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똥선생님 / 김영옥
시어머니께서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평소 시어머니를 세상에 없는 분이라고 여겨왔다. 30년이 넘도록 어머니로부터 싫은 소리 한마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수술 후 머리카락을 다 밀고, 틀니까지 밖으로 다 들어나자 그렇잖아도 나이에비해 늙어 보이시던 모습이 더 초라한 모습이 되었다.
퇴원 후 어머니는 아들네 집에서 기거하셨다. 두 사람이 부축을 해야 힘겹게 화장실 변기에 앉을 수 있었다. 대변을 보고 난 후 손수 뒷손질마저 할 수 없게 되었다."어머니, 조금만 엎드려 보세요. 괜찮아요. 닦아 드릴께요."하면 처음에는 부끄러워 하셨지만 나중에는 포기하시고 하는 대로 맡겨 두셨다.
세멘트 담장 밑이나 보도 불럭 틈 사이에서 노랗게 피어난 민들레 꽃을 보게 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아기 똥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직장인 어린이 집에서 똥귀저기를 하루에 열 번도 넘게 갈아 채울 때도 있다. 오줌귀저기까지 합치면 아마 족히 3,40번은 될 것이다. 그러다보니 귀저기 갈아주는 달인쯤 되었다. 냄새만으로도 누가 똥을 쌌는지, 그냥 방귀만 뀌었는지 구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왜 어른들이 아기 똥냄새를 '구수하다'고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똥이라면 얼굴 한 번 찌프리지 않고 신속 정확, 청결하게 하는지라 '명품 똥선생님' 이라는 칭호까지 받게 되었다.
아기똥에는 크기만 작을 뿐 어른 똥과 다를 것 없는 똑 떨어지는 똥도 있고, 묽은 똥, 이것저것 섞여 나오는 똥, 찔끔찔끔 계속 나오는 똥, 완전 설사, 그 외에도 몇 종류가 더 된다. 시어머니 똥도 다를 것이 없었다.
얼마 후 시어머님은 아버님이 계시는 시골집으로 내려 가셨다. 그 후 여러 차례 입원과 퇴원을 반복 하였으나 오히려 치매는 조금씩 더 악화되고 있었다. 이제는 아예 아기처럼 기저귀를 차고 계신다. '어머니!' 하고 크게 부르면 겨우 '응?' 대답하시는 게 다였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실려 오셨을 때 어머니는 입으로 음식을 넘길 수조차 없는 상태가 되었다. 산소 호흡기를 착용하고 링거를 주렁주렁 달았다. 힘들게 숨을 내 쉴 때마다 눈썹과 눈썹사이를 찡그리신다. 하루 세 차례 코로 연결된 굵은 호스를 통해 주사기로 음식을 투입하였다.
그런 어느 날 한 밤중에 어머니 기척 소리가 들려서 기저귀를 살펴 보았다. 소화가 잘 된 아주 좋은 똥을 참 많이도 누셨다. 며칠 동안 대변이 나오지 않아서 고생하셨는데 아기 똥 같은 똥을 보니 여간 반갑지 않았다.
아기들은 언재 보아도 예쁠 뿐이다. 아기들이 더 없이 예쁘고 사랑스러운 까닭에 똥 치우는 일이 아무렇지 않은 것이다. 때로는 어린이 집에 있는 아기들을 모두 데려다가 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 입장이 된다면 틀림없이 실천에 옯겼을 것이다.
"어머니, 똥 누셨네. 깨끗이 치워 드릴께요."
어머니는 알아 들으셨을까. 숨소리만 거칠다. 문득, 어릴 적 뒤꼍 대나무 숲에서 불던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그 바람을 타고 마당에서 끊이던 구수한 매주콩 냄새가 실려 오고 있었다.
(제 1회 창작수필 신인상 작가)
<작품 해설>
(1) 뇌출혈과 치매를 앓으시는 시어머니 똥 치워 드리는 이야기를 어린이 집에서 아기들 똥귀저기 갈아주는 이야기에 접목하여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를 알아내는 일이 작품 감상과 작법 이해에 중요한 열쇄가 될 것이다.
(2) 이 작품의 주제는 '아기들은 언제 보아도 예쁠 뿐이다. 아기들이 더 없이 예쁘고 사랑스러운 까닭에 똥 치우는 일이 아무렇지 않은 것이다.' 라는 문장 속에 들어 있을 것이다.
(3) 아기들이 예쁘기 때문에 아기 똥이 더럽지 않듯이 뇌출혈과 치매로 자기 의지 능력을 잃어버린 시어머니도 아기가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어른 똥인들 아기 똥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느냐는 것이 이 작품을 통해서 작가가 말하고 싶은 주제일 것이다.
(4) 작가는 기독교 신자다. 하나님은 세상사람 모두를 죄의 권세에 눌려 신음하고 있는 차별 없는 똑 같은 불쌍한 존재로 보신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이니까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대할 수 있는가? 이 작품은 그같은 기독교 사상의 실천적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비결은 동질성의 발견에 있다. 어린아이는 똥조차도 구리지 않다는 것은 온 인류가 경험하여 온 사실이다. 만약에 어른 똥을 어린아이 똥처럼 여길 수 있다면 어른 똥에서도 '구수한 매주콩 냄새가 날 것이라는 것이 이 작품의 메시지인 것이다.
(5) 작가는 이같은 매우 고차원적인 사상을 어린이 집에서 날마다 떡 주무르듯 하고 있는 직업전선의 이야기를 통해서 시침 뚝 따고 아무렇지도 않게, 오히려 너무나도 가벼운 텃치로 형상화해 내고 있다.
(6) 이 작품에서 주목해 보아야 할 구성법은 첫 째로는 시머니 이야기와 아기 똥 이야기를 교차적으로 엮어 짜는 구성법으로 작품성을 한층 더 끌어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작품 전체를 통해서 한 번도 화자가 직접 전면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문장법이다. 이 작품의 화자는 내재적 '나'다. 그러나 작품 서두에서부터 종결문장에 이르기 까지 '나'는 한 번도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수필문학은 소재 자체를 직접 작품의 제재로 삼은 문학이라는 태생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문학양식이다. 따라서 '나'가 작품 속에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재의 '나'가 직접 작품 속에 뛰어 들고 있는 그것이 수필문학의 문학화 작업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소재의 문학화의 어려움은 '나'의 문학화 작업의 어려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작품은 그같은 '나'의 문학화, 즉 상상적 존재화, 혹은 허구화를 화자 '나'를 직접 전면에 등장시키지 않고 끝까지 내재적 화자 위치에 감추어 둠으로 효과를 거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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