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하지 말자.
날카롭던 서슬 다 갈리고, 퍼렇던 젊은 핏줄 모두 잘리고, 눈, 코, 입, 귀, 감각이란 감각들 다 닫혀 버리고, 바람에 펄럭이는 남루를 걸친 채 섰을지라도, 슬퍼하지 말자.
찬물에 발목이 저린 이들이 우리들뿐이겠는가.
물방개 같은 것들, 잠자리며 철새 같은 것들, 친구들, 다정했던 이웃들, 그들이 칭얼거리다 간 빈자리에, 아무것도 줄 수 없었던 내 무능의 뜨락에, 바람 말고는 이제 다시 찾아오는 이 없다 해도, 허기와 외로움도 때로는 담담한 여백일 수 있는 것.
다 내 주어서 편안한 가슴들아, 갈대들아.
마른 허리 꺾고, 야윈 어깨 더 많이 꺾고, 이제 두레박 들어올려 물 마실 기력마저 부친다 해도 슬퍼하지 말자. 강바람게 서로 몸을 한데 묶어 부축하고 버티면 버티는 만큼 힘이 솟는 겨울. 겨울이 모진 만큼 견디면 또 견뎌 내는 것을.
찬 바람에 이가 시린 이들이 우리들뿐이겠는가.
얼마 남지 않은 체온이나마 마른 몸 비벼 서로 나누어 보자. 가난이 파괴하는 것이 인격만이 아니라 해도 헐벗고 굶주려서 오히려 따뜻한 것들아. 갈대들아.
세상에 흔들리는 것이 어디 너희들 뿐이겠는가.
정에 흔들리고, 이해에 흔들리고, 두려움에 흔들리고, 또 때로는 회의와 외로움에도 자주 흔들리나니, 그 참담한 통한의 아픔을 통해서 모든 아름다운 눈물들이 다시 꽃으로 피어나는 것을. 사랑이란, 진실이란, 죽어서 굳어 버린 관념이 아니라 살아서 흔들리며 늘 아파하는 상처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