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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마리의 암소

좋은 글. 삶의 지혜

by 장대명화 2011. 2. 20.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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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홉 마리의 암소"

 

 한 의사가 아프리카 어느 외진 마을에서 의료봉사를 갔는데, 뜻밖에 마을은 교통과 통신이 불편할 뿐 그 자체로는 풍요로운 마을이었다.

 목축과 농사를 주로 하는 이 마을에서 의사는 금방 마을 사람들과 친해졌고, 특히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귀향한 젊은 청년 한사람과는 친형제처럼 지내게 됐다. 이 청년은 선진 영농기법과 축산기술로 비교적 부유하게 살았고, 장차 빈곤에 허덕이는 조국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바쁘게 일하다보니 청년은 혼기도 늦어졌는데, 이 마을은 남자가 처가에 가축을 바치며 청혼을 해야 하는 풍습이 있었다. 훌륭한 신부감에겐 살찐 암소 세 마리, 보통은 한 마리 정도면 승낙이 되였다.

 이 의사가 어느 날 피곤한 하루 일을 마치고 잠시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길거리가 떠들썩하더니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나와 노래하고 소리쳐 축복의 말을 하는 가운데 바로 그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청년은 어느 허름한 집 앞 남루한 노인의 집 기둥에 아홉 마리 암소의 고삐를 매고는 그 노인의 딸에게 청혼을 하는 것이 아닌가.

 노인의 딸은 말라깽이에다가 키 크고 병약한 체질에 볼품없는 외모여서 염소 두 마리 짜리 처녀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청년이 미쳤다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 처녀가 마법으로 청년을 홀린 것이 틀림없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의사는 급히 본국에 돌아올 일이 있어 귀국한 뒤에도 그 청년이 왜 아홉 마리의 암소를 몰고 그 보잘 것 없는 처녀에게 청혼을 했는지에 대해 두고두고 궁금했지만 세월과 함께 잊혀졌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다시한번 그곳을 찾아 어엿한 기업가가 된 그 청년을 만나게 됐다. 의사는 오랜 궁금증을 해소하듯 물었다. 그 이유를 말해달라고.

이제 중년이 된 청년은 빙긋 웃을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때 한 여인이 차를 가지고 들어왔다. 의사는 그동안 수많은 백인과 흑인 미인들을 보아왔지만 그처럼 아름답고 우아한 흑인여인은 처음이었다. 우아한 자태와 유창한 영어,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미소까지…

 의사는 속으로 ‘아~, 이 사람이 그 때의 말라깽이 처녀 말고 또 다른 아내를 맞이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청년 사업가는 아름다운 여인의 뒷모습을 그윽한 눈으로 쳐다보며 “선생님, 저 사람이 그때의 그 심약했던 처녀입니다” 하고 말했다. 그리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저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가난한 환경으로 점점 여의어가는 그녀를 외국에서 공부하던 긴 세월 속에서 한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물론 그때의 상황으로 아내는 암소 한 마리 값이면 충분했지만 전 아내의 가치를 암소 한 마리에 두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아내는 무척 부담스러워했지만 점차 아홉 마리 암소의 의미를 깨달아가더군요. 그리고 스스로 그 가치를 만들었고, 자신의 가치를 아홉 마리에 걸맞게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았습니다. 아내는 아홉 마리 암소의 틀을 스스로 뛰어 넘은거죠. 이제 제 아내는 이 마을의 전설이 될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에게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라!.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으려면 최고의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라.

 이야기를 들은 의사는 말없이 사업가의 손을 꼭 잡았다.

 

                                                           영동 목요신문 감고을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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