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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밖에서 나를 찾는 여행자 / 박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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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대명화 2022. 1. 19.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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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는 밖에서 나를 찾는 여행자 / 박양근

 

인생은 여행이다. 천상병이 세상을 떠날 때를 “귀천”이라고 하였듯이 삶이란 여행이고 작가에게는 창작의 길과 숲을 지나는 여로이다. 작가가 행하는 여행은 갖가지 정신적 육체적 형식으로 나타난다. 주어진 환경에서 도망하거나 노마드로서 유랑하거나 무엇인가를 찾는 탐색이거나 수도사로서 순레이거나 가벼운 기행, 하다못해 산책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것은 관광이나 맛보기 ‘투어’가 아니라는 말이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이곳저곳을 누비는 여행은 작가로서의 길이 아니다.

 

작가들은 보통 사람과 달리 특별한 여행을 한다. 몸속에 원초적인 노마드의 피가 흐르고 있어 늘 떠나면서 기대를 갖지만 돌아올 때는 무엇인가 허무와 무익함을 겪는다. 작가도 언제 떠나는가. 무언가 새로운 환경을 원할 때, 무심코 흘린 말이 절박한 고백임을 깨달을 때, 좌절하고 실연당하여 자신이 사라졌음을 직감할 때 떠난다. 최초의 여행작가 호메로스는 <오디세이>라는 지중해 모험록을 썼다. 오디세이가 왜 싸우러가고 다시 바다를 표류한 끝에 고향으로 돌아왔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오디세이라는 이름을 모든 여행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그 후 세계의 모든 작가들은 글이 끝나면 떠나고 여행에서 돌아오면 다시 글을 쓸 수 있다는 정신적 순환으로 자신을 오디세이로 간주하였다. 그 점에서 <오디세이>는 여행의 주제를 가진 모든 수필과 시와 소설의 원형이 되었다.

 

몸의 여행이 반쯤은 작가를 만든다. 몸이 자유롭지 않으면 정신이 지혜로울 수 없다. 작가는 늘 안일한 가정, 야만의 사회, 폭주하는 역사에 묶인 몸을 해방시키려 한다.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나는 가정 교회 국가로 부터 자유롭고 싶다"고 고백하였다. 사실 안락한 호텔과 푸른 지중해 해변은 편안한 휴식처가 될지 모르나 좋은 여행지는 아니다. 황톳빛 구부러진 시골길, 무너진 성벽 위에 뜬 달, 바람만 부는 갈대밭의 외진 곳, 성화 모자미그가 그려진 시골 성당의 입구, 올리브 나무 밑의 찰랑이는 이슬람 연못을 만날 때 비로소 우리는 제대로 왔구나 하는 눈물을 흘린다. 이런 곳이 글쓰기를 부르는 영감의 장소가 된다. 이런 먼 곳에 다다르면 비로소 깊숙이 숨어있던 나를 발견한다. 비로소 방랑과 모험과 순례가 외부의 타격에 멍든 상처를 아물도록 해주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작가가 되려면 늘 '홀로됨'을 찾아야 한다. 작가란 언어를 대하는 순간 독신자이다. 영혼의 싱글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독신은 마치 고향곡의 서곡과 화폭에 갈겨지는 유화의 첫 붓자국과 같다. 그리고 죽음의 방으로 들어가는 첫걸음처럼 비통스럽기도 하다. 과거를 죽여야 다시 살아나니까, 작가란 그런 것이다.

 

작가적 신원은 어디서 성숙하는가. 작가란 필자가 2009년 발간한 <길을 줍다>에 실은 "그곳에 문도(文徒)의 땅이 있다"에서 말하였듯이 글 세계는 정글과 사막 가운데 있는 화원(花園)과 비슷하다. 작가가 지나간 자리에서만 언어의 꽃이 피고 “일상을 탈주하여 참된 생활로 귀환하려는 영혼”, 의 보금자리가 만들어진다. 그 길은 천국의 문보다 좁다, 분명 하느님도 천국의 문이 좁다고 말했다. 문학의 문은 더욱 좁다. 결코 두 사람이 함께 들어갈 수 없다.

 

여행 작가는 감각을 되살릴 상황을 항상 유지해야한다. 비 내리는 들판이 축축하고 바닷가 모래가 부드럽다는 지식만으로 부족하다. 직접 맨몸으로 빗줄기를 맞이하고 모래를 손바닥에 얹어 바람에 날려보아야 한다. 젖은 들판과 까끌한 모래밭에 몸을 눕히는 행위가 자연을 통해 자신을 만나는 의식이다. 폭력과 수탈과 기만에 허덕이는 인간을 사랑하고, 그들의 상처 난 영혼을 위로하려는 여행을 떠났다고 말할 필요가 있다. 그런 발품과 마음의 감동이 작품을 낳는다.

