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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속의 인생 / 강신재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12. 10. 8.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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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험 속의 인생 / 강신재(康信哉)

 

 내일 손님 오시면 쓴다고 문어 다리를 자른다. 장갑을 끼고 써는데도 손마구리가 아프고 시식차 두어 조박 씹어보았더니 턱도 뻐근하다. 아이는 방바닥에 기다랗게 엎드려 남의 노작(勞作)을 널름 널름 입으로 집어간다. 이 집의 가장은 평생 대하는 일 없는 TV화면을 ‘뭣들 하는지’ 본다고 미심쩍은 눈초리로 지키고 있다. <미션 임파시블>의 테마 뮤직은 나쁘지 않다. 가끔가다 우르릉 우르릉 울리는 음향이 아주 그럴 듯하다. 허나 그 보다 더 좋은 소리가 들린다. 밖에서 주룩주룩 비 내리는 소리다. 더러 바람이 불면 쏴악 하고 파도처럼 창유리를 두들기기도 한다. 화신(花信)을 몰고 올 봄비다.

 

 아이가(커다란 대학생이다) 일어나 앉아 “내가 썰어줄게.” 하더니, 가위를 검사하고 “이런 걸 가지고…….” 하면서 드라이버로 수리부터 하였다. 그리고는 등에 구슬이 박힌 엄마 장갑 한 짝을 끼고서 오리기 시작한다.

 

 우스꽝스런 물건을 한두 개 만들더니, 다음부터는 <마티스>의 문양처럼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밝은 등불, 창밖의 빗소리…….

 

 이런 평화를 퍽이나 사랑한다고 나는 짐짓 느낀다. 아무도 바깥에 나가지 말고, <마나슬루> 같은 데 가지 말고, 위험한 짓은 하나 하지 말고, 식구가 다 모여 가만히 있는 것만 제일 좋은 것처럼 느낀다.

 

 허나 아마 이것은 틀린 얘기일 것이다. 물론 틀려 있다. 나도 안다. 사람들은 험한 산에도 가고 기괴한 해저(海底)도 뒤져보고, 우주로도 뛰어나가고, 교통지옥의 도시를 가로질러 일터에서 싸우기도 해야 된다. 그래서 인간의 능력의 극한이 어디쯤에 위치하는지 밝혀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해서만 사람은 태어난 보람을 느끼며, 생존의 의의―그 일차적인 의의―를 납득하게 마련인 것이다.

 

 따뜻한 장소에 가두어 놓고 조용하게 안전하게 오직 그렇게만 삶을 살라고 한다면, 음식물이 쉬듯이 사람의 영혼도 쉬어서 망그러지고 말 것이다. 나도 안다. 잘 알고 있다.

 

 인류는 이렇듯 발전하는 것이며, 여자들의 눈물이나 가슴 아파하는 일은 결국 별 쓸모없는 노릇으로 한옆에 비켜진다.

 

 그러나 사람이 왜 불행한 위험과 등을 맞대인 곳에서 기쁨을 찾도록 만들어져 있는지 나는 여전히 불만이다.

 

 빗소리가 조금씩 불행하게 들려왔다. TV에서는 살인이 행해지고 있었다.

 

 

             *작법 해설*

필자가 이 작품을 비평대상으로 선정한 까닭은 작품의 종결어, “빗소리가 조금씩 불행하게 들려왔다. TV에서는 살인이 행해지고 있었다.”에 있다.

작품의 내용은 손님 접대를 하기 위해서 문어 다리를 자르고 있는 어머니를 방바닥에 뒹굴고 있던 아이가 일어나 가위를 가지고 돕고, 남편은 TV 시청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다는, 작중 화자 ‘나’가 안전과 평화를 느끼는 어느 날의 분위기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만약에 이 같은 어느 날의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는 정도에서 작품을 마무리 짓고 말았다면 신변잡기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더구나 「위험 속의 인생」이라는 제목도 광범위하고 막연한 뜻의 제목이 아닌가. 그러나 종결어, “빗소리가 조금씩 불행하게 들려왔다. TV에서는 살인이 행해지고 있었다.”는 한 문장을 읽는 순간 이 아무것도 아닌 신변잡사가 한 장의 의미 있는 이미지로 머릿속에 그려지게 된다.

그림은 그것이 화판 위에 그린 그림이든 문학적 상상력 속에 그린 것이든 예술작품이다. 특별히 현대문학의 중심 작법은 이미지 창출에 있다. 하나의 창조적 이미지가 시작품 전체를 형상화하듯 단 한 줄의 문장에 의하여 만들어진 창조적 이미지 하나가 작품 전체를 형상화 할 수 있는 것이 예술적 마술이다.

이 작품에서 작중 화자가 희구하고 있는 안전한 인생, 즉 인생의 행복은 ‘빗소리’로 대표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봄의 ‘화신(花信)을 몰고 올 봄비’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품 말미에서 그 소리가 불행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TV화면에서는 살인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의 이 같은 작법의 의도는 무엇일까? 「위험속의 인생」이라는 주제를 일상적 안일과 살인의 대조를 통한 극명한 부각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이 작품의 <鳥자 치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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