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혹은 사랑 / 임수진
정신이 없어. 아주 멍해. 커피물이 끓고 있었지. 계속 끓고 있었어. 기포를 뿜어대며 주전자는 계속 울었어.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나는 가스 불을 끌 생각을 못했어. 아니 꺼야지 생각은 하면서도 그냥 우두커니 서 있었어. 내 마음이 너무 먼 곳에 가 있었거든. 아주 먼 곳, 모르긴 해도 당신이 있는 곳이었던 거 같아.
당신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당신’이 지칭하는 ‘당신’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 당신인지 아니면 당신을 닮은 다른 무엇인지. 대놓고 ‘당신’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마음의 병은 깊어갔어. 분명한 건 굳이 확인해 보지 않더라도 같은 문제로 서로 다른 장소에서 당신도 나처럼 앓고 있을 거라는 거였어.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런 것처럼 당신과 나도 익숙한 단계에서 벗어나 정들기 단계에 돌입한 것 같아. 정이 든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상대의 단점까지도 긍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뜻일 거야. 흔히 말하는 곰보자국도 보조개로 보이는 눈먼 단계 말이야.
그러고 보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깊어지기 전에 앓는 것 같아. 물론 모든 것이 ‘다’ 라고 하기에는 모순이 있겠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이나 사물들은, 이전의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앓음을 통과의례처럼 경험한다는 거야.
앓음은 긍정적인 의미로 발전이고 성장이잖아.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통증이라고나 할까. 성장통이 성장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란 걸 이해한다면 쉽게 납득이 되겠지. 그럼에도 아픈 것은 아픈 것이고 고통은 고통임엔 틀림없어.
앓는 걸 두려워하면서 어떻게 당신을 얻을 수 있을까. 단풍나무나 은행나무인들 아프지 않고 물들었을까. 내가 잠든 사이, 당신이 잠든 사이 나무들은 처절한 외로움과 치열하게 싸웠겠지. 그 결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거라고 생각해.
캄캄한 밤에 초승달을 안고 선 은행나무를 보았어. 왠지 처연해 보였어. 인고의 시간을 견디는, 슬픔을 아는 모습이랄까. 그 고통을 안 날부터 나는 은행나무나 단풍나무를 볼 때 단순히 ‘물들었네.’가 아니라 ‘물들기 위해 견뎌낸 시간’을 보게 돼. 그보다 한 단계 더 내려서면 시각적으로 이해하려고 했었던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 일이었는가를 깨닫게 되겠지.
난 아직 당신을 잘 모르지만 분명한 건 당신의 본심은 무척 순하다는 거야. 순한 사람은 자기를 잘 표현하지 못하지. 순해서 모든 걸 속으로 삼켜 버려. 그렇게 삼켜버린 것들이 결국 소화불량을 일으킨다는 걸 몰라.
나의 까칠함이 당신을 얼마나 찔러댔는지 잘 모르겠어. 그걸 모르기 때문에 소화불량에 걸린 당신을 이해해주기보다는 내가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 아프다는 것만 기억해. 그래서 더 깊이 회복이 불가능할 만큼 당신을 찔러댔던 것 같아.
혼자 공원을 걸었어. 바람이 머리칼을 헝클어놓고는 어디론가 달아났어. 낙엽을 구슬에 꿰듯 질질 끌고서 말이야. 가을바람은 마음을 베일 염려가 없어서 좋아. 땀구멍을 온통 열어 놓지 않아도 되고. 그래서 가을엔 많이 걷게 돼.
낙엽 진 길목에 나를 풀어놨어. 하루쯤 방목한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지금껏 나는 스스로를 방목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살아왔어. 정말 오랜만에 복잡하게 얽힌 생각들을 잠깐 내려놨어. 내려놓고 나니까 하늘이 참 맑아 보이네. 당신에 대한 나의 마음 분명 바람은 아니야. 가슴이 아픈 건 바람이 아니라고 누군가 말했거든. 나처럼 아프다면 당신도 분명 바람은 아닐 거야.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바람났다는 소리보다는 사랑에 빠졌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어. 한 끗 차이지만 어감은 많이 다르니까.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내 나이 아흔이 되어서라도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게 당신이었으면 좋겠어. 영혼이 소화불량에 걸릴지라도. ([구미수필] 2011년 9집)
(작법 해설)
문자가 발명되기 전의 문학을 구전문학이라고 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설화, 민요 형태의 문학이 그것이다. 입으로 입으로 전해오는 것이라 하니 당연히 이야기형태의 문학이다. 이야기가 이야기로 성립될 수 있는 요건은 말하는 자의 말솜씨와 듣는 자의 상상력이 만날 때이다.
오늘과 같은 문자문학시대의 문학 성립요건은 무엇인가? 오늘날에는 독자의 상상력이 없이도 문학이 문학으로 성립될 수 있는가? 오늘날에도 구전문학시대와 똑 같이 독자의 상상력을 만나야 문학이 문학으로 성립될 수 있다.
그러므로 문학작품의 작법은 일면 독자의 상상력 자극하기라고도 할 수 있다. 마치 구전문학 시대에 이야기꾼의 이야기솜씨가 청중의 상상력을 훨씬 더 풍부하게 자극할 줄 알아야 뛰어난 이야기꾼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문자문학시대의 작가도 문장술이라는 것을 가지고 독자들의 상상력을 더 풍부하게 자극할 줄 알아야 뛰어난 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장술은 사진을 찍는 카메라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장이 정지된 사진밖에 찍지 못하는 카메라 같은 문장이라면 독자는 뇌리 속에 정지된 화면만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장이 활동사진을 찍는 카메라 같은 문장이라면 독자는 뇌리 속에 활동사진을 떠 올리게 될 것이다.
비평자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활동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 같은 문장술>이라는 개념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필자는 ‘문장’과 ‘창작문장’을 다른 것으로 구분하여 본다. 문장은 일반적인 문장법의 문장을 의미한다. 그러나 창작문장은 문예창작 방법으로서의 문장을 의미한다. 문예창작에 적용하는 문장은 문법에 의한 문장과는 다른 ‘형상적 문장법’이다.
이 작품의 문장은 서간체로 볼 수도 있고, 독백체로 볼 수도 있고, 혹은 가만히 듣고 앉아있는 상대를 향해서 혼자 말하듯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 모든 상상력을 가능하게 하는 이 작품의 문장 특징은 무엇인가? “정신이 없어. 아주 멍해. 커피물이 끓고 있었지. 계속 끓고 있었어.”의 ‘어, 해, 지, 어’로 끝나는 어투에 있다. “정신이 없어.”와 ‘정신이 없다.’와는 전혀 다른 상상력을 독자의 뇌리 속에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은 그 같은 문장법으로 독자의 뇌리 속에 갖가지 다른 상상력의 세계를 펼치게 한다.
한 편의 문학작품이 그 독특한 문장술을 통해서 독자의 머릿속에 저마다 다른 상상력의 세계를 펼칠 수 있게 자극하고 있다면 그 작품은 문학성 여하를 불구하고 창작문학이다. 이것이 일반산문문학과 창작문학의 다른 점이다. 일반산문문학의 문장술은 독자의 머리를 논리적이고 이지적으로 자극하고, 창작문학의 문장술은 독자의 머리를 상상력으로 활성화 되도록 자극한다. 다시 말하면 (비창작)일반산문문학, 즉 에세이 작법은 상상적이 아닌 사실적 세계에 관한 논리적 서술을 하는 것이고, 창작문학의 작법은 상상력 세계를 형상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필자의 창작문예수필의 작법서 [형상과 개념]이라는 제목이 이 같은 근거에서 나온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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