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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줄 / 강 현 자

장대명화 2026. 3. 28. 23:28

                                        홋줄 / 강 현 자

 

무작정 달려왔다. 서녘 해는 문을 닫은 어물전 앞에 서성이고, 텅 빈 덕장엔 건어물을 매달고 있어야 할 집게가 줄지어 하릴없이 바다를 바라본다. 후줄근하게 늘어진 목장갑 한 짝도 끝쪽에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그나마 오징어 몇 마리가 꾸덕꾸덕 말라가는 모습에서 누군가의 손길이 가까이 있다는 추측을 할 뿐이다. 그래, 내게도 누군가가 옆에 있었지.

 

거대한 몸체의 숨결인가. 며칠째 내린 폭설로 출어하지 못한 낚싯배는 무지근하게 눈을 뒤집어쓴 채 숨 고르기를 하는 중이다. 아직 죽지 않았다는 듯 다시 떠날 내일을 기다리며 며칠째 저렇게 홋줄에 묶여 있었을 것이다. 깊은 한숨도, 밭은 숨소리도 아니다. 얇은 바람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길 뿐이다. 물비늘이 일렁인다. 침묵 가운데 조용한 속삭임이다. 어쩌면 가느다란 저항일지도. 내 발길이 이 먼 곳까지 순식간에 달려온 것도 나를 향한 저항이었을 것이다. 누구에게 하소연할 일도 그렇다고 원망할 일은 더욱 아니다. 아무렇게나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데 입 꾹 다물고 마냥 혼자 나선 길이다.

 

습관처럼 카메라의 앵글을 뱃전에 맞췄다. 배에 묶인 밧줄이 포물선을 그리며 물에 잠겼다. 모태와 연결된 탯줄 같다. 뭍에 단단히 고정한 굵직한 홋줄은 타협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하다. 새끼줄처럼 가지런하게 꼬인 모습은 자신의 본분인 듯 흐트러짐이 없다. 엄마 손에서 벗어나고픈 어린아이 붙잡듯 홋줄은 요지부동이다. 나를 잡고 있는 줄은 무엇일까.

 

홋줄은 구속이다. 구속이 싫어 그 줄을 놓아버렸다. 물결 따라 일렁이며 순순히 앞으로 나아갔다. 문득 돌아보니 옆에 아무도 없다. 휙휙 스쳐 지나가는 바람과 구르는 낙엽만 있을 뿐이었다. 때로는 꽃잎도 어깨 위에 앉았다 가긴 했다. 문득 멈춰 섰다. , 옆에 아무도 없구나. “너는 혼자잖아.” 얼마 전 꿈속에서 누군가 일깨워주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혼자가 그렇게 두려운 것인지 꿈에서 처음 알았다.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 뱃전에 일렁이는 물비늘이 꼭 지금 내 마음이다. 요동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멈춤도 거부하는.

 

며칠 전, 희뿌연 유리벽 안으로 우연히 보았던 아들 손자 며느리 그리고 할아버지와 그의 새 아내. 웃음 띤 그들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철저하게 튕겨 나온 한 영혼이 허공에서 잠시 비틀거렸다. 차라리 보지 못했어야 했다. 애초부터 그 자리는 내가 상관할 자리가 아니란 걸 알지만 뜻밖에 날아온 비수였다. 나는 물과 섞일 수 없는 기름방울이었다.

 

허허로운 벌판에 홀로 서 있는 갈대는 오히려 외롭지 않았다. 바람이 이끄는 대로 즐기면 그뿐이었다. 갈대숲 외진 곳에서 홀로 흔들리며 그들을 바라보는 갈대가 진정 외로운 갈대다. 일부러 혼자이게 한 것이 아니라고 갈대 무리는 핏대를 세우겠지만 가해자는 없는데 피해자만 있는.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외로 꼬여 일정한 간격을 지켜가는 홋줄을 보니 어릴 적 사랑방에서 새끼줄을 꼬던 할아버지 모습이 어렴풋하다. 나도 해보겠노라 침까지 탁탁 뱉어가며 꼬아보지만 내 새끼줄은 볼품이 없었다. 새끼줄이 밧줄로 변하는 동안 내가 엮어온 세월 역시 참으로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계선주를 겹겹이 끌어안은 홋줄은 단단한 근육질로 뭉쳤다. 홋줄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여러 개의 가닥이 꼬이고 꼬였다. 두 개의 줄이 서로 꼬여서 하나의 새끼줄을 이루듯 세상 어느 것이든 반대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나도 혼자인 누군가를 위해 내 영혼을 조금은 나누었을 것이고 그 누군가도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나와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다. 구속이 싫어 끊어버린 밧줄이지만 그래도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것은 그 밧줄이 다시 누군가와 연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홋줄은 연결이고 연결은 인연이다. 사람은 누구나 서로 기대어 산다. 홋줄이 외줄이 아닌 것처럼. 그래, 내가 바로 홋줄이었구나. 그러니 혼자라고 말하지 말자. 세상 사람 누구나 다 혼자다. 아니, 세상에 혼자는 없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을 수 있고 무리에 섞여 있어도 외로운 사람이 있다. ‘혼자=외로움이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 이유다.

 

갯바위 위에 섰다. 볼에 닿는 바닷바람이 한결 부드럽다. 오후의 햇살도 한 뼘은 두터워졌다. 때로는 생명을 위협할 만큼 단단한 홋줄을 풀고 바다로 나간 배는 뭍에서 벗어나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날 것이다. 파도를 만나고 암초를 만나고 물고기를 만날 것이다. 탯줄을 끊고 어머니와 떨어진 나는 아버지를 만나고 세상을 만났다. 지나온 세월 돌이켜보면 나 혼자인 적은 없었다. 내가 잠시 등을 돌려 먼 곳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여러 개의 줄이 꼬여 하나의 홋줄을 만들 듯,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또다른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 똬리를 틀고 가부좌를 한 홋줄에서 구속과 연결을 생각한다. 외로움이란 구속과 연결 사이 그 어디쯤에서 서성이는가.

 

다시 시동을 걸었다. 백미러에 감빛 노을이 담겼다. BTS 노래가 차 안에 가득하다. ‘나는 지금 무엇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 걸까/ 난 지금 어디로 쉬지 않고 흘러가는가 come back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