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법주사 오리 숲길로 들어섰다. 연녹색 입새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사이로 줄이어 달아놓은 연등이 오는 이들을 맞이한다. 부처님 탄신 봉축 연등이다.
‘경축 속리산 법주사 세계문화유산 등제’현수막이 발길을 잡는다. 우리 지방의 천년 고찰인 법주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축하하는 현수막인 듯하다. 법주사를 세계만방에 알릴 수 있는 축복받은 경사가 아닌가. 여기저기 외국인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세계문화유산인 법주사를 찾은 기념을 간직하기 위하여 경내를 돌며 사진촬영을 하는 것 같다. 앞으로도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아 우리 문화유산을 보고 대한민국의 역사적 향기에 감격할지 모른다. 국가는 작지만 문화적 우수성은 어느 민족에게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우고 돌아가기를 바래본다. 나 또한 적을 두고 다니는 사찰에서 오전 법요식을 마친 후 점등식을 보려고 느지막이 나선 길이다.
해님도 부처님 탄신일을 봉축 하고 돌아가는 것일까. 대웅전 앞마당에 설치해 놓은 제단의 아기부처상에 일몰이 반사되어 찬란하다. 온 누리에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퍼져나가는 듯하다. 나도 부처님의 자비로우심으로 세상에 항상 평화가 함께 하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관불의식을 한 후 경내의 법당을 두루 돌며 참배하였다.
참배를 마치고 잠시 쉬려고 보리수나무 아래 의자에 앉았다. 무심코 올려다 본 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이 선명하여 오늘따라 아름답게 보인다. 하늘과 땅에 존재하는 온갖 만물마저도 부처님 탄신일을 축복하는 것만 같아 마음이 뿌듯해졌다.
상념에 빠져있을 때 지나가던 안면이 있는 불자가 저녁공양을 하러가자고 손을 잡는다. 유명사찰의 규모에 비해 조촐한 공양간이지만 정갈했다. 나물반찬 몇 가지에 된장국 한 그릇의 소박한 음식이었지만 부처님이 주신 공양이라고 생각하니 밥 한 수저, 반찬 한 젓가락도 소중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누군가의 공양으로 이 음식이 나에게로 온 것이 아니겠는가. 소찬이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였다.
둥~ 두~둥~ 둥~ 둥~ 둥~ 저녁예불을 알리는 법고소리가 선율이 되어 경내에 울려 퍼진다. 법주사 세계문화유산등제 감사 예불의 서막을 알리는 북소리가 삼라만상을 깨우며, 깨달음을 주신 부처님의 가르침에 함께하자고 재촉하는 듯하다. 부처님의 가피로 이루어진 축복이리라. 그리고 이를 소중하게 여기고 보살피며 보존해온 역대 고승들의 노력이 오늘의 영광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점등식 준비를 하는 동안 너도나도 오색풍선에 소망을 담아 날린다. 나도 심중에 있는 소망하나를 풍선에 적어 날려 보냈다. 하늘 높이 올라가는 수많은 풍선들은 어떤 사연들을 담았을까?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이나 건강 가족의 행복을 축원하는 염원이 담기지 않았을까? 그리고 누군가의 소원에는 우리나라의 국태민안과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담았을지 모른다. 하늘을 수놓았던 고운 풍선들이 차츰 시야에서 멀어져 간다. 뭇 중생들의 온갖 고통과 고뇌를 모두 가져가겠다는 듯 더 높은 하늘 속으로 올라가더니 점점이 사라져갔다. 모두 천상으로 올라갔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적어 놓은 수많은 사연과 소망들이 이루어지길 바래본다.
주지스님이 하나! 둘! 셋! 구령을 외치자 동시에 산사에 달아 놓았던 모든 연등과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 있던 등불이 일제히 불을 밝혔다. 어둠에 물들어가던 산사가 다시금 밝은 대낮처럼 환해졌다. 경내를 굽어 살피며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는 거대한 청동부처님도 아무런 말도 없이 입가에 자비의 미소만 짓고 계셨다.
스님들이 염불을 외우며 경내를 빠져 나와 오리 숲길로 길잡이를 한다. 뒤를 이어 마을 풍물패가 풍악을 울리며 따르고, 모여 있던 사람들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제등행렬이 되어 줄을 이었다. 어둠이 내려오면 올수록 수 많은 사람들의 손에 들려진 등불은 더 환하게 발길을 밝힌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염불소리가 합창이 되어 어둠속 숲속의 고요를 깨운다. 숲속에서 제 세상을 만나 즐겁게 노래하던 풀벌레들도 놀랐는지 울음을 멈추더니 이내 염불소리에 동화되어 하모니를 이룬다. 성스러운 밤이 어둠을 밀어내며 속리산자락에 밀려들었다.
염불을 외며 한 발 한 발 걷는 발걸음이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태어나 순진무구했던 유년시절도, 꿈을 키우던 소녀시절도, 마음하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객기를 부리던 청춘도, 일가를 이루어 열심히 살았던 내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되짚어보면 사람 사는 인생사에 희로애락과 굴곡이 어찌 없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내 인생의 순례 길은 크게 굴곡지거나 깊게 상처받을 정도로 편차 없이 순리대로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인생무상이라고도 한다지만 돌이켜보니 무사 무탈하게 살아온 세월이 아니었나 싶어 감사하다. 모두가 부처님 가피였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앞장 서 가시던 스님들이 상가가 있는 마을 중간에 설치한 가상 탑 앞에서 탑돌이를 하고 계신다. 등불을 든 모든 사람들의 행렬도 탑돌이를 한 후 광장에 설치한 빛 축제현장에서 멈추어 섰다. 법주사 세계문화유산등제 축하 빛 축제가 시작 되었다. 진행요원들의 팡파르 속에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리는 온갖 모양의 휘황찬란한 빛이 하늘을 수놓는다. 극락세계가 있다면 바로 이와 같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가 극락이리라.
헤어지기가 아쉬워 방금 현란하게 수놓았던 빈 하늘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지 스님이 한 말씀 하신다. “오늘 오신 축하객들 감사합니다. 여기 우리의 전통음료 막걸리가 준비 되었으니 한 잔씩 드시고 가세요! 술이 아닙니다. 곡차입니다. 허! 허! 허!~ 주지 스님의 맑고 청량한 웃음소리가 속리산 자락에 메아리가 되어 울린다. 덩달아 환희에 찬 내 마음도 행복해지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