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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심(女心) / 최해걸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12. 11. 16.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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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심(女心) / 최해걸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주려고 목각 인형 한 쌍을 사 왔다. 아내는 그 신랑각시 인형을 마주 보게 하여 텔레비전 위에 얹어 두었다. 인형은 처음에는 아무런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사모관대 쓴 신랑이 족두리 쓰고 곤지 찍은 각시를 덤덤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랬는데 어느 날 보니 각시가 신랑 앞에서 살짝 돌아 서 있었다. 방을 청소하다 그렇게 된 것이겠지 싶어 바로 놓았다. 그런데 이튿날 보니 각시가 또 돌아 서 있다.

 

 그래서 아내에게 각시가 왜 자꾸 돌아 서느냐고 물어 보았다.

 

 「나는 당신하고 자존심 상해서 마주보지 않을 거라.」

 

 그래 나도 신랑을 돌려 세웠다. 그러니 그녀는 또 각시를 신랑 앞에 살짝 돌려놓는 것이었다. 그렇게 놓인 목각 인형을 가만히 보니 그 동안 덤덤하던 인형 얼굴에 표정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자신은 앵토라져 있어도 남편의 시선은 끊임없이 느끼고픈 여자의 마음이 각시의 얼굴에 나타나 보이는 거였다.

 

 여자의 마음은 부드러움을 단단한 각질로 감싸고 있는 계란과 같다고나 할까. 각시는 짐짓 냉랭한 표정으로 돌아 서 있어도 아주 신랑의 시선을 벗어나려 고는 하지 않는다.

 

 그날부터 각시와 신랑은 서로 가까이서 갖가지 표정으로 마음을 나타내 보였다. 더러는 은근한 눈길을 보내기도 했고 더러는 토라져서 입술을 꽉 다물고 있기도 했다. 때로는 나른한 표정으로 많은 날을 보내기도 했다.

 

 아내는 곧잘 처녀 때 맞선을 봤다는 S회사 사람 이야기를 했다. 준수한 얼굴에 체구는 듬직했고 인정미가 철철 넘치는 남자였다고 한다.

 

 나도 총각 때 한 처녀를 사랑했는데 그녀는 노을이 질 때쯤이면 자기집 앞 강변에서 긴 머리카락을 날리며 곧잘 서 있던 과수원집 딸이었다고 했다. 그녀는 어느 날 나의 애정이 담긴 들국화 꽃다발을 받아주었다고 아내에게 말했다.

 

 「왜 결혼 안 했어요?」

 

 「그냥 그러고 말었지.」

 

 「당신은 S회사 그 사람과 왜 결혼하지 않았어?」

 

 「미국인가 어딘가에 유학을 간다더니 돌아왔는지 어쨌는지...」

 

 그녀는 슬며시 말꼬리를 얼버무리고 만다. 과수원 집 딸 이야기가 내 어렸을 때 먼 친척 누나를 염두에 두고 지어낸 이야기이듯이 그녀 의 S회사 사람 이야기도 거짓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런데 아내는 곧잘 그 S회사 사람 이름을 빌어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때로는 어머니 앞에서도 ‘S회사 그 사람은 결혼하면 나 데리고 딴 살림나려고 했다’ 라고 하는가 하면 ‘S회사 그 사람은 서른평 짜리 이하 아파트에서는 결코 안 살겠다 하더라’고 했다.

 

 매몰찬 세상에서 혼자 살아가기에는 고통스럽고 외롭지 않은가. 비익조(比翼鳥)란 전설의 새는 한쪽 눈과 한쪽 날개만 갖고 태어나므로 언제나 두 마리가 꼭 붙어서 난다고 했다. 사람도 몸과 마음이 얼마나 불완전한가. 그래서 항상 자신의 결함을 메워 줄 반쪽을 그리워한다. 부부도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은 서로 감싸주고 포용하며 살아라고 처음부터 숙명지어진 비익조가 아닐까.

 

 텔레비전 위의 각시는 예처럼 신랑 앞에서 빼뚜룸이 서 있었다. 여자의 행복한 가정생활의 염원은 얼마나 깊은 것일까. 각시는 처녀 때 그러한 염원을 늘 꿈으로 그려 온 모양이었다. 각시는 처녀 때 이미 단 둘이서만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차남에게 시집가기로 결심했고 더우기 자신의 의지대로는 할 수 없는 자녀까지도 아들 딸 하나를 낳고 신랑이 출근할 때면 대문에 나와 애기를 안고 손을 흔들어 주고 토요일이면 애기를 유모차에 태워 둘이서 밀며 산책을 나간다고 하는 구체적인 모습까지 꿈꾸어 왔음을 이야기 중에 내비쳤다.

 

 뿐만 아니라 각시는 실내에 놓을 가구와 계절마다 창문에 드리울 커튼의 색깔까지 작정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부모를 모셔야 했고 변변한 가구 하나 장만하지 못하는 가난 속에서 살아온 각시는 이루지 못한 꿈이 더 많았으리라.

 

 그리고 성장환경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각하는 방식도 다른 두 사람이 만나 부부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융합해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신랑은 각시를 만나 처음 알았다. 하나의 낱말이 집안에 따라 관용적으로 어떻게 다르게 쓰이는가를. 그래서 말 한 마디에 부질없는 오해를 낳기도 했었다. 때로는 서로 지기 싫어하는 마음 한 가닥씩을 나눠잡고 팽팽한 줄다리기도 했었다.

 

 개성이 다른 두 사람이 의견을 조정하여 하나의 생활체계를 이루어 가다보면 피곤함을 느낄 때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서로 포근하게 감싸주고 위로해 주는 마음이 없다면 부부생활도 견디어 내기 어려운 질곡이 될 뿐이지 않을까.

 

 신랑은 각시의 마음에 S회사 사람이 남아 있어도 개의치 않는다. 각시의 꿈에 남아있는 백마를 탄 그 사람은 결코 그녀의 피안의 프리즘을 나와 현실의 이쪽으로는 넘어올 수 없는 환영의 기사이니까.

 

 각시는 환상의 꿈을 가슴에 늘 안고 있지만 자신의 귀뺨에 불타는 연모의 눈길을 보내주기를 바라 서 있는 곳은 언제나 신랑의 앞이다. 그래서 신랑이 돌아서면 신랑의 시선이 닿는 곳으로 와서는 정작 빼뚜룸이 돌아서는 각시의 그 얄미운 심성까지 신랑은 변함없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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