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가을
홍 재 석
가을 소식의 전령사 같은 처서의 계절이 지났으니 폭염의 더위도 도망을 가리라. 하늘에는 산들바람에 흰 구름을 타고서, 땅에서는 귀뚜라미 소리를 앞세우고 성급히 산사의 가을이 다가온다. 나는 오늘 강원도 인제의 심심 유곡으로, 산자수려한 비경을 뽐내는 설악산 백담사(百潭寺)를 난생 처음으로 문우들과 함께 찾아갔다.
고즈넉한 산사를 돌아보면서 청산녹수의 절경에 마음을 먼저 빼앗겼다. 다음은 절 앞 ‘수심교(修心橋)’ 다리위에서 바라보니 하천의 물줄기는 흰 물보라를 수없이 만들고 있었다. 무선 사연의 마음을 닦으려고 함인지는 몰라도 먼저 청량감이 든다. 백담사 앞을 흐르는 계곡물은 평화롭게 유유히 흐르고 있지만, 들어오는 물줄기도 흘러 나가는 냇바닥도 보이지를 않는다.
좌우의 산자락에 가려저서 입수와 출수가 나의 안목에는 들어오지 않으므로 천혜의 명당이기에 백담사라고 하지 안했나 싶다. 하지만 백담사는 약1,300여년의 세월 속에 기가 막힌 사연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 절은 신라 진덕여왕 1년(647)에 자장(玆藏) 법사께서 설악산 한계령에 처음으로 창건한 고찰이다. 그렇지만 하늘의 조화인지 화신(火神)의 시샘인지, 아니면 보살님들의 자비 보시를 열열이 불태운 불심인지, 산사에 화재가 아홉 번이나 난 절이란다.
절의 이름도 처음에는 한계사, 영록사, 등 여섯 번이나 바뀌고 절터도 옮겨졌다니 구전십기(九顚十起)의 절이 아닌가. 이 같이 얄궂고 운명적인 화재의 고뇌로 당시 스님들과 신도들의 심정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마음고생은 또한 오죽 하였을까? 그 생각을 하니 한두 번도 아니고 아홉 번이라니 이는 천지조화로 인간의 인내심을 떠보려고 함이 아닐는지……
백담사 풍경소리는 계곡물소리와 어울려져 합주곡으로 은은한 메아리를 치면서 산자락을 휘감고 도라 온다. 이 나그네의 마음속에도 불심이 일지만, 어쩐지 수심의 소리로 들려오는 듯하다. 그래서 하늘만 빠끔한 산사의 초가을은 왠지 쓸쓸한 마음이 앞을 서는구려!
우리네 인생도 한세상 살면서 희로애락과 힘겨운 천재지변의 고난을 몇 번씩을 당하고 있지 않는가. 모진 비바람에 폭풍한설(暴風寒雪)로 인한 엄청난 재난을 당하여도, 묵묵히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다시 일깨우고 살아간다.
가을 산이 아름답고 곱던 수목의 단풍잎도 앙상한 나목이 되지 않는가. 그래도 때가되면 새싹을 트고, 골짝마다 이름모럴 꽃들의 잔치를 벌일 것이다. 이것이 대자연의 법칙이요 오묘한 섭리(燮理)다. 맹자의 글귀에도 “순천자흥 역천자망 (順天者興 逆天者亡)”이라하였다. 하늘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우리들은 다시 되새기어 보아야 하리라.
조석으로 변해가는 가을을 맞이한 백담사 대보광전 앞에서 두 손을 합장하니, 작은 내 마음과 몸이 더 작아지는 것 같다. 매년 설악산 대청봉에 첫서리가 내리면, 푸름을 자랑하던 산야의 수목들은 점차 남하하면서 마지막 정열을 불태운다. 마치 사랑의 화신이 되여 시집가는 신부처럼 연지, 곤지로 곱게 단장을 하고 떠나갈 차비를 하지 않는가.
우리들은 그을 보면서 야호의 환호로 답하고 한해의 아쉬움을 뒤로 하는 작별의 손짓을 한다. 이는 새로움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염원하는 바람으로 손을 흔들어 주고 있으리라. 우리들 인생도 낙조의 아름다운 황혼처럼 아쉬워하며 뒤돌아보고 보람과 즐거움을 가질 것이다.
이 곳 백담사에는 지난날 스님이시며 독립운동가로서, 우리만족의 응어리진 가슴을 후련하게 글로서 발표해주시던 ‘님의 침목’ 시인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선생의 웅거지다. 절 마당에는 ‘나룻배와 행인’ 의 시비가 세워져있다. 대자연의 섭리 중 반본 환원(返本還源) 이란 성어가 있다. 이는 자연은 본시대로 있음이 더 좋고 소중하다는 뜻이다. 산사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마음과 천태만상의 모습도 자연 그대로가 좋다. 그래서 자연보존이 더욱 요구되는 현실이 아닌가.
또한 전직 전두환 대통령께서 퇴임 후 한때나마 국민들에 대한 사죄를 빌려고 이 절에서 머물고 있던 흔적을 보았다. 옛 말에 죄짓고 못산다는 말이 새삼 떠오르니 올바른 삶이 얼마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불교의 기초를 이루는 동시실천의 기본 덕목으로 팔정도(八正道)가 있다. 이는 불고불락(不苦不樂)의 정신이다. 남을 고통스럽게 하지 말며, 나의 락을 쫓아가려고만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닌가. 즉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으로 인간 삶의 올바른 길을 말함이다.
오늘날의 현실에서 올바른 삶의 가치관과 소중함에 대한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지 않는가. 이제라도 입으로만 외치지 말고 인간으로서의 지켜야할 도리를 새삼 느끼면서 각성하고 실천해야만 변하리라. 앞으로는 누구나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색찬란한 아름다운 산사의 가을을 내 마음속에 새로운 다짐으로 곱게 색칠해 가리라.
2012.8.31 새한국문학회 경암백일장에서
값 / 강은교 (0) | 2012.10.08 |
---|---|
위험 속의 인생 / 강신재 (0) | 2012.10.08 |
사과를 깍으며 / 정성화 (0) | 2012.10.06 |
메밀 풀 / 신영기 (0) | 2012.10.06 |
바닥론論 / 최미지(천강문학상 수필 대상작) (0) | 2012.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