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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공책 / 전 오 영

장대명화 2026. 3. 11. 05:38

                                         노을 공책 / 전 오 영

 

산자락에 걸린 노을이 붉다. 당신 집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주는 김 할머니의 목소리도 덩달아 붉게 물든다. 갈림길을 지나 들녘 길이 이어진다. 길 양옆으로 휘어져 있는 밭뙈기가 길을 만드는, 고적한 풍경이 다가왔다 멀어진다. 엊그제 당신도 텃밭에 마늘을 놓았다며 마을 어귀를 가리킨다. 신목神木의 귀기를 품은 팽나무 곁을 지나 공터에 주차를 한다. 먼저 내린 김 할머니가 앞서 걷는다.

 

길갓집 개가 짖어댈 뿐 동네는 조용하다. 초록대문 집을 지나 칠하지 않는 은빛 철 대문 앞에서 멈춰 선 할머니가 숨을 고른 후 천천히 문을 민다. 티끌 하나 없는 정갈한 마당이 초면의 어색함을 마중한다. 정면으로 보이는 일자형의 주택은 할머니의 동선에 맞게 개조한 듯 보인다. 소박하다. 할머니는 차를 마시고 가야한다며 꼬리볕이 데워 놓은 마루에 앉힌다.

 

마당 너머 할머니의 마늘밭이 보인다. 밭 가상엔 봄동이 나부작하니 땅에 엎디어 있고 북을 돋아 갈무리해둔 파 두럭은 파꽃 같은 김 할머니의 이미지 그대로다. 단정한 텃밭 위로 할머니의 구부정한 시간이 바람처럼 구름처럼 흘렀을 것만 같다. 풀을 매면서 한글 시간에 배운 글자를 땅에 써 보기도 했다는 할머니의 텃밭은 글거름 때문인지 더 푸른 것 같기도 하다.

 

기실 예기치 않은 방문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못했던 문해 수업을 보강하게 된 이후 김 할머니는 유독 초췌했다. 하루 서너 대밖에 없는 마을버스 시간에 맞춰 학교에 다니는 일이 수월찮은 데다 워낙 마른 체구라서 체력이 쇠한 때문이려니 했다. 그런데 보강 때문에 두어 시간 넘게 한데서 차를 기다린 게 화근이라 했다. 다른 때 같으면 정류장 근처 약국에서 잠시나마 한기를 면했을 텐데 거리를 두어야 하는 시기인지라 그러지도 못했다며 수척해진 이유를 풀어 놓았다. 나는 슬쩍 할머니의 넋두리 틈새로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김 할머니의 집 방향에 볼일이 있다는 핑계로 할머니를 모셔다드리고자 한 내 속내가 오늘의 느닷없는 방문인 셈이다.

 

김 할머니가 문해반 교실 문을 두드린 건 이태 전이었다. 백발에 다소곳한 차림의 할머니는 교실 뒷자리에 앉아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강의 시간 첨삭하기 위해 내가 옆에라도 가면 할머니의 글자들도 당신처럼 긴장하는 눈치였다. 그러다 차츰 이물이 없어지고 할머니의 자리는 빈 적이 없었다. 숙제를 빼먹으면 끼니를 거르는 것 같다는 말을 무심히 던지기도 했다.

 

해방이 되기 전, 일제가 숟가락 젓가락까지 거둬가던 시절에 태어났다는 김 할머니는 유독 말수가 적다. 가난은 배움의 시간을 앗아갔고 젊은 날 남편과의 사별은 삶을 고독하게 했던 것 같다. 때문인지 노트 속 글자들도 쓸쓸해 보였다. 먼저 하늘로 간 남편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던 할머니의 소망이 무르익어가던 어느 날부터 김 할머니의 일기장이 내 책상 위에 올라왔다. 무엇을 써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하면서도 삶의 애환이 속박이처럼 들어 있는 할머니의 일기장은 하루도 빠지는 날이 없었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풍경을 나름대로 적어오기도 하고, 앙상한 나뭇가지를 본 소회를 당신의 고적함에 빗대어 써오기도 했다. 한글의 제자 원리와 애민정신을 배우고 난 다음 날엔 세종대왕을 사랑한다는 글을 수줍게 내놓기도 했다. 어느 날은 글자들이 쓰면 쓰는 대로 머릿속에 들어가 나오지 않으면 좋겠다는 하소가 절절하니 노트에 박혀 있었다. 꾹꾹 눌러 쓴 글자가 자국으로 남거나 지우고 다시 쓴 흔적이 많은 할머니의 일기장이 때론 경經이 되어 내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조용히 뒷자리에 앉아 있던 김 할머니는 이제 맨 앞자리에 앉는다. 말수도 점점 많아지고 얼굴도 밝아졌다. 간혹 방금 배운 것도 도랑 건너다 잊어버린다며 너스레를 피우기도 하고, 교실 분위기가 절인 배추처럼 흐느적거릴 땐 당신의 삶이 녹아든 해학으로 생기를 불어넣곤 한다. “내일 죽더라도 오늘은 사과낭구를 심더라고잉.” 김 할머니의 말에 의자들이 이구동성 허리를 펴는 문해 교실. 늦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한 땀 한 땀 글을 수놓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생의 경전이지 싶다.

 

엷어진 노을이 앞산을 넘어간다. 문득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이 말은 제사 때 쓰는 지방이다. 죽은 사람에게도 학생이란 신분을 언급한 것을 보면 사는 동안 공부해야 할 이유 아닌가 싶다.

 

할머니의 공책에 내일은 또 어떤 이야기가 채워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