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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펀센트 행복/ 한정순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12. 12. 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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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퍼센트 행복 / 한정순

 

 천성이 가난뱅이로 태어났나 보다. 밥상도 되고 책상도 되는 상 하나 방 가운데 놓고 책을 읽다 말고 차 한 잔의 여유를 누리는 것이 이렇게 행복하고 좋으니 말이다.

 요즘 연료비를 아낀다고 집안 온도를 2도 낮추고 산다. 책상이 없으니 정사각형 밥상을 방안에 들여놓고 커다란 방석을 깔고 앉아서 어깨엔 무릎담요를 두르고 책을 읽는다. 눈이 피로하다 싶으면 먼 산을 보며 쉬기도 한다. 그렇게 두어 시간쯤 앉아 있었더니 눈도 침침해지고 무릎도 아파서 책을 덮고 일어섰다. 실내 온도도 싸늘하다. 따뜻한 물이라도 먹어야겠다 싶어 커피포트에 물을 붓고 전원을 켰다. 물이 설설 끊는다. 추울 때는 뜨거운 물 한 잔도 몸과 마음을 데우는 에너지가 된다.

 무미건조한 일상 속에서 친구가 되는 것은 책뿐이다. 밖에 나가지 않으면 책과 함께한다. 오늘도 받아 놓고 읽지 못했던 책을 읽기 위해 맘먹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 길을 찾지는 못했다. 단지 말을 옮기지 않는 좋은 친구 같아서 친해지려고 한다.

 무슨 차를 마실까 생각하다가 지난가을 문우에게서 선물로 받은 국화차를 선택했다. 바싹 마른 꽃차를 작은 수저로 하나 떠서 다기에 넣고 뜨거운 물을 넣어 헹구어내고 다시 물을 부었다. 꽃잎이 물을 먹으면서 살포시 피어난다. 노랗게 우려진 국화차를 찻잔에 따르고 꽃 한 송이를 떠서 찻물에 얹었다. 꽃이 동동 떠서 가을 향기로 그득하게 안긴다. 베란다 앞에 서서 한 모금 한 모금 음미한다. 따뜻함이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진다. 가랑잎처럼 바스러질 것 같던 감성에도 물기가 돈다.

창밖으로 보이는 행인들도 종종걸음이다. 춥기는 추운가 보다. 멀리 상가 담을 끼고 붕어빵을 구워 파는 아저씨도 춥게만 여겨진다. 물끄러미 그들을 보고 섰노라니 낮은 온도지만 실내에서 책을 읽다 말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시간의 여유까지 누리는 내가 호사란 생각이 든다.

 노후 생계보험 하나 못 들어놓았고, 저축해 놓은 돈도 없으며 정부에서 주는 돈으로 겨우 살아가는 처지이지만, 나만의 거처가 있고 배곯지 않으니 이것만으로도 감사하지 않은가. 욕심을 부리자면 끝이 없겠으나 아직은 크게 아픈 데 없고 남의 손 빌리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 없으니 이것도 행복이라면 큰 행복이다. 궁색한 살림을 살면서 여유 있는 소리를 한다고 흉볼지 모르지만, 소박한 식사도 내게는 과한듯하여 감사할 때가 많다.

 어려서부터 크게 호강이나 여유 있는 생활로 행복이란 걸 모르고 살아온 나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부모 없이 자라면서 너무 일찍부터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과 싸워야 했고, 부실한 몸으로 살아내자니 서러움인들 오죽했겠는가. 배고픈 세월인들 어찌 없었겠으며, 단란한 가정인들 어찌 부럽지 않았겠는가. 행복이란 것은 팔자 좋은 사람들의 특권으로만 알고 살았다. 그런데 인제 보니 무엇이든지 시작할 수 있는 젊음이 곧 행복이요, 건강한 육체도 행복이었던 것을 젊어서는 미처 몰랐었다. 나만 불행을 짊어진 듯 고뇌하곤 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가진 것이 적어졌지만, 예전처럼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해탈을 경험해서도 아니고, 성령의 은혜로 거듭나서도 아니다. 단지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요, 삶이라면 피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어느 누군들 잘살고 싶지 않겠으며, 성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노력해도 마음 같이 따라주지 않기에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것이 세상 아닌가. 어쩌면 포기 반 순응 반으로 여기까지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추위가 가슴까지 움츠러들게 하는 한겨울이지만, 온도를 낮추고 사는 것도 정신을 맑게 하는 비결 같아 책보기에 안성맞춤이라고 생각을 바꾼다. 그러다 보니 백지장 하나쯤 되는 생각의 차이는 손에 쥐지도 놓지도 못할 때 애가 타는 것이지 놓아버린 홀가분함은 쥔 것만큼이나 평화로움이란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찻잔 속의 열기가 뽀얀 연기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뜨거운 국화차 한 잔이 가슴을 훈훈하고 넉넉하게 만들어 놓았나 보다. 지금 느끼는 이 마음의 여유도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짧은 생명일지 모르지만, 이 순간만은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평안함이다. 불평보다는 있는 것으로 감사할 때 촉촉해지는 것을 본다.

