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랴 / 김 은 숙
나뭇잎은 나무의 귀다. 바람은 나무 주위를 맴돌며 귓속말로 속삭인다. 이파리들은 동의하듯 몸으로 까딱까딱 맞장구를 친다. 푸른빛을 반사해 바람의 말에 화답하기도 한다. 바람은 바쁘다. 세상 곳곳에 전할 말이 많아서다. 숲을 휘돌고 강을 풀쩍 건너뛰어 들판으로 내달린다.
꽃과 풀은 바람이 전해준 세상 얘기를 도란도란 나눈다. 나무는 큰 가지를 흔들며 추임새를 넣는다. 살다 보면 사람이나 동물들, 사물에도 바른길을 안내하는 지침서가 있다. 바람이 나뭇잎에 들려주는 말은 영양분처럼 이파리를 살찌우고 품을 넓힌다. 어떤 말에는 영양소보다 더 많은 지혜가 담겨 있다. 아버지가 내게 늘 하셨던 그 말씀처럼….
우리가 매일 나누는 말(言)에는 지붕이 있고 우산이 있으며 포대기가 있다. 동글동글 꽃처럼 피어나는 말, 반듯하게 각을 살린 말, 믿음이 뭉근하게 깔린 말, 방패처럼 든든한 말이 마음을 살찌우고 키를 키운다. 좋은 말은 귀를 순하고 부드럽게 하며 근심과 걱정을 몰아낸다.
'그랴'
이는 아버지가 생전에 즐겨 사용하던 말(言)이다. 따뜻하고 부드러워 심리적 공감대와 연결감을 주고, 모든 걸 품어주는 큰 말이었다. 돌아보면 그 말 한마디 안에서 나는 푸르게 자랐고 안전하게 꿈을 꾸었다. 아버지의 ‘그랴’라는 짧은 단어는 평화롭고 달콤했다. 예민했던 질풍노도의 성장기에도 마음 온도를 알맞게 데워준 말이었다.
환한 웃음으로 그리던 '그랴'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옳은 일, 바른 일은 물론이고 위로와 용기가 필요할 때, 등을 다독이며 믿음을 주었다. ‘그랴.’라는 말을 가만히 발음해보면, 보름달같이 밝고 부드러우며 명랑한 음률이 동심원처럼 퍼져나간다. 할머니가 쌈짓돈을 헐어 손자들에게 사주셨던 비타민처럼 힘이 솟구친다. 당연히 내게는 믿음이고 큰 의지였다.
맏딸인 나를 유독 예뻐하셨던 아버지는 내가 어떤 말을 하든지 한결같이 '그랴'라고 대답해 주셨다. 언제부턴가 내 가슴에는 그 말의 이미지들이 별빛처럼 영롱하게 쌓여갔다. 덕분에 많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학창시절 친구들 때문에 망쳤던 기분도 이내 뽀송뽀송해졌다. 날을 세웠던 마음속 독기가 흰 눈처럼 녹아내렸다. 아버지의 말에 기댄 하루하루는 양감이 가득한 행복으로 채워졌다. 순수하고 무결해서 지금도 내 앞길을 등불처럼 환히 비추는 것 같다.
나는 줄곧 아버지의 '그랴' 덕분에, 청춘의 뒤안길에서 희망이 골절된 목록들도 비교적 잘 견딜 수 있었다. 첫사랑에 탈이 나고 내 안으로 먹구름이 이주해 올 때도 침침한 불행들은 다행히 의식 속에서 사라졌다. 나는 그 이상 얼룩지거나 눅눅해지지 않는 법을 배웠다.
또한,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데 든든하고 푹신한 의자가 되어 주었다. 아버지는 어떻게 뒷산의 칼바람도, 운명을 찢는 사나운 불행도, 시원하게 대숲처럼 가라앉히는 법을 아셨던 것일까? 나이를 먹어가면서 아버지의 반듯함과 융통성과 너그러운 사유를 나는 조금씩 일깨웠고 배워갔다. 그로 인해 힘든 일이 생길 때면 더욱 야무지고 단단해졌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렀고 아버지는 늦게 발견된 말기 대장암으로 수개월째 병상에 누워계셨다. 병문안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아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아버지께 손을 흔들었다. 아버지는 나보다 더 오래 허공에 손을 흔들며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병원을 방문하고 며칠이 흐른 어느 날, 불안한 꿈을 꾼 직후였다. 직장에서 긴급한 업무가 생겨 아버지를 찾아뵙지 못하게 되었다.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지자 초조한 마음에 전화기를 들었다.
