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깨면 바라다보려고 장미 일곱 송이를 샀다. 거리에 나오는 사람들이 내 꽃을 보고 간다. 여학생들도 내 꽃을 보고 웃고 간다. 전차를 기다리고 섰다가 Y를 만났다. 언제나 그는 나를 보면 웃더니, 오늘은 웃지를 않는다. 부인이 달포째 앓는데 약 지으러 갈 돈도 떨어졌다고 한다. 나에게도 가진 돈이 없었다. 머뭇거리다가 부인께 갖다드리라고 장미 두 송이를 주었다. Y와 헤어져서 동대문 행 전차를 탔다 팔에 안긴 아기가 자나 하고 들여다 보는 엄마와 같이 종이에 싸인 장미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문득 C의 화병에 시든 꽃이 그냥 꽂혀 있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는 전차가 벌써 종로를 지났으나, 그 화병을 그냥 내버려두고 갈 수는 없는 것 같았다.나는 전차에서 내려서 사직동에 있는 C의 하숙을 찾아갔다. C는 아직 들어오질 않았었다. 나는 그의 화병에 물을 갈아 부은 뒤에 가지고 갔던 꽃 중에서 두 송이를 꽂아 놓았다. 그리고, 딸을 두고 오는 어머니같이 뒤를 돌아보며 그 집을 나왔다.숭삼동에서 전차를 내려서, 남은 세 송이의 장미가 시들을세라 빨리 걸어가노라니, 누군지 뒤에서 나를 찾는다. K는 내 꽃을 탐나는 듯이 보았다. 나는 남은 꽃송이를 주고 말았다. 그는 미안해 하지도 않고 받아가지고는 달아난다.집에 와서 꽃 사가지고 오기를 기다리는 화병을 보니 미안하다. 그리고, 그 꽃 일곱 송이는 내가 주고 싶어서 주었지만, 장미 한 송이라도 가져서는 안 되는 것 같아서 서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