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냇가 / 김 성 준
누군들 저 살던 곳이 그립지 않을까. 대도시의 찌뿌듯한 하늘을 이고 살면서도 언제나 마음의 풍향계는 거친 파도치던 그곳을 향한다. 샛바람이 요란하게 불던 그 작은 마을로.
움푹 들어간 영일만의 맨 북쪽 끝자락에 죽천竹川 이 한적하게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곤 했다. 군자를 상징하는 매난국죽의 그 죽竹에다가 '지자요수知者樂水'라 할 때의 그 물이 합해진 거창한 이름이지만, 기실 그곳 사람들은 대나무처럼 꼿꼿하다기보다는 순박하고 서글서글하기만 하였다.
바닷가라서 물이 넘쳐나지만 정작 사용할 수 있는 담수는 늘 부족했다. 나는 열 식구의 대가족 틈바구니 속에서 자랐는데, 여름철마다 어머니는 항상 물 걱정을 하시곤 했다. 80년대 중후반의 시골에는 수돗물이 끊길 때가 종종 있었다. 건조한 수도꼭지를 돌려도 물이 나오지 않으면 어머니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내가 일곱 살 때였던가. 오랜 가뭄과 단수 조치를 견디지 못한 어머니는 미린 빨래를 한가득 담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인근 도시에 사는 친척 집에 빨래를 하러 간 적이 있었다. 오늘날 도시인이 생각하기엔 참 어처구니없을 테지만, 불과 20여 년 전에는 흔한 풍경이었다. 어렸던 나는 어머니의 고생스러움은 헤아리지 못한 채 버스 타고 시내 간다고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가 먼 친척의 눈치를 봐가며 덩치 큰 이불빨래부터 내 작은 양말까지 빠시던 그 장면이 철없던 내 마음에도 어떤 쓰라림을 안겨주었던 걸까. 25년이 지난 지금에도, 어머니가 친척 집 마당에서 퉁퉁 부은 발로 이불을 꾹꾹 밟으시던 그 장면을 아직 잊지 못한다.
어머니는 열 식구의 모든 것을 책임지셔야 했다. 밥 짓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새끼들을 씻기셨다. 그때 어머니에게 있어 물이란 곧 모성이었다. 모성이 깃든 모든 동작에는 필연적으로 물이 필요했다. 그러나 영일만이 코앞에 있어도 그건 쓸 수 없는 해수였다. 어머니의 물은 항상 부족했다.
여름이 가물지 않아 비라도 많이 오면 참 운이 좋은 경우였다. 수돗물이 끊겨도 냇가에 가서 빨래와 설거지를 해결할 수 있었다. 어머니와 동네 아주머니들이 냇가에서 일을 하실 때 나와 또래 아이들은 냇물에 다리를 움푹 집어넣고 개구리를 잡곤 했다. 개구리가 잘 안 잡히면 멍하게 어머니를 바라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어머니는 이마에서 땀방울을 훔치며 연신 빨랫방망이질을 하고 있었다. 열 식구를 견뎌내기엔 하루가 너무 짧았고, 방망이질을 게을리할 수가 없었다. 내가 입은 옷, 내가 신은 양말, 내가 덮던 이불 그 어디에도 어머니의 땀방울이 맺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때 어머니의 물은 간난신고였다.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쯤엔 그 냇가도 정비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시멘트로 둘러쳐졌다. 냇가 양옆으로 높다란 벽이 생기자 이제 아무도 그 냇가에서 빨래를 할 수 없게 됐다. 수도가 끊기는 일이 거의 없었기에 그럴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나를 키운 건 어머니였고, 어머니의 냇물에서 길어 올린 깨끗한 물로 나를 먹이고 씻겼다. 모성이 없이 아이가 자랄 수는 없지만, 모성만으로 아이는 자라지 않는다. 이제는 명절 외에는 그 냇가를 둘러볼 일이 없지만, 대나무 숲에서 흘러나온 그 물줄기를 나는 내내 잊지 못한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에 데었는지 갈매기가 끼룩끼룩 울며 머리 위를 빙빙 돌 때, 냇물의 표면엔 황금의 입자가 반짝거리다가 바다를 향해 사라졌다. 그 누렇고 싱그럽고 시원하고 맑고 깨끗함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시각으로, 청각으로, 후각으로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대나무 숲에서 흘러나왔지만 대나무 향을 우려내진 않던 그 이름 없는 실개천, 하지만 대나무처럼 질기에 흘러 끊긴 줄 몰랐고, 대나무 잎처럼 항상 싱싱하고 푸르렀다. 인간은 결국 저 먹고 마신 것으로 이루어진 존재라면 그 물을 마시고, 그 물로 지은 밥을 씹어 삼킨 나는 냇물의 은혜를 입은 셈이다.
이제 어머니의 얼굴엔 마른 강바닥처럼 쩍쩍 주름이 갈라지고, 그 냇가에 다시 내려갈 일은 없다. 냇가에서 뛰어놀던 친구도 다 흩어졌고, 도란도란 빨래하던 아주머니들도 세상을 뜨거나 소식을 모른다. 그렇기에, 바로 그런 이유에서 나는 죽천의 냇물을 그리워한다. 다시 마실 수 없고, 다시는 발을 담글 수 없다는 것은 다시 볼 수 없는 사람처럼 쓸쓸하고 외로운 일이다. 이제는 어머니가 빨래를 이고 먼 친척 집까지 가지도, 냇가에서 빨랫방망이질을 하지 않아도 된다. 깨끗한 수돗물은 콸콸 쏟아지고, 드럼세탁기까지 나온 좋은 세월이다. 그래도 사람에겐 아쉬움이 남는 대상이 있다. 그것이 나를 키운 것일 때는 더더욱.
'추천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내 유년의 울타리는 탱자나무였다 / 나 희 덕 (1) | 2026.04.19 |
|---|---|
| 제13회 정읍사문학상 대상ㅡ파종 / 김 서 연 (0) | 2026.04.11 |
| 봄의 색, 은밀한 곳에서부터 온다 / 겹/ 육탁/ 마늘(4편) ㅡ김 희 자 (2) | 2026.04.05 |
| 초록으로 가지 못한 시간 / 장 미 숙 (0) | 2026.04.01 |
| 해후邂逅의 뒤 / 김 도 환 (1) | 2026.0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