 

작가의 삶은 일상(日常)에서 멀어질 때 진상(眞常)을 찾는다. 세상의 갖가지 공포와 결핍과 좌절에서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하려 그것들을 안는 원행을 찾을 필요가 있다. 어딘가 가야 할 곳이 있기 때문에 집을 떠나지만 간혹 작가는 목적지 않는 길을 떠난다. 왜 지금까지 여기 있을까 하는 의문이 떠남의 부싯돌이 된다. 보들레르는 “예술가는 산책을 하며 사람과 세상을 관찰하는 방관자”라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작가란 어디를 가든, 아디에 정착하든 늘 나그네이다.

 

그렇게 하려면 어떡해야 하는가. “무조건 쓰자"는 내적 부름에 충실할 것이다. 사과와 귤을 사면 한두 개의 덜 익은 과일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염려할 필요가 없다. 일단 작가라는 의식을 가지면 생활오수가 넘쳐나는 시궁창에서도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땀내음을 맡을 수 있다. 그런 곳으로 펜과 노트를 들고 떠나면 그렇고 그런 개천이 아름다운 글의 강으로 바뀐다. 여행자처럼 인생을 가벼우면서도 진실하게 살아야겠다는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작가로 살아남으려면 탈주 욕망을 키워야 한다. 탈주란 사실은 자신의 고유한 영토를 마련하려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여행을 하더라도 글쓰기 욕망을 잃어버리면 “내가 왜 여기에 왔지?”라는 공허감에 빠진다.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늘 새로운 풍경을 하나의 인상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풍경과 인상”의 상관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풍경이 객관적이라면 인상은 주관적이다. 주변에 널린 사물과 경치가 어느 순간 추억과 꿈이 어울린 풍경으로 바뀌는 것을 제임스 조이스는 작가의 뇌리와 가슴에 박히는 현현(懸懸)이라 하였다. 그것은 마치 <문득 여행>의 저자 정원경이 작가들의 여행에서 발견한 풍경과의 대화를 소개하려 한 욕망과도 같다.

 

작가로서 떠났을 때 가장 힘든 것이 불편한 일행이 있을 때이다. 여행을 떠날 때 “나 혼자 밥 먹을 수 있어.”라고 자신하는 작가만이 여행을 떠난다. 일행이 있을 때는 투덜대기보다 버티는 인내가 필요하다. 시선을 외부로 돌려 새로운 눈 먹잇감을 찾고 그럴 수가 없다면 하다못해 가까운 공원으로 나가 어슬렁거려 본다. 작가란 쉬어도 길에서 쉬고, 잠을 자도 길에서 자는 족속이다. 오래전부터 많은 작가들이 가정 사회 교회 국가를 감성과 이성을 마비시키는 감옥으로 간주하고 그것은 미국 작가 애드가 앨렌 포에서 전형적으로 살필 수 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거나 “니 어디 그렇게 싸돌아다니노”는 말에 기죽지 말라. 그것들은 그대 작가를 얽어매려는 교활한 거짓말이며 사기에 불과하다.

 

인도에서는 개든 소든 염소든 명상을 한다고 한다. 낯선 도시를 찾아갔을 때 그곳의 우물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면 관광일 뿐 순례가 아니다. 순간순간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본전을 한다. 작가에게 가장 큰 위안은 공짜로 쓸 수 있는 글은 없다는 점이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 난장판 세상에서도 끝까지 지켜오는 순수한 영혼. 맑은 한 방울 사유와 희디흰 명주실처럼 이어지는 사색. 무엇보다 청년기의 무뢰한 허영에서 벗어난 장년의 완숙한 상상. 그런 것이 어울린 고뇌가 글 꽃을 피운다.

 

무엇보다 명예라는 화려한 비석과 공명이라는 높은 아치를 멀리하라. 그것들은 상인들과 정치가들의 싸구려 명패에 불과하다. 작가로서 무언가 원하려면 차라리 후세 사람들이 찾아오고 싶어 하는 조그만 묘비를 택하라. 그곳이야말로 작가가 찾아내야 할 최종 여행 목적지이다. 작가의 무덤은 진정한 독자와 만나는 밀회의 장소이며 비석은 그들이 나누는 대화의 문집이다. 필자가 미국의 문화도시인 콩코드 인근에 있는 슬리피홀로우라는 공동묘지에 갔을때 문인구역에서 찾아낸 호손의 묘비는 높이가 20센티미터를 겨우 넘는 조그만 돌비석에 불과하였다. 작가의 책과 무덤과 비석은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진정한 작가란 살아서는 아무도 그리지 못한 삶의 지도를 만들고 죽어서는 고독하지 않는 무덤에 묻히는 자이다.

그런 곳은 어떤 곳인가. 답은 하나다. 또 다른 “나를 부르는 숲”이다.

 

그러면 나를 부르는 숲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 마음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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