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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에 빚진 자

좋은 글. 삶의 지혜

by 장대명화 2011. 2. 20.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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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생에 빚진 자

 

 일요일 아침이면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모시고 동네 목욕탕을 찾는 40대 중년의 한 남자가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혹시나 미끄러지기라도 할까봐 조심조심 걸으면서 천천히 욕탕으로 들어갔고, 노인이 아프지 않게 천천히 온몸을 씻기고는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는 탕으로 들어가 10여분 만에 자신의 목욕을 마쳤다. 그리곤 다시 노인을 부축해 밖으로 나온 뒤 차례로 옷을 입혀드리곤 함께 나갔다.

 자신은 제대로 씻기가 힘들면서도 행여 감기라도 들세라 서둘러 옷을 입히는 모습이 눈물겨웠고, 그런 아들을 둔 노인은 참으로 복 받은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보기 힘들 것 같은 그 모습을 보니 새삼 찔리는 구석이 있어 나는 오랫동안 마음이 우울했다.

 '잔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듯, 나는 내 부모를 그렇게 모시지 못했다. 차라리 아버지였더라면 나도 한번쯤은 그렇게 목욕이라도 함께 갈 수 있었으련만 몸져누운 분은 어머니였다.

 평소엔 건강하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지셨고, 한 3년간 형님과 내가 번갈아가며 모셨다. 아버지라면 남자들의 역할이 컸을 터이나 어머니이다 보니 병간호의 몫은 주로 형수와 아내 차지였다.

 불행히도 형수와 아내는 직장이 있어 언제까지 병간호에 매달릴 수가 없었다. 이일 저 일을 하고 집에 들어가서 어머니의 무너진 모습을 보는 것도 고역이었지만 그런 시어머니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아내와 할머니가 냄새가 난다며 얼굴을 찡그리는 아이들 모습을 보는 것도 괴로운 일이었다. 어머니를 모시는 일로 형수와 아내사이는 냉랭해졌고, 덩달아 나와 형과도 말다툼이 오고갔다. 돈이 들더라도 시설로 모시자는 여자들의 등살을 마냥 못들은 체 할 수가 없어 우린 3년 만에 어머니를 노인요양시설로 보냈다. 그리고 처음엔 일주일에 한번, 그다음엔 한달에 한번, 그 다음엔 두세 달에 한번, 그렇게 잊혀 진 듯이 찾아갔다.

 돌아오는 길엔 만감이 교차했지만 매달 시설로 보내야하는 비용부담이 언제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연민보다는 ‘그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하는 생각마저 문득문득 떠올랐고, 그러다 천벌을 받을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이 착잡했다. 그렇게 시설에서 7년을 계셨으니 병이 난지 꼭 10년 만에 어머니는 그 무거운 짐을 벗은 것이다.

 장례식 때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비참할 뿐. 자식이 아프면 평생을 희생하고도 뼈에 사무치는 게 부모지만, 부모가 병들면 3년 만에 정이 떨어진다는 사실만 아프게 되새기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짐했다. 늙어서 병들기 전에 적어도 자신의 병원비만은 꼭 모을 것, 그보다 병들지 않게 열심히 운동해서 건강을 다질 것, 그리고 늙어서도 자신을 책임질 줄 아는 노인이 될 것.

 자식에게 비참한 기억을 안겨줘선 안되겠다는 생각에 나는 당장 운동을 시작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겠지만 자신의 게으름으로 병이 드는 것은 나와 자식, 그리고 사회에까지 죄가 된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자식이 찾지 않음을 서운하게 생각할게 아니라 내가 부모에게 얼마나 잘했나를 생각하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되리라.

 불교에서는 ‘전생에 빚진 자가 부모 된 자’라고 했다. 내 자식은 내게 효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식에게 배품으로서 내게 진 빚을 갚는 거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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