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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의 삽화 / 최재남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11. 9. 7.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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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저녁의 삽화 / 최재남

 

  그날 저녁, 식구들과 칼국수를 먹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삼각지점의 일방통행 길을 천천히 걸어 나왔을 때 "쾅" 무언가 부딫치는 둔탁한 소리를 들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그곳으로 뛰었다. 불과 10m도 안 되는 지점에서 사람이 차에 치었다. 차는 거대한 몸체의 지프였고 차에 치인 것은 칠십을 넘긴 노인이었다.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할머니를 밑에서 받쳐 안고 있었다.

  "저기~ 저 할머니, 00동에 사는 할머니여" 길가에서 행상을 하는 어떤 아주머니가 그런 말을 했다. 무엇을 어떻해야 하나 우왕좌왕 하는데 누군가가 "119에 전화해" 했다. 아참, 그러며 핸드폰을 여는데 또 누군가가 "불렀어요" 그랬다. "경찰에 신고해" "했어요" 여기저기 모여든 사람들이 뒤죽박죽으로 한마디씩 해댔다. 할머니 이마에서 피가 흘러 내렸고 왼쏜은 심하게달달달 떨었다. 차게 끼인 할머니의 작은 손수레가 눈에 띄었다. 폐휴지를 모아 화루하루 연명하는 독거노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네가 사고를 냈거든, 빨리 이쪽으로 와줘." 여자는 남편에게 전화를 건 듯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때였다. "이년아, 넌 눈이 없냐. 날 어떻게 할껴, 이년아." "네, 할머니. 잘못했어요. 제가 병원에 모시고 가서 다 고쳐드릴께요." "이년아, 저것은 어떻할껴." "제가 다 변상해 드릴께요. 전처럼 똑같이 해드릴께요. 죄송해요." 여자가 쩔쩔매며 어쩔 줄 몰라 하자 할머니는 닿지도 않을 오른손을 뻗어 여자의 머리채를 잡으려 했다. "이 년아 넌 눈이 없냐, 이 미친년아, 내가 죽었으면 어쩔 뻔 했어, 이년아, 난중에 내가 아프면 어쩔껴, 이년아, 어떻할껴~. "할머니는 갑자기 무언가 씌운 사람처럼 아귀 같은 말들을 뱉어냈다. 자그마한 몸 어디에서 저런 소리가 나올까. 둘러 싸여 있던 사람들이 슬슬 자리를 떴다. 말끝마다 년 자를 붙여 예기하는 할머니를 감당할 수 없는지, 처음엔 동정적이던 사람들도 차차 그 자리를 피해 떠났다. 상황을 지켜보려던 나도 더 있을 수가 없어서 걸음을 옮겼다. 보긴 보았는데, 무엇을 보았는지 아득한 시간 속으로 '앵앵'거리는 앰블런스 소리만 점점 크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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