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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냇가 / 김 성 준

장대명화 2026. 4. 6. 10:50

                                   어머니의 냇가 / 김 성 준

 

누군들 저 살던 곳이 그립지 않을까. 대도시의 찌뿌듯한 하늘을 이고 살면서도 언제나 마음의 풍향계는 거친 파도치던 그곳을 향한다. 샛바람이 요란하게 불던 그 작은 마을로.

움푹 들어간 영일만의 맨 북쪽 끝자락에 죽천竹川 이 한적하게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곤 했다. 군자를 상징하는 매난국죽의 그 죽에다가 '지자요수知者樂水'라 할 때의 그 물이 합해진 거창한 이름이지만, 기실 그곳 사람들은 대나무처럼 꼿꼿하다기보다는 순박하고 서글서글하기만 하였다.

 

바닷가라서 물이 넘쳐나지만 정작 사용할 수 있는 담수는 늘 부족했다. 나는 열 식구의 대가족 틈바구니 속에서 자랐는데, 여름철마다 어머니는 항상 물 걱정을 하시곤 했다. 80년대 중후반의 시골에는 수돗물이 끊길 때가 종종 있었다. 건조한 수도꼭지를 돌려도 물이 나오지 않으면 어머니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내가 일곱 살 때였던가. 오랜 가뭄과 단수 조치를 견디지 못한 어머니는 미린 빨래를 한가득 담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인근 도시에 사는 친척 집에 빨래를 하러 간 적이 있었다. 오늘날 도시인이 생각하기엔 참 어처구니없을 테지만, 불과 20여 년 전에는 흔한 풍경이었다. 어렸던 나는 어머니의 고생스러움은 헤아리지 못한 채 버스 타고 시내 간다고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가 먼 친척의 눈치를 봐가며 덩치 큰 이불빨래부터 내 작은 양말까지 빠시던 그 장면이 철없던 내 마음에도 어떤 쓰라림을 안겨주었던 걸까. 25년이 지난 지금에도, 어머니가 친척 집 마당에서 퉁퉁 부은 발로 이불을 꾹꾹 밟으시던 그 장면을 아직 잊지 못한다.

 

어머니는 열 식구의 모든 것을 책임지셔야 했다. 밥 짓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새끼들을 씻기셨다. 그때 어머니에게 있어 물이란 곧 모성이었다. 모성이 깃든 모든 동작에는 필연적으로 물이 필요했다. 그러나 영일만이 코앞에 있어도 그건 쓸 수 없는 해수였다. 어머니의 물은 항상 부족했다.

여름이 가물지 않아 비라도 많이 오면 참 운이 좋은 경우였다. 수돗물이 끊겨도 냇가에 가서 빨래와 설거지를 해결할 수 있었다. 어머니와 동네 아주머니들이 냇가에서 일을 하실 때 나와 또래 아이들은 냇물에 다리를 움푹 집어넣고 개구리를 잡곤 했다. 개구리가 잘 안 잡히면 멍하게 어머니를 바라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어머니는 이마에서 땀방울을 훔치며 연신 빨랫방망이질을 하고 있었다. 열 식구를 견뎌내기엔 하루가 너무 짧았고, 방망이질을 게을리할 수가 없었다. 내가 입은 옷, 내가 신은 양말, 내가 덮던 이불 그 어디에도 어머니의 땀방울이 맺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때 어머니의 물은 간난신고였다.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쯤엔 그 냇가도 정비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시멘트로 둘러쳐졌다. 냇가 양옆으로 높다란 벽이 생기자 이제 아무도 그 냇가에서 빨래를 할 수 없게 됐다. 수도가 끊기는 일이 거의 없었기에 그럴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나를 키운 건 어머니였고, 어머니의 냇물에서 길어 올린 깨끗한 물로 나를 먹이고 씻겼다. 모성이 없이 아이가 자랄 수는 없지만, 모성만으로 아이는 자라지 않는다. 이제는 명절 외에는 그 냇가를 둘러볼 일이 없지만, 대나무 숲에서 흘러나온 그 물줄기를 나는 내내 잊지 못한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에 데었는지 갈매기가 끼룩끼룩 울며 머리 위를 빙빙 돌 때, 냇물의 표면엔 황금의 입자가 반짝거리다가 바다를 향해 사라졌다. 그 누렇고 싱그럽고 시원하고 맑고 깨끗함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시각으로, 청각으로, 후각으로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대나무 숲에서 흘러나왔지만 대나무 향을 우려내진 않던 그 이름 없는 실개천, 하지만 대나무처럼 질기에 흘러 끊긴 줄 몰랐고, 대나무 잎처럼 항상 싱싱하고 푸르렀다. 인간은 결국 저 먹고 마신 것으로 이루어진 존재라면 그 물을 마시고, 그 물로 지은 밥을 씹어 삼킨 나는 냇물의 은혜를 입은 셈이다.

이제 어머니의 얼굴엔 마른 강바닥처럼 쩍쩍 주름이 갈라지고, 그 냇가에 다시 내려갈 일은 없다. 냇가에서 뛰어놀던 친구도 다 흩어졌고, 도란도란 빨래하던 아주머니들도 세상을 뜨거나 소식을 모른다. 그렇기에, 바로 그런 이유에서 나는 죽천의 냇물을 그리워한다. 다시 마실 수 없고, 다시는 발을 담글 수 없다는 것은 다시 볼 수 없는 사람처럼 쓸쓸하고 외로운 일이다. 이제는 어머니가 빨래를 이고 먼 친척 집까지 가지도, 냇가에서 빨랫방망이질을 하지 않아도 된다. 깨끗한 수돗물은 콸콸 쏟아지고, 드럼세탁기까지 나온 좋은 세월이다. 그래도 사람에겐 아쉬움이 남는 대상이 있다. 그것이 나를 키운 것일 때는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