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 목에 걸린 생선가시 같은 / 유 광 현
내 앞에서 계산을 하던 할머니가 사라졌다. 계산대에는 계산을 끝낸 물건이 수북이 쌓여 있는데 주인이 보이지 않았다. 차례를 기다리다가 계산할 물건을 내밀었다. 낯익은 중년의 계산원은 모니터 밖으로 고개를 갸웃하며 혼잣말을 했다. “어딜 가셨나? ” 내가 농담 삼아 “깜빡하고 집에 가신 것 아닐까요?” 하자 “에이! 설마 그럴 리가요!”라며 할머니가 친정 엄마라도 되는 듯 정색을 했다. 더 살 게 있어 매장엘 다시 갔거나 급한 볼일로 화장실에 갔으리라고 여기는 눈치였다.
지하주차장을 나설 때 이쪽을 향해 뛰어오는 할머니를 만났다. 동그란 안경이 잘 어울리는, 곱상하게 늙은 모습이 내 또래로 보였다. 할머니는 내 시장바구니를 곁눈질하며 “집에 가다 두고 온 게 생각이 났지 뭐예요.” 하며 반가워했다. 그러고는 “아, 글쎄 며칠 전에는 십사만 원짜리 신발을 레때르도 떼지 않은 채 재활용 처리장에 두고 왔지 뭐예요.” 하며 처음 본 내가 초등학교 동창이라도 되는 양 말을 늘어놓았다. 슈퍼로 상품을 찾으러 갈 생각은 잊은 듯했다.
며칠 후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는데 몇 발짝 앞에서 할아버지가 걸어가고 있었다. 큰 키에 삐쩍 마른 노인은 백발이었다. 장우산을 들고서 휘적휘적 걷는 걸음에 자꾸 눈길이 갔다. 집을 나올 때 내리던 안개비가 갑자기 소낙비로 변했다. 우산을 급히 펴들고 노인을 보니 그는 우산을 쓰지 않고 걸음만 빨리했다. 궁금증이 들었다. 저 노인은 비가 오는 걸 모르나? 아니면 우산을 갖고 있는 걸 모르나? 쫓아가서 비가 내리고 있으니 우산을 쓰라고 말을 해줘야 하나? 조바심까지 났지만 한참을 말없이 따라만 갔다. 그러다 갈래길에서 헤어졌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멀어지는 노인을 가만히 눈으로 좇다가 어서 비가 그치길 바랐다.
겨울에 속옷 바람으로 택배를 찾으러 나왔다가 현관 비밀번호가 생각 안 나서 아내가 귀가할 때까지 현관 앞에서 몇 시간을 떨고 있었다는 친구 얘기를 동창 모임에서 들었다. 예전에는 웃어넘긴 이야기가 이젠 남의 일이 아닌 내 일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가끔 집을 나올 때 두려움을 느낀다. 현관 비번을 잊어먹어 집엘 못 들어갈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초인종을 눌러 자고 있는 아내를 깨워 문을 열어달라고 하려면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자구책으로 나는 요즘 비번을 적은 조그만 종이를 지갑 깊숙이 넣고 다닌다.
바람 부는 날, 공원을 산책했다. 지독했던 무더위가 물러간 자리에 가을이 내려앉고 있었다. 불어온 바람에 낙엽이 걸리적거렸다. 문득 물음이 나왔다. 목에 걸린 생선가시 같은, 이 호들갑스럽고 오지랖 넓은 두려움과 연민의 정체는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 보니 꽁무니조차 까마득한 젊은 날의 끝자락을 움켜쥐고서 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와는 다르다고 어린애같이 앙탈을 부리고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오는 노화는 불가역(不可逆)의 자연현상이자 과학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니, 깜빡깜빡 잊고 있는 것이다.
착각, 존재의 이유 / 유 광 현
결혼 후 처음으로 서울을 벗어났다. 미혼인 아들의 첫 발령지가 경기 북부 지역이었다. 은퇴 후 하릴없이 빈둥대던 때라 한집 살림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생면부지의 지방 도시로 아들 따라갔다.
이사하자마자 주민 센터의 요리교실에 등록했다. 20명 중 남자는 나 혼자였다. 청일점이 되고 보니 처음엔 고교 시절, 여학생이 죽 늘어선 여고 앞을 지날 때처럼 주뼛거리고 주눅이 들었다. 그러나 3개월 뒤 만장일치로 반장으로 선출된 나는 더 이상 소심한 남학생이 아니었다. 나는 요리 교실에서 호접몽(胡蝶夢)을 꾸었다.
