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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등인의 별 / 정혜승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12. 11. 14.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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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등인의 별 / 정헤승

 

 11월이 슬그머니 12월에게 자리를 내준다. 한 장 남은 달력이 외로워 보인다.

 

 내 곁을 떠나간 많은 사람들이 공연히 궁금해지는 요맘때, 이른 아침부터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하더니, 잔뜩 웅크린 어깨를 한 행인들의 발걸음을 더욱 바쁘게 한다. 이런 날이면 내 마음도 덩달아 부산스럽다. 어느 조그만 교회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가 참회의 눈물을 흘리지 않더라도, 한 해의 마지막 달은 우리를 새로운 깨달음의 순간으로 이끌어 간다. 그래, 머물고 싶지만 더 이상은 머물 수 없는 시간들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같이 하고 싶지만 더 이상 같이 할 수 없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 사람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오늘 같은 날, 손바닥을 뿔고둥처럼 말아 쥐고 하늘에다 대고 소리쳐 본다.

 

 “그곳에선 안녕하신지요?”

 

 희뿌연하게 어두워지는 밤거리를 만나는 날···.

구부정하게 뒷잠을 진 채 어두운 골목길을 밝히러 나오는 한 남자를 본다. 나는 그를 점등인이라 불렀다. 거의 매일 일곱 시가 되면 그가 거리로 나선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니련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이 없다.

 

 그 거리에 가로등은 모두 네 개, 하나 둘 불이 켜질 때면 그의 눈빛에는 알 수 없는 불길이 출렁거린다. 나는 그가 불을 켜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켜는 거라 믿었다. 그에게는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라는 번듯한 직업도 있지만, 이 일이야말로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고 삶의 온도도 따뜻하게 데워주는 거라 믿고 있었다. 그가 이 일을 사랑하는 건 분명해 보인다.

 

 어린 왕자가 여행하던 소혹성 330호에는 가로등 하나와 가로등을 켜는 사람이 나온다. 사람도 살지 않는 제일 작은 별에서 이 일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어린 왕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하나의 의미를 부여한다.

 

 가로등을 켤 때면 별 한 개, 꽃 한 송이를 피우게 하는 거고 끌 때면 그 곳이나 별을 잠들게 하는 거니까 아주 아름다운 직업이라고, 아름다우니까 진실로 유익한 거라고 말이다. 자기 자신의 일보다 이 일에 전념하는 그를 보며 어린 왕자는 처음으로 그를 친구로 삼고 싶어 한다.

 

 나 또한 내 마음속의 점등인을 친구로 삼고 싶었다.

 

 늦은 밤 귀가 길을 비추던 가로등 불빛이 있었기에 나는 어둠이 두렵지 않았다.

 

 수줍던 첫 키스의 어설픔도, 사랑의 아픈 상처도 가로등은 비밀로 해주었다. 소녀가 여인이 되고 결혼을 해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도 가로등은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성탄카드가 날아오기 시작하던 12월의 어느 늦은 밤.

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어둠은 점점 깊어 가는데, 골목길에 점등인은 더 이상 불을 밝히러 나타나지 않았다. 가로등도 기다림에 지쳐 말이 없다.

 

 며칠 째 골목길은 어둠에 감싸여 적막하기만 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기던 마을 사람들 소문에 의하면, 그는 잠을 자듯, 이 세상 불을 밝히다 하늘나라 어린 왕자가 여행하는 소혹성 330호로 불을 밝히러 먼 길을 떠나 버렸다고 한다.

 

 오늘처럼 별이 총총한 밤, 그 중에서도 제일 작은 별을 올려다보며 내 마음속 점등인에게 수줍은 고백을 해 본다. “당신은 나의 영원한 친구”라고 말이다.

 

 그는 나의 아버지다.

 

(창작비평)

구성법의 단계에는 발견이라는 것이 있다. 세익스피어의 [햄리트] 이야기는 두 달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죽음이 숙부의 암살로 말미암았음이 밝혀지게 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어 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구성의 조건 중에서 역전과 발견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지금도 역전과 발견은 구성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현시대에서 역전과 발견법을 작품 구성에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방송극일 것이다. 방속극이 역전과 발견법을 많이 사용하는 까닭은 극의 흐름에 역전과 발견만큼 역동적인 흥미와 감동을 자아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흔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창작의 어려움은 작품의 객관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기상천외한 이야기라도 객관화가 되지 않았다면 아직 창작에 성공 하였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객관화가 되지 않으면 독자들은 작가의 신세타령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다. 기존의 수필이 문학으로 실패한 원인이 바로 문학적 객관화 작업에 관한 아무 이론적 연구도 한 일이 없었기 때문인 것이다. 수필은 수필이면 된다는 식의 무식하기 짝이 없는 말들이 그런 것들이다.

이 작품의 작법은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첫 째는 주인공인 아버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점등인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점등인'이라는 3인칭 시점법의 호칭 뒤에는 이야기(사건)의 주인공이 바로 아버지라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두 번째는 마지막 종결문장을 통해서 "그는 나의 아버지다."라고 밝히므로서 독자들이 이야기의 감추어졌던 가장 중요한 사실을 발견케하는 즐거움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주인공의 객관적 시점의 호칭법과 이야기(사건)의 발견법은 이 작품의 객관화 작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작법의 하나로 기억해 둔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문학평론가 이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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