건네며 몸을 닦으라 했다. 그러면서 마을에서는 묵을 곳을 찾기 힘들 거라며, 괜찮다면 이 집에서 머물다 가도 좋다고 했다.
여인을 따라 삐걱대는 나무 계단을 밟으며 이층으로 올라갔다. 유리 천장이 있는 다락방이었다. 침대 두 개와 책상, 나무 옷장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부실 만큼 하얀 시트와 베개는 구김 하나 없었다.
여인이 샤워실로 안내해 주었다.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나오자 천장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왔다.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니 방 안의 풍경 하나하나가 또렷해졌다. 벽에 걸린 거울은 먼지 하나 없이 맑아 내 마음속까지 비출 듯했고, 책상 위 작은 책꽂이에는 소설과 동화책 몇 권이 꽂혀 있었다. 탁자에는 주인 여자가 방금 가져다 놓은 찻주전자와 찻잔이 놓여 있었다.
방 안 가득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아이들은 푹신한 침대 위에서 서로를 밀치고 뒹굴며 한참 웃었다. 웃음소리가 잦아들자, 유리 지붕 위로 빗소리가 고요히 내려앉았다. 아이들은 동화책 속으로 빠져들었고, 남편과 나는 따뜻한 홍차를 마시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새벽, 저절로 눈이 떠졌다. 밤비가 씻어낸 유리 천장에는 푸르스름한 하늘이 담겨 있었고, 비껴 걸린 초승달 곁으로 별 몇 개가 남아 반짝였다. 아이들이 몸을 뒤척일 때마다 이불이 바스락거렸다. 먼 데서 닭 울음소리가 잔잔히 번져왔다. 어린 시절부터 다락방이 있는 집을 꿈꿔왔던 내게, 그 새벽은 꿈결처럼 아늑했다.
날이 밝자 여주인이 조심스레 방문을 두드렸다.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다며 아래층으로 오라고 했다. 집 안은 장식 하나 없이 단출했다. 오래된 뷔페장과 작은 책장 하나, 낡은 오르간이 창가 아래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 여백 사이로 아침 햇살이 길게 한 줄기 선을 그리며 스며들었다.
짙은 갈색의 나무 식탁에는 썰지 않은 바게트와 버터, 딸기잼, 팽 오 쇼콜라, 김이 오르는 수프와 삶은 달걀이 놓여 있었다. 여인은 말없이 의자를 내어주었다. 우리 부부 앞에는 커피와 홍차가, 아이들 앞에는 코코아가 한 잔씩 놓였다.
그녀 곁에는 두 아이가 있었다. 유모차 안에서 담요를 덮고 곤히 잠든 아기와, 그 옆에 서 있던 네댓 살 남짓한 여자아이였다. 식사가 이어지는 동안 그녀는 찻잔이 빌 때마다 다가와 차를 따라 주었는데, 엷은 미소뿐 말이라고는 없었다. 인적 드문 시골 농가에서 어린 두 아이와 살아가는 그녀의 사정이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마당으로 나오니 안개 속에서 피레네산맥이 연둣빛으로 펼쳐져 있었다. 닭들은 지붕과 마당을 분주히 오르내렸고, 마로니에 나무는 가지를 늘어뜨린 채 잘 익은 열매를 툭, 툭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 소리에 놀란 닭이 푸드덕거리며 달아나자, 아이의 까르르한 웃음소리가 맑은 아침 공기 속으로 번져갔다.
집을 떠나며 숙박비를 물었다.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미소만 지어 보였다. 다시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나는 값을 말하기 곤란해하는 듯하여 어림잡아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그때 그녀가 내 손을 가만히 잡았다.
“부 제트 메 자미(Vous êtes mes amis.)”
당신들은 먼 데서 온 나의 친구이니, 머물러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인사였다. 나는 몇 번 돈을 건넸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인사만 남긴 채 길을 나섰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 때였다. 여인은 아기를 품에 안고 다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 곁에서 어린 딸아이가 고사리손을 높이 들어 흔들었다. 아이의 작은 손바닥 사이로 피레네의 아침 햇살이 잘게 부서지며 반짝이고 있었다.
그 작은 손에 봉봉 과자라도 사 먹으라며 몇 프랑이라도 쥐여주었더라면 좋았을 걸. 언어도 문화도 달랐던 우리가 그 하룻밤 사이에 어떻게 그토록 깊이 이어질 수 있었을까.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오래된 친구를 그곳에 두고 떠나는 듯했다.
삶의 길목에서 비를 맞는 밤이면 그 다락방을 찾아들곤 했다. 푸른 유리 천장 너머로 새벽달이 비껴 걸려 있던 정갈한 방이었다. 하얀 시트와 정돈된 책상, 따뜻한 나무 식탁은 그녀가 오래전부터 누군가를 기다리며 내어준 마음 한 자락이었을 것이다.
그날 그녀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조차. 그날 우리가 받은 것은 방 한 칸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오래된 환대였다. 그 집은 세상을 걷는 길손이 언제든 쉬어갈 수 있도록 비워 둔 자리였다. 오래된 성소처럼 말없이 사람을 품어 안는 그런 자리 말이다.
그 아침, 안개를 밀어 올리며 모습을 드러내던 피레네산맥은 내가 오래도록 건너야 했던 시간의 능선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쉬어갔고, 어느덧 그 산을 건너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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