요리 수업은 2인 1조로 짝을 지어 진행되었다. 내 짝은 50대 초반의 부인으로 첫 시간에 대번 나를 오라버님이라 부를 정도로 적극적이고 붙임성이 많았다. 강사가 시연을 한 후 시식을 하고 나면 경쟁하듯 두 가지 요리를 실습하는데 이때 중요한 게 역할 분담이다. 칼질도 서투르고 재료 다듬는 일도 굼뜬 나는 주로 양념장을 만들거나 손아귀로 물기를 빼는 일을 해서 궁합이 잘 맞는다고 다른 조의 부러움을 샀다. 요리 실습이 끝난 후엔 만든 요리를 미리 준비해 간 그릇에 공평하게 절반씩 나누어 집으로 가져갔는데 그때마다 그녀는 나에게 반 넘어 후하게 담아 주었다.
문제는 그녀가 활발한 봉사활동 때문인지 수업을 자주 빼먹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일이 서투른 내가 요리 전 과정을 혼자서 하는 건 초보 운전자가 밤중에 고속도로를 운전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만든 요리를 반씩 나누지 않고 독차지하는 이점보다 요리 시간 내내 느끼는 당혹감이 훨씬 더 컸다.
전화위복이란 이런 걸까. 내 짝이 안 올 때면 어김없이 수호천사가 나타났다. 교실 뒤쪽에 있던 40대 중반의 날렵하고 표정이 밝던 그 여성은 잽싸게 자신의 일을 마무리하고는 건너와 맨 앞자리에서 쩔쩔매고 있던 나를 도와주었다. 그녀는 집 나간 언니를 대신해서 살림을 돌봐주는 마음씨 고운 젊은 처제였다. 나는 더 이상 내 짝의 부재에 당황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짝의 결석을 은근히 기다렸다. 본디 짝이 후덕한 막내 고모라면 임시 짝은 젊고 매력적인 이웃집 누이 같았다.
어느 날 누이 같은 짝이 카톡을 보내왔다. 언제 한가한 시간에 커피나 한잔하자는 것이었다.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는 나로서는 도저히 거절할 핑계나 명분을 만들 수 없는 달콤한 유혹이었다. 뜻밖에도 커피숍에는 그녀와 낯익은 다른 요리 수강생 한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속내를 들킨 불량 청소년처럼 엉거주춤 자리를 잡고 앉아서 하나 마나 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커피가 식어갈 때쯤 그녀는 조심스럽게 예쁘장한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종교 행사의 초대장이었다. 그녀는 음전한 여자에서 수다스러운 전교자로 돌변하여 행사의 취지를 설명하며 꼭 참석해달라고 했다. 방문 날짜와 시간을 약속하고 헤어지는데 방금 전에 마신 게 커피가 아니라 쓰디쓴 한약 같았다.
종교 단체는 변두리 호젓한 길 옆에 우두커니 있었는데 주위와 어울리지 않게 위풍당당한 5층 건물이었다. 건물 앞에는 막 신장개업한 식당처럼 화환이 즐비했고, 1층 입구에서 그녀와 다른 요리 수강생이 곱게 한복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넓은 건물 안은 한복을 차려입은 안내원들만 오갈 뿐, 한가하다 못해 쓸쓸했다. 방명록에 이름을 쓰고 두 명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층층을 돌았다. 넓은 강당에서 혼자 홍보 영화를 관람한 후 전시물을 살펴보았다. 전시물은 종교적 색깔을 드러내기보다 부모를 그리워하는 손 편지, 가난했던 시절의 각종 생활 소품 등을 통해 험난한 세월을 살다 간 앞 세대의 삶을 재현해 놓아서 가슴을 찡하게 했다
아무튼 나는 일개 요리반 반장으로서는 과분하게 융숭한 대접을 받았고, 환대에 보답하듯 홍보 동영상의 피사체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하였다. 누이 같은 짝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1층에서 배웅을 하면서 내 흑심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밝게 웃으며 아내와 함께 다시 방문해 줄 것을 은근히 요청하였다.
나는 날개 접은 나비가 되어 미몽(迷夢)에서 깨어났지만 추호도 그녀를 원망하거나 탓할 생각은 없었다. 그녀가 베푼 도움의 손길과 아름다운 마음씨를 선의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제멋대로 착각한 나의 경솔함이 부끄러웠다. 그런가 하면 그녀 또한 착각에서 자유롭지 못하였기는 나와 오십 보 백 보란 생각에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녀가 처음부터 나를 선교의 대상으로 지목하여 접근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어쨌든 여자들 숲에서 실없는 농담이나 하며 소일하는 나를 길 잃은 양으로 지레짐작하여 만만하고 무른 사람으로 착각했음이 틀림없다.
생각하는 존재로서 나는 생각했다.