"아버지, 오늘은 일정이 꼬여서 뵙지 못해요. 내일 집에 모시고 와서 맛있는 진지 대접할게요"
"그랴, 바쁜데 뭘 매일 오냐? 너도 일해야지. 애비는 괜찮다. 내 걱정하지 마라. 그랴, 그랴. 내일 보자꾸나. 그랴"
그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앞으로의 내일은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꿈속에서처럼 어두운 바람 한 줄기가 후욱- 아버지의 야윈 등을 떠밀었다. 그날 전화 너머로 들려온 고요하고 차분한 목소리, ‘그랴.’라는 한마디가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버지는 그토록 사랑하던 딸의 손길을 마지막으로 붙잡지 못한 채, 바람에 날리는 풍등처럼 저 먼 곳으로 영영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의 부재가 또렷해질수록 무한한 지지를 보냈던 그의 목소리는 더욱 가슴 아프게 메아리쳤다.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야윈 몸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아버지, 괜찮으세요? 그랴요? 안 그랴요?' 라고 조심스레 여쭤봤을 것이다.
그러면 아버지는 거친 숨을 애써 가라앉히며 '그랴, 괜찮다. 그랴'라고 대답하셨을 터이다. 세상의 빛마저 꺼져가는 찰나, 아직 딸의 모습을 그리며 눈조차 감지 못한 아버지의 그 마지막 순간이 내 가슴에 맺혀 아련히 남아 있다.
세월은 흘러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씻어내지 못한 채 몇 해가 무심히 지나갔다. 좋은 곳에서 평안하게 계실 거라 위로하듯 스스로 달랬지만 세월이 갈수록 그리움은 더욱 깊고 진하게 밀려왔다.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어디에도 계시지 않는데, 계절은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다.
집 앞 호숫가 수양버들은 어느새 노인처럼 등이 굽었다. 아버지와 손잡고 호숫가를 거닐던 그 시절, 이 버드나무들은 나처럼 작고 연약했다. 하지만 지금, 어른이 된 내 모습을 바라보는 나무들은 깊은 이해와 그리움이 깃든 듯 침묵 속에서 나를 지켜본다.
버드나무 가지들이 살랑거리며 바람의 속삭임을 전하는 듯했다. 바람의 전언을 듣고자 나는 나무 아래에 섰다. 미세하게 퍼지는 오묘한 꽃향기가 자분자분 번져난다. 먼 여정을 마치고 도착한 바람은 들판의 자잘한 풀꽃들의 속삭임을 전해주는 듯하다. 마치 바람은 꽃잎의 은밀한 이야기를 향기라는 언어로 풀어내고 있는 것 같다.
'그랴' 익숙한 말소리가 내 귓가에 은은히 맴돈다. 어릴 적 아버지와 호숫가를 거닐던 기억이 생생하다. 부드러운 바람에 풀꽃향기가 살포시 스며들던 그 순간들, 아버지의 목소리는 바람을 타고 버드나무 사이로 흘러 잔잔한 연못 위로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이 호수는 그때의 익숙한 말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를 이곳까지 불러낸 듯하다.
바람을 따라 푸른 버드나무 잎들이 옷자락처럼 휘어지며 연못 속에 제 그림자를 풀어놓는다. 치어 떼들이 물살을 가르는 꼬리 끝에 순한 말(言)들이 매달려 은빛 시를 적는다. 연못에 발을 담그고 먼 산을 보며 꿈을 꾸는 나무는 알까? 주말마다 이곳에 와서 어린 딸에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풀어놓던 한 사내를, 그의 눈빛과 부드러운 몸짓을….
저물어가는 햇살의 잔영을 모아 바람이 호수를 가로지른다. 그 바람의 마지막 여백에 서둘러 내 마음을 새겨 보낸다. 아마도 오늘 밤은 아버지가 ‘잘 지내지? 그랴?’ 하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내게 다녀가실 것 같다. '그랴'라는 낯익은 음성이 귓전에 맴돈다. 나도 모르게 당신을 닮은 어조로 그랴, 라고 낮고 고요하게 불러본다. 어둠 속에 가만히 별 하나가 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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