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 / 최 재 우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 열기가 뜨겁다. 천만 관객을 벌써 넘어섰고, 연일 언론과 방송에서 관련 소식을 다투어 전하고 있다. 주말에 심야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아내가 옅은 한숨을 쉬며 눈물을 훔치는 게 보였다. 가만히 아내 손을 잡아본다. 따스하다. 영화의 이야기는 내 예상을 벗어난다.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고등학교에서 수십 년 우리나라 역사를 가르쳐왔던 나로서는 좀 황당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흥미진진하였다. 역사의 정설(定說)을 비껴가는 문학적 상상과 엉뚱한 구성이 천만 관객을 불러오는 이유가 되었나 보다.
영화를 보고 나온 뒤에도 영화 속 장면과 스토리가 마음속에서 자꾸만 되새김 된다.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는 누구일까? 그가 쓴 시나리오는 이전에 듣도 보도 못했던 새로운 창작물이었다. 못생긴(?) 배우와 그렁그렁한 눈에 슬픔이 배어있는 어린 배우의 연기는 시나리오에 금상첨화(錦上添花)였다. 시나리오에 명품 연기가 꽃피어 사람들을 웃기고 또 울렸다.
불과 12살에 왕위에 오른 단종은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上王)으로 물러났다가 곧, 역모에 연루되었다 하여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추방된다. 정사(正史)인 ‘세조실록’에는, 노산군이 유배지 영월에서 장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고 다만 몇 줄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야사(野史)인 ‘연려실기술’에는, 노산군이 사약을 거부하며 버티자 영월 관아의 심부름꾼인 통인(通引)이 자청하여 활줄로 목 졸라 죽였다고 하였다.
역사적 인물로 실존하였던 엄흥도(嚴興道)는 ‘시신을 누구도 거두지 말라’는 명을 어기고 몰래 시신을 수습하여 봉토도 없이 동을지산 언덕에 묻은 인물이다. 만고의 충절로 청사(靑史)에 기림을 받는다. 영화는 노산군을 살해한 사람이 엄흥도라는 기상천외(奇想天外)한 발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흥도는 노산군이 영월로 귀양 올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함께한 다정한 동무였다. 노산군이 울고 있는데 흥도는 웃었고, 흥도가 원통하여 괴로워할 때 노산군은 되래 태연자약(泰然自若)하였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엄흥도가 노산군을 목 졸라 죽이는 장면이다.
노산군이 갇혀 있는 방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여러 명의 관원들이 방 앞에서 노산의 죽음을 재촉하고 있다. 주저주저하고 있을 뿐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래도 한때 왕이지 않았던가? 흥도가 소리치며 마루로 뛰어오른다. 내가 노산군의 죽음을 거두리라. 그 순간, 문 창호지가 뚫리면서 그 틈새로 흰 끈이 비집고 나온다. 안에서 노산이 줄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흥도는 흰 끈을 잡아당겨 손아귀에 몇 바퀴 돌려 단단히 잡고 어깨에 걸고 끌어당긴다. “전하! 이제 강을 건너실 때가 되었습니다. 제가 강을 건너드리겠습니다.” 피를 토하는 처절한 독백과 함께 줄 힘에 문살이 투둑투둑 부서진다. 스크린에 보이진 않지만, 줄 끝에는 노산군의 목이 걸려있음을 영화는 암시하고 있다. 줄을 당기는 흥도의 얼굴이 비통한 슬픔으로 일그러진다. 스크린에 피눈물로 범벅된 흥도의 얼굴이 가득해지고, 극장 여기저기에서는 부스럭대며 눈물을 찍어내는 모습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노산군이 죽은 지 이백여 년이 지난 숙종 때 어느 날, 충절과 의리를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선비의 상소문이 대궐로 올라온다. “전하! 어찌 노산군의 무덤을 들짐승 우짖는 산마루에 저리 방치한단 말입니까. 전하! 비명에 간 노산군을 왕으로 복위시키시옵소서!” 대쪽 같은 선비가 올린 서릿발 같은 글이 왕을 움직였다. 노산군을 단종으로 복위(復位)시키고, 나무꾼의 손끝으로 전해오던 무덤이 장릉(莊陵)으로 단장된다. 그리된 것은 다 상소문에 일필휘지한 문장의 힘이었다.
일찍이 춘원 이광수도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과 노산군의 죽음을 소재로 소설 ‘단종애사’를 썼다. 춘원은 이 소설을 쓰다가 건강 악화로 콩팥을 잘라냈다고 한다. 1928~1929년 동아일보에 217회로 연재되었는데,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독자들이 아침에 신문 배달이 오면 “동아일보 왔소?” 라고 묻는 대신 “단종애사 났소?”라고 물었다고 한다. 소설 한 편이 장안의 지가(紙價)를 올리고, 식민지 백성들에게는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시나리오가 이끌어 가는 영화 한 편이 비명에 죽었던 노산군의 죽음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실현된 불의(不義)의 권세는 잠깐이었다. 그러나 실현되지 못한 의(義)의 강물은 지금도 도도히 흐르고 있다. 창의성이 돋보이는 시나리오 한 편이 영화로 만들어져 세상 사람들에게 ‘단종 앓이’라는 열풍을 불러오고 있다. 문장의 영향력은 얼마나 대단한 것이며, 글의 힘이란 또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조각가는 칼로 수도 없이 자르고 끊고, 갈고 닦아서 하나의 조각상을 만든다. 화가는 붓끝으로 수도 없이 칠하고 찍고 문질러 하나의 명화를 탄생시킨다. 작가가 글을 쓴다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 좋은 글이란, 많이 읽고 자꾸만 생각하고, 수도 없이 고치고 또 고쳐서 지어지는 것이리라.
나도 60대 중반에 수필가로 등단하여 글을 쓰고 있다. 늘 어렵고 또 조심스럽다. 올 시월 어느 가을밤에 조각배 하나 빌려 타고 청령포엘 가보고 싶다. 교교한 달빛에 잠긴 솔밭으로 젖어 드는 소쩍새 울음소리를 들어보리. 내 거기서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감상(感傷)에 젖은 수필 한 편을 지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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