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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귀의 자존심 / 김 애 자

장대명화 2025. 9. 15. 04:45

                            사마귀의 자존심 / 김 애 자

 

서재에서 청소를 하던 날이다. 방안의 먼지를 쓸어내고 걸레질을 하다가 백자 항아리를 들여다 보니 사마귀 한 마리가 죽어 있다. 덩치가 큰 것으로 봐선 암컷이 분명하다. 연한 갈색을 띤 삼각형의 머리와 툭 불거진 눈, 긴 날개, 한 곳도 손상되지 않은 상태다.

 

“설마 그 녀석은 아니겠지….”

 

처서 무렵이다. 사마귀 한 마리가 현관 앞에서 인기척을 느끼자 삼각형 머리를 곧추세웠다. 자칫 발에 밟혀 죽기 마침한 자리여서, ‘고얀 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올라왔느냐.’며 손가락으로 머리를 툭 건드렸다. 사람으로 치면 가장 자존심 상하는 부위다.

 

녀석은 당돌하게도 즉시 앞발을 추켜들고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내가 이래 봬도 ‘버마재비’란 말이오.”

 

사마귀는 내게 범보다 항렬이 높다는 위세를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버마재비란 범의 아저씨를 이르는 말이다. 산중에서건 밀림 속에서건 범은 날쌔고 사납지만 강적을 만나거나 심지어 포클레인이 굉음을 울리며 위협적으로 다가오면 슬그머니 꽁무니를 뺀다. 그러나 버마재비는 치어 죽을지언정 도망치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는다. 문사들로부터 ‘당랑거철(螳螂拒轍)’이란 칭호를 얻은 것도 그 무모한 용기 때문일 것이다.

 

사마귀는 먹잇감을 잡을 때의 모습도 범처럼 민첩하고 사납다. 범은 밀림에서 산양이나 말 같은 짐승을 만나면 공격 반경 안으로 들어설 때까지는 동작을 멈추고 기다린다. 표적이 방심한 틈을 노리면서 서서히 접근하였다가 순식간에 달려들어 급소를 물고 늘어진다. 사마귀도 먹잇감이 나타나면 눈 깜짝할 사이에 낫처럼 생긴 앞발을 뻗어 잡아채뜨린다. 청개구리나 새끼도마뱀 같은 큰 먹잇감은 목부터 물어 질식시키는 방법까지 범의 행동 그대로다.

 

때문에 숲에서 사마귀는 무법자다. 공작새처럼 긴 날개는 상황이 위급하면 날아갈 때 쓰인다. 낫처럼 생긴 두 개의 앞다리는 날카로운 가시로 덮여 있어 먹잇감을 사냥할 땐 최고의 무기로 쓰도록 진화되었다. 크고 작은 곤충들이 놈의 진화된 앞다리에 걸려들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빠져나갈 재간이 없다.

 

이처럼 무모하고 잔인한 녀석이 현관 앞에서 마주친 안주인의 놀림이나 으름장 따위는 콧방귀도 아까울 터이다. 하지만 나 역시 놈의 목숨 하나쯤 해치우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다급하면 발로 밟아버리면 그만일 터인데도, 놈은 시퍼런 앞발을 쳐들고 삼각형 머리를 갸웃거리며 째려본다.

 

나는 녀석의 날개를 잡고 데크 난간 위에 올려놓았다. 날아가건 다시 기어 내려오건 그건 제가 알아서 할 바다. 그런데 놈은 곱게 살려주는 은혜의 손길에 오줌을 내갈긴다. 제 몸에 사람의 손길이 닿기만 하면 오줌부터 내갈기는 고약한 버릇 때문에 시골에선 녀석을 사마귀나 버마재비라고 부르지 않고 오줌싸개라고 부른다. 수레 앞에서도 혈혈단신으로 대항하는 녀석에게 ‘오줌싸개’란 대단히 불명예스러운 호칭이 아닐 수 없다.

 

충북 진천에 있는 이원 아트에 가면 전시실 중앙에 사마귀가 두 개의 앞발로 총대를 꺾고 있는 조형물을 설치해 놓았다. 분노에 찬 사마귀는 캄보디아 내전 종식 후, 민간인들이 지니고 있던 총기들을 내다 버린 고철 더미에서 쇠붙이를 주워 모아 제작한 것이다. 캄보디아의 젊은 작가 소폰 삼칸이 폴 포트로 인해 20년이란 기나긴 내전으로 캄보디아 국민 4분의 1이 희생된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을 상징하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설명해 놓았다.

 

나는 그 작품 앞에서 ‘폴 포트’가 이끈 ‘크메르루주 정권’에 희생된 수많은 지식인과 종교인들을 생각했다. 폴 포트 자신이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갈 정도로 부유한 가정의 출신이다. 캄보디아 국왕 시아누크는 선진국을 따라가기 위해 해외 유학을 교육정책으로 삼았었다. 폴 포트도 국왕의 배려로 장학금을 받아 전기공학을 선택했으나 정작 그는 파리에서 엉뚱하게도 스탈린과 모택동 사상에 심취했었다. 그리고 유학에서 돌아와 사회평등주의를 실천한답시고 파리유학시절부터 좌익사상이 골수에 밴 키우 삼판과 손잡고 캄보디아를 집권하면서 그들은 살인마로 변했다. 시장을 폐지하고, 통화철폐도 서둘렀을 뿐만 아니라 고위관료들과 지식인들은 처형했다. 학교건물을 감옥으로 개조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다 온갖 고문으로 죽였다. 심지어 갓난아기들까지 사격을 연습할 때 사격의 정확도를 확인하기 위한 실험물로 총질을 해 댔을 정도로 잔인무도했다. 젊은 대학생들과 종교인들은 총알을 아끼기 위해 얼굴에 비닐을 씌워 질식시켰던 광기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캄보디아 국민 중 150만 명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크메르루주 정권이 무너지고, 독재자 ‘폴 포트’는 강금 상태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

 

역사 속의 인물들에 대한 평가는 후세인들의 몫이다. 작가 ‘소폰 삼칸’은 캄보디아 국민들이 20년 동안 내전으로 겪었던 고통과 분노를 사마귀로 형상화하였다. ‘당랑거철’의 용기와 자존심이 바로 캄보디아 국민들의 의지와 정신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박제가 된 사마귀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다시 들여다본다. 더이상 내 손에 오줌을 갈기지도 못하는 녀석은 정원의 어느 나뭇가지에 단열효과가 뛰어난 거품을 부풀려 수백 개의 알을 낳고 죽었을 것이다. 아니 알을 낳기 전에 짝짓기를 끝내고 보다 강한 유전자를 지닌 알을 품기 위해 수컷의 뇌수를 먹어치웠을지도 모른다. 곤충들은 보다 강한 유전자를 지닌 2세를 낳고자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사마귀도 예외는 아니어서 짝짓기를 끝내고 미처 달아나지 못한 수컷을 잡아먹기 예사다. 대신 수컷은 짝짓기를 끝내는 동시에 암컷의 생식기를 제 몸에서 나오는 특수한 분비물로 막아버린다. 자신의 유전자만을 지키기 위한 아비의 눈물겨운 전략인 셈이다.

 

박제가 된 사마귀를 화단으로 들고 내려와 흙을 파고 묻어주었다. 한 마리 벌레가 살아왔던 필생의 날들이 조용히 묻혔다. 결곡한 자존심도 죽음으로 끝났다. 그런데 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당랑거철’의 자존심을 지닌 지사(志士)가 보이지 않는가? 광화문 거리엔 오늘도 가짜 지사들이 별별 구호를 내걸고 고성을 질러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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