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 파는 여인 / 장 란 순
가을볕이 살랑거리며 바람에 묻어 다가온다. 세상의 모든 만물을 풍성하게 살찌게 하는 햇살이 감사하다. 잘 느끼지 못하고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기에 햇살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면 이 역시 축복이다. 거리에도 사과와 배, 감과 같은 가을 과일들을 파는 상인들이 좌판을 벌려놓았다. 빛깔 고운 탐스런 과일이 사먹고 싶을 정도로 침샘을 자극한다. 풍요로움이 이렇게 기분 좋은 선물인지 잘 모르고 살아왔었나 보다.
이것저것 구경을 하는 재미에 빠져 있을 때 “묵 드시고 가시소! 우리 토종 묵이라 예!”하는 외침이 들린다. 한 여인이 묵을 팔면서 손님을 부르고 있었다. 곁눈질로 여인을 흘낏 바라보았다. 행색은 초라했어도 단정하고 선한 인상이 믿음이 갔다. 나도 모르게 이끌리듯 좌판 앞으로 다가가보니, 빨간 고무대야에 차곡차곡 정갈하게 묵을 쌓아 놓았다. 묵이 야들야들하니 탄력이 느껴졌다. 굳이 국산묵이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신뢰할 만큼 탱탱해보였다. 내가 묵을 골똘히 쳐다보고 있자 여인은 도톰하게 자른 묵 한 점을 양념장에 찍어 얼른 입에다 먹여주는 게 아닌가.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가 얼떨결에 받아먹었다. 길거리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 먹여준 묵을 받아먹는 다는 것이 당황스러웠지만 맛은 참 좋았다. 떫은듯하면서도 쌉쌀한 토종 특유의 묵 맛이다. 더 먹고 싶은 충동이 일어 슬그머니 좌판 옆 비치파라솔 의자에 가서 앉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여인은 “많이 드시소!”하며 묵 한 접시를 썰어 내놓았다. 묵을 썰어 내 놓는 모습이 장사꾼들이 물건을 팔려는 생각에서 행동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꼭 이웃집 사람이 집으로 놀러온 사람에게 묵을 대접하는 것 같은 친근함이 묻어났다.
내가 자리에 앉아 말동무가 되자 그녀는 자기의 과거를 신세 한탄하듯 털어 놓았다. 경상도로 시집가서 첫 남편은 임신한 아이가 잘못 되어 수태할 수 없는 몸이라 하여 소박맞아 쫓겨났고, 두 번째 남편은 상처한 아이가 셋이나 딸린 홀아비였단다. 아내 병수발 하느라 빈털터리가 된 남자였어도 훤칠하게 잘생긴 인물에 반하여 집으로 따라 들어가 보니, 어린 세 남매가 새엄마 왔다고 우르르 달려드는데 측은지심에 키워보겠다고 작정을 하였단다. 두 팔 걷어 부치고 이일 저일 가리지 않고 억척스럽게 일하여 아이들 둘 대학 졸업시키고, 막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 장삿길에 운전을 하고 돌아오던 남편이 교통사고로 저세상으로 먼저 떠났다고 한다. 하늘도 무심하지 이 무슨 날벼락인가, 너무 기가 막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단다. 애지중지 키운 아이들마저 제 피붙이 찾아간다며 냉정히 돌아서서 떠나버렸다고 한다. 허무한 인생을 신세한탄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세 번째 남편을 만났는데 역시 몇 년 살다가 간암으로 또 사별을 하였다 한다. 여인은 “남편 복 없는 년이 세 번씩이나 팔자를 고치려 욕심을 부리다가 벌을 받은 거라”며 흐느낀다. 참으로 박복한 여인이라는 생각에 흐느껴 우는 가여운 여인의 어깨를 꼭 감싸 안아주었다. 그녀라고 여러 번 결혼하고 싶어서 했겠는가.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 현실을 인간의 몸으로 어쩌지 못하고 받아들이며 순응하고 사는 것이 연약한 우리 삶인 것을.
그 후로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화요일이면 좌판을 벌리는 그녀에게 묵을 사러갔다. 자리가 텅비어 보이지 않으면 혹시 어디가 아픈 것일까? 하는 걱정이 생겼고,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 하며 되돌아오곤 하였다. 그만큼 친근함이 생겼고, 안부를 걱정할 만큼 마음속에 그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장터나 마트에 가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묵인데도 내가 굳이 이 좌판을 찾는 이유는 좋아하는 토종 묵이라고 해서만은 아니다. 그녀의 순수하고 진실하게 느껴졌던 성품 때문이었다. 더구나 사근사근한 말속에는 은근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매력이 있었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길거리에서 만나 가슴속에 숨겨져 있던 지난 과거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마음을 열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또한 믿음이 가지 않으면 어떻게 가슴속에 숨겨왔던 지난 과거를 털어 놓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마음으로 정이 쌓이니 연민의 정마져 느껴졌다.
사람이 산다는 것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일까. 잘산다는 것. 행복해야 한다는 것. 그러한 피상적인 목적보다는 가슴 따뜻한 정을 나누는 것이 어쩌면 이 가을날 우리가 살아가면서 행복해 할 수 있는 최상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묵을 파는 저 여인에게도 다시 한 번 착하고 좋은 남자를 만나 노후라도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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