‘인간은 착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양조장 집 맹견 / 유 광 현
내 고향 막걸리는 맛 좋기로 소문났다. 운악산에서 발원한 조종천의 1급 청정수로 빚어서 인근 이동 막걸리에 비견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그런데 한동안 막걸리가 팔리지 않은 적이 있었다. 막걸리 맛을 좌우하는 물과 기술자가 그대로니 맛이 변했을 리는 없다. 값을 올린 것도 아니고, 동네 사람들이 집단 금주를 하거나 불매 운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맥주나 양주로 기호(嗜好)가 고급화된 것은 더욱 아니었다. 양조장 주인으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추석 전날 전통 재래시장을 다녀왔다. 시장 안은 각종 전과 적, 갓 쪄내온 송편 등 차례 음식 냄새와 대목장 상인들의 즐거운 흥정 소리로 풍요로웠다. 바리바리 장을 보고 4층 주차장에 주차한 차를 운전하여 1층 정산소에 내려오니 늙수그레한 주차원이 버티고 서서 손가락을 까딱까딱하며 다짜고짜 차를 멀리 세웠다고 화를 냈다. 내가 주차시간을 자동 인식하는 기계에 몇 cm 못 미쳐 세웠던가 보다. 아무튼 바쁠 때 주차원을 귀찮게 한 죄를 지은 나는 앞으로는 차를 정확하게 세우겠다고 쓴 반성문을 내밀듯 공손하게 주차증을 건넸다. 그는 마치 남대문에서 큰 칼 차고 거들먹거리며 한양 출입을 검문하던 수문장 같았다.
아파트 단지 상가건물 2층에 내과가 있다. 정기적으로 혈압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는 나는 이사 오자마자 바로 1분 거리에 있는 그 내과를 찾아갔다. 의사는 예전 처방전과 똑같은 약으로 처방을 해 주었고 진료 시간은 채 3분도 걸리지 않았다. 대기실 소파에 앉아 몇 달 지난 월간지를 뒤적이며 처방전을 기다렸다. 40여 분이 지나도록 이름이 호명되지 않자 슬슬 인내심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대기 환자가 그리 많지 않은 걸 보면 접수대에서 동료와 수다를 떨고 있는 간호사가 깜박한 게 틀림없었다. 내가 가볍게 항의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은커녕 갈 때와 마찬가지로 나올 때도 인사 한마디 없었다. 과월호 잡지 취급을 받은 기분이었다. 2개월 후, 나는 다른 내과를 무작위로 쉽게 찾아냈다. 그리고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면서 좀 멀리 있는 그곳으로 옮겼다.
오래전에 살던 아파트 단지 입구에 빵집이 있었다. 대단지 아파트를 끼고 대로변에 있어서 누가 봐도 명당자리였다. 맞은편에는 뒷날 아주 유명해진 총각네 야채가게가 막 창업하여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어느 날 퇴근길에 그 빵집에 들어가니 50대 중반의 근엄하게 생긴 부인이 신문을 보고 있었다. 손님이 들어가도 미동도 않은 채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빵만 없다면 그곳이 빵집이 아니라 도서관의 정기간행물실로 착각할 정도로 그녀는 신문 읽는 데만 집중해서 빵을 사러 간 내가 미안할 정도였다. 그 후에 한 번 더 그 빵집을 갔는데 그때도 인사는커녕 손님이 오면 오나 보다, 가면 가나 보다 본체만체였다. 그 몸짓이 '나도 배울 만큼 배웠는데 굽실대지 않겠다’라는 결기로 읽힐 정도여서 그 길로 발길을 끊었다. 먹으면 소화불량이 걸릴 것 같던 빵을 팔던 빵집은 예상대로 서너 달 후 문을 닫았다.
가끔 보도되는, 사람을 물어서 치사케 한 살인견(殺人犬) 뉴스는 개가 원래 사람도 죽일 수 있는 사나운 동물임을 새삼 일깨워 준다. 사람이 개를 물어야 뉴스감이 되는데 요즘은 잊을 만하면 사람을 물어 치사케 한 개가 뉴스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원래 개가 사람을 해칠 수 있는 야성을 가진 동물이니 개를 탓할 수만도 없다. 사람 또한 항상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니 본능에 충실한 주차원, 간호원, 빵집 주인을 탓할 수만도 없을 것이다. 나 또한 매사 적당히 웃어넘기지 못하고 사사건건 따따부따하는 것도 나이 들어 부쩍 늘어난 삐침과 노여움이란 '개'가 내 안에 숨어 있다가 달을 보고 짖어대는 탓이다.
참, 고향 동네 막걸리 이야기를 마무리하자면 이렇다. 막걸리는 양조장 주인이 무심코 집 앞에 매어 두었던 개를 다른 곳에 옮겨 놓으면서 다시 잘 팔렸다. 언제부터인가 양조장 문 앞에 송아지만 한 개 한 마리가 버티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단지 그 개가 무서워 술을 사러 가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마음속에 자리 잡고 앉아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쫓아버리는 맹견(猛犬)은 어찌할 것인가. 내 속에도 언제부터인가 양조장 집 맹견보다 더 무서운 개 한 마리가 산다. 오랫동안 심술 사나운 개를 사랑하여 가슴 한 편에 반려견으로 길러온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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