 혼자 사는 자유도 만만치 않은 여유로움이다. 들어가든 나가든, 먹든 굶든 걱정이 없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데, 가지가 없으니 바람 일 일도 없다. 때로는 가지라도 옆에 있었으면 하고 외로움을 하소연해 볼 때도 있지만 거느릴 재목이 못되니 가슴으로 품어내는 모성도 아무나 자격이 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행복과 불행이 50대 50이라면 똑 같은 비중이지만, 행복이 51% 불행이 49%면 저울은 현저하게 행복 쪽으로 기울 것이다. 그 1%의 기울기로 추운 날 뜨거운 여유를 누린다. 서민의 집 몇 채 값 되는 외제차라야 사람의 가치까지 포장하여 대접받는 세상에 1%의 기울기는 내세울 것 없는 부끄러움이지만, 내게는 큰 버팀목이다. 이것으로 하여 포기하고 싶던 삶의 한 자락을 잡고 여유롭게 살아가기를 배우고 있다. 더도 덜도 말고 요만만 하여도 나는 넉넉하다.(수필집 [언제 또 올래])

 

(작법 해설)

수필이라는 것이 참으로 비창작 논픽션물이라면 대한민국의 수필은 문학 이론적으로 거짓말 경연장일 뿐이다. 그 가장 위선적인 점은 아무도 자신의 부끄러운 이야기는 안 쓴다는 점이다.

기존의 수필의 대표적인 이론(?)은 ‘경험한 이야기를 붓 가는 대로 쓰면 된다’는 것이다. 그 같은 이론(?)에 맞장구라고 치듯 ‘수필과 인품은 일치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정목일)

부끄러운 이야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길을 가다가/꼭 끼는 바지를 입은 젊은 여자의 예쁜 엉덩이를/” 보고 유혹을 느꼈다는 이야기도 있을 수 있고(필자의 졸작 시 「외로움을 아세요」), 언젠가 길에 떨어진 천원짜리를 무심코 집어 들며 본능적으로 남의 눈치를 살핀 일도 부끄러운 이야기일 수 있다. 경제적 가난도 남 앞에 내보이기 부끄러운 이야기일 수 있다. 특별히 <수필가> 라는 명함을 무슨 명품 가방쯤으로 알고 달고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수필가들은 하나같이 다 도덕군자들만 모였는가? 아니면 자신의 부끄러운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수필과 인품의 일치’란 말인가? 어째서 대한민국의 수필에서는 자신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쓰고 있는 글을 좀처럼 찾아 볼 수 없는가?

필자가 이 작품을 이 달의 비평 대상 작품으로 선정한 이유는 작가가 산문수필의 가장 본질적인 기본 조건인 소재의 있는 그대로 상태에 아무 화장도 하지 않고, 즉 자기 미화를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작품의 제재로 삼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 아무 화장도 하지 않은 소재의 이야기가 오늘날 같은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세상 속에서는 부끄러운 이야기일 수도 있는 경제적 가난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를 작가는 마치 남의 얘기하듯 담담하게 문장화 해 내고 있다. 소재에 대한 작가로서의 초연한 태도야 말로 가장 정직한 산문 정신이다. 특별히 거짓이 정직처럼 활개를 치고, 유명세에 눈이 어두운 속물들이 제 속 살이 들여다보이고 있는 줄도 모르고 고상한 체 화장하고 나다니는 세상에 더욱 그렇다.

비평자가 이 작품의 작법에서 주목하게 된 것이 바로 ‘남의 얘기하듯 초연한’ 작가의 문장법이다. ‘남의 얘기하듯 하는 문장법’이야 말로 문예창작법의 문학화 작업의 본질적 목적인 작품의 객관화를 의미한다. 만약에 대한민국 수필가 대부분의 문장법이 ‘남의 얘기하듯 하는 문장법’에 있다면 굳이 창작법을 공부하지 않는다 해도 평균적으로 창작적인 작품들을 써 내게 될 것이다.

신변잡기의 원인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의 소재 자체를 작품의 제재로 삼고 있으면서 남의 얘기하듯 하는 초연한 객관적 태도의 문장을 만들 줄 모르기 때문에 작가의 입 냄새 풀풀 나는 신변잡기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사실의 소재를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을 뿐 이렇다 할 창작적인 기법은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담담하게 서술할 수 있는 그 문장법만으로도 너무나도 창작적인 작품이 되고 있지 않은가. 더구나 그 다루고 있는 소재의 내용이 명품 가방이나 자랑하고 다니는 속물적 귀부인 수필가들로 가득 찬 세상에 “정부에서 주는 돈으로 겨우 살아가는” 가난한 작가의 이야기이다.

산문 정신의 근본은 사실성에 있고, 사실성의 본질은 정직함에 있다. 그 글이 다루고자 하는 것이 밝은 것에 관한 것이든 어두운 것에 관한 것이든 밝은 것은 밝은 그대로, 어두운 것은 어두운 그대로 진술하는 것이 산문정신의 근본이다. 문학을 인품이나 인격적 잣대로 판단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늙은 매춘부가 젊어서 몸을 팔던 이야기를 있었던 그대로 쓰면 문학이 안 된단 말인가? 그렇다면 수필가는 도덕군자들만 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창작문예수필 작가는 도덕군자일 필요는 없다. 정직한 산문정신을 갖춘 사람이면 족하다. “서민의 집 몇 채 값 되는 외제차라야 사람의 가치까지 포장하여 대접받는 세상에” 물질적 자랑도 모자라서 <수필가>라는 명함을 명품 가방쯤으로 여기며 달고 다니는 잡문가들의 세상에 단 1%의 행복에 만족 할 줄 아는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펴 보이는 이것이야 말로 정직한 산문정신의 문학이다. (평론 ㅡ이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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