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 풍경 / 장 란 순
바람이 불때마다 하늘거리는 청초한 모습이 이리도 고울까. 끝없이 펼쳐지는 산책로에 핀 샛노란 금계국 꽃이 햇살에 반사되어 눈부시다. 황금빛 꽃잎 속에 숨어있는 꽃술에는 꿀을 탐하는 벌과 나비가 한가롭게 유영을 하며 만찬을 즐기고 있다. 어디에서나 뿌리를 잘 내리고 성장하는 꽃이기에 외래종이지만 어느덧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다. 금계국이 무리를 이루어 피어있는 중간 중간에는 하얀 망초가 어우러져 더욱 운치를 자아낸다. 금계국이 귀족이라면 망초는 서민 같은 꽃이다. 금계국이나 망초 모두 국화과에 속하지만 망초는 꽃이 작고 흰색이라 사람들에게 괄시받기 일쑤이다. 지천으로 피어나니 잡초라 하여 베어지고 짓밟히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다시 땅속을 비집고 살아나 꽃을 피우는 민초 같은 강단이 있는 꽃이다. 그러기에 바람에 나부끼는 망초는 더 아련하고 애틋하여 정이 간다.
휴대폰을 꺼내 찰칵 찰칵 사진을 찍어본다. 내가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을 알았는지 노랑나비와 하얀 나비가 살포시 꽃잎에 와 앉는다. 어디서 속삭이는 듯 지저귀는 새소리도 들린다. 시냇가 쪽의 갈대숲이다. 숲속에서 새들이 사랑 놀음이라도 하는 걸까. 궁금증이 생겨 발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런데 갈대숲에서 놀던 참새 한 마리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폴짝 인도로 날아든다. 뒤이어 다른 한 마리도 따라 온다. 무엇을 하나 살펴보려고 살며시 다가가도 나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듯 나를 빤히 바라보며 먹이를 찾는 시늉만 한다. 제 세상인 양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내 눈을 어지럽히기 까지 한다. ‘요것 봐라 겁이 없는 참새네, 이제 사람들과 함께 놀아보자는 것이냐?’ 나는 작은 소리로 말했지만 참새는 이미 내가 해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는지 대응을 하지 않는다. 참 맹랑하지만 사랑스럽다.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서 사는 새들은 사람들 가까이 가도 사람들이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나보다. 유년시절에는 오빠들과 참새를 잡아 구워 먹기 위하여 새덫을 놓거나 그물망을 나무 사이에 걸쳐놓고 새들이 잡히기를 기다렸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에 참새들은 어찌나 영리했던지 덫이나 그물에 쉽게 걸리지 않아 공을 치기 일쑤였다. 그런데 지금의 참새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참새를 잡아 구워 먹는 사람을 보기도 힘들다. 세월이 변하면서 참새들의 경계심도 느슨해진 것 같다. 반갑기도 하고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시냇가에 맑은 물이 흐르고, 숲이 우거져 새들이 모여든다. 꽃이 피면 벌과 나비가 날아들고 사람들도 그 속에 하나의 풍경을 연출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자연의 조화인가. 무심천에 꽃길이 조성되면서 사람은 물론 작은 곤충과 새들까지 다양하게 이 아름다움을 즐기려는 것처럼 나타나고 있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가꾸어 가면 풍요롭고 아름다운 풍광을 우리가 누릴 수 있지 싶다.
봄이 되면 무심천 둑길에 벚꽃축제가 열린다. 화사한 벚꽃이 만개하면 흐드러진 벚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사진을 찍고 연인과 더불어 봄의 향기를 음미하며 데이트를 즐기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누군가 이러한 미래의 모습을 생각하며 벚꽃 길을 만든 걸까.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아름다운 벚꽃을 구경하며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간혹 꽃구경을 나와 사진을 찍으면서 가지를 훼손하고 꺽어 버리는 사람들로 인하여 기분이 상할 때도 있다. 나 혼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면 다 같이 보고 즐길 수 있도록 보호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오랫동안 나도 다른 사람들도 같이 공유하며 즐길 수 있는 귀중한 자연이 되는 것이리라.
까만 밤에 하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야경의 아름다움은 불빛과 어우러져 환상적이다. 친구, 연인, 가족들이 모여 사진을 찍느라 분주한 모습을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러한 풍경을 언제까지나 시민들과 더 나아가 우리 미래 세대들에게도 같은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여름의 들꽃들은 향기로우며 가을의 갈대밭 풍경은 얼마나 낭만적인가. 멋진 포즈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명소이기도 하지만 힘겨운 세상살이에 지친 심신을 치료하는데도 제격이다. 바쁜 현대인들은 시간을 내어 먼 장소로 찾아가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 지역의 무심천은 시간을 절약해 주고 멋스러움을 전해준다. 무심천 맑은 물에 다양한 물고기가 모여드니 낚싯대를 드리우고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오수(午睡)를 즐기는 이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하여 드리운 낚싯대는 한가로운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저녁노을이 곱게 물들면 물고기들이 튀어 올라 하얀 비늘이 석양에 비치어 반짝이는 모습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 풍요가 무심천이 만들어낸 선물이다.
사계절이 아름다운 무심천은 청주의 자랑이다. 대교 아래로 아름다운 아치형 돌다리를 놓아 운치를 더했다. 남석교를 건널 때면 예로부터 내려오는 슬픈 전설이 떠올라 가던 길을 멈추고 흐르는 시냇물을 바라본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분명하게 알지 못했던 어린 아이의 죽음이 산자들에게 어떻게 투영되었는지 생각하게 해서다.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줄을 이어 쌩쌩 내달린다. 운동을 하러 나온 듯 뛰기도 하며 빠른 걸음으로 걷는 사람, 다정히 걷는 연인들, 천천히 걷는 부부도 산책을 나왔나보다. 모두에게 무심천은 새로운 희망과 건강을 부여해 주는 젖줄이다. 다른 어느 도시에서도 보기 힘든 아름다운 산책길이 있고, 개나리와 벚꽃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제방이며, 전국을 이어주는 자전거길이 공존하는 무심천을 가진 우리는 어쩌면 행운이 아닐까. 나도 처음엔 체중조절을 하려고 무심천을 걷기 시작했지만 이젠 아름다운 무심천 풍경을 감상하며 사색하는 이 길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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