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휘와 문학 / 이 승 훈
문체를 구성하는 어휘를 선택함에 있어서 나는 순 우리 어휘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우리 어휘를 더 귀하게 여길 뿐, 문학이라는 테두리에서 표현의 영역이 넓거나 넓은 표현의 영역을 함축해주거나 운율적인 한문 어휘가 있다면 굳이 이를 배척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자고로 문인은 '우리'글 자체를 매개로 행복과 사랑과 명예와 재산을 얻는 사람들이다. 다시 말하면 문인은 '우리글'이 주는 수혜의 폭이 넓은 사람들이다. 문인은 따라서 우리글을 보호양육 할 책임의식을 지녀야 한다. 알천(1) 같은 우리 어휘가 건강을 잃고 시들어 있는데 이를 모른 체 한다면 문인으로서 얀정머리(2) 없는 짓이다. 문인은 우리가 찾아내고 돌보지 않아서 유기되고 파괴된 우리 언어에 대해 생명을 불어넣고 건강하게 세워야 하는 언어의 치유사이기도 하다.
어휘 자체가 수필의 예술성을 높이지는 않아도 어휘나 문체의 운율성을 고려하면 우미한 어휘 선택 또한 중요하다. 문학의 예술성 즉, 문학성을 일러 '언어를 매체로 한 미적 창조와 미적 표현 행위'라고 했을 때, 이미지의 형상화 같은 미적 창조나 미적 표현은 다름 아닌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문체를 구성할 풍부한 어휘력은 바로 문학의 밑절미(3)라 할 수 있다.
평범한 어휘로 얼마든지 문학성을 살릴 수 있다는 주장은 틀림없는 말이다. 반면 '대한민국 문인'이라면 현재 유기된 언어를 살려 쓴다고 시비할 일도 아니다. 생소하다는 이유로 곧장 '어려운 어휘'로 치부하면 우리는 문학적인 어휘를 놓칠 수 있다. 글을 읽다가 생소한 어휘가 튀어나오면 이를 눈치 주거나 사전을 찾아보기 귀찮아 대충 넘겨버리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사전을 찾아 지적 욕구를 해소하는 자세가 글을 쓰는 우리에게는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따라서 수필가로 등단을 하면 글을 쓰든 수필을 쓰든 먼저 우리나라 국어대사전부터 구입하기를 권하고 싶다. 산문 문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수필가는 국어사전을 옆구리에 끼고 살듯해야 한다. 4~50년 동안 문인의 길을 걸어온 원로들도 방대한 우리말 대사전을 늘 곁에 두고 사는데, 하물며 우리는 생소한 어휘 몇 개 나왔다고 눈살을 찌푸리거나 엉뚱한 해석을 해서는 곤란하다.
언어의 표현으로 예술성을 나타내는 문인이 스스로 어휘 감각을 둔화시켜서는 안 될 일이다. 일상적인 어휘의 매너리즘도 벗어나야 한다. 신선한 공기를 유입하듯 너무 자주 사용해서 물린 어휘를 대체할 새로운 어휘를 찾고 연구하는 자세가 우리에게는 더 필요하다. 영어 기타 외국어 어휘는 밥 먹듯이 암기하면서 왜 우리 어휘는 암기하려 하지 않는가. 국어사전에도 손때를 묻혀라. 너덜너덜해진 영어사전보다 너덜너덜해진 국어사전이 더 자랑스럽지 아니한가.
우리 국어사전에는 평생 글을 써도 찾아내지 않으면 단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할 주옥같은 어휘들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이들은 세상 밖으로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들을 누가 꺼내 줄 것인가. 국어학자는 아니지만 문인은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므로 낯선 어휘라 하여 이를 경계해서는 곤란하다.
전혀 수필이라는 인식 없이 써 온 글이 어느 날 등단을 하였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모두 수필로 변하는가. 그건 아닐 것이다. 여러 해 동안 수필이라고 써오면서도 수필의 맥을 못 짚는 아니 짚어내려고 노력마저 덜 하는 글을 대하면 안타까움이 일렁인다. 아직도 이러한 수필의 문학성 타령을 하려니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진부한 느낌조차 든다. 그러나 수필은 그만큼 어렵다. 글을 쓰는 기술은 늘어도 수필 쓰는 기술은 쉽게 안 는다. '예술성이 없으면 수필이 아니다.'라는 분명한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우리는 자신의 글에서 예술성을 추구하려는 고생을 안 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앞에서 밤새도록 자판을 두들긴다고 스며드는 예술성이 아니다. 우리 수필가는 예술의식이 부족해서 쉽게 그리고 성급하게 펜과 사유를 놓아버리는 것은 아닐까. 더 이상 펜을 쥐고 있을 수 없는 마지막 한계를 느낄 때 예술성은 수필 안으로 슬며시 배는지도 모른다. 끊임없는 창작은 수필가로서 기본이며, '수필'을 쓰려고 고뇌하다 보면 '예술'은 결코 우리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수필가는 예술가이다. 예술성 판단이 절대평가일 수 없다 하더라도 예술성이 없으면 수필이 아니다.
인터넷 문화의 발달로 우리 언어가 해체되고 파괴되는 모습을 본다. 이런 가운데 적잖은 수필가가 그동안 묻혀있던 예쁜 우리 어휘를 곰비임비(4)찾아내고 자신의 작품에 활용하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처음에는 낯설어 해도 금세 친숙해져 사용되는 것이 우리 어휘다. 이미 '우리말 살리기 운동본부'가 결성되었고 요즘 텔레비전에서는 우리말 겨루기 대회를 자주 방영한다. 일반인도 그만큼 우리말에 관심을 기울여 실력을 뽐내는 마당인데, 우리말과 동고동락하는 문인의 어휘력이 일천해서야 되겠는가. 늘 국어사전을 가까이 하며 자신만이 잘 쓸 수 있는 어휘 한 권 정도는 적바림(5)해 가자.
1.알천: 재산 가운데 가장 값나가는 물건, 또는 음식 가운데서 제일 맛있는 음식.
2.얀정머리: '인정머리'를 낮잡아(속되게) 이르는 말.
3.밑절미: 사물의 기초가 되는, 본디부터 있던 부분.
4.곰비임비: 물건이 거듭 쌓이거나 일이 계속 일어남을 나타내는 말. 계속해서.
5.적바림: 나중에 참고하기 위하여 글로 간단히 적어 둠. 또는 그런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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