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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음에 대한 아이러니 / 박 영 란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20. 8. 30.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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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닮음에 대한 아이러니 / 박 영 란

 

  '꼭 너 닮은 딸 하나 낳아 키우라는 말에서 쇳소리가 들렸다' 어느 수필의 한 대목이다. 딸을 타지로 시집보내고 매번 서울역에서 울었던 어머니가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고 돌아서 가는 딸의 매정함이 서운했다. 그래서 던진 말이다. 엄마의 애틋해하는 이별에 따뜻한 눈길 한 번 주었으면 아무 탈이 없었으련만.

  어디 그녀뿐이겠는가. "이 담에 꼭 너 닮은 자식 낳아 키워봐라" 하는 어머니의 목멘 소리 한 번 듣지 않고 자란 자식이 있을까. 큰 잘못도 아닌 일에, 사소한 일상에서 문득 원망과 한숨이 섞인 이런 푸념이 직격탄처럼 날아오지 않았는가. 자식들은 대개 이 뜨악한 소리에 뭔가 찔끔하기도 하지만, 내심 '내가 왜?' '내가 어때서' 하는 작은 저항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메시지는 부모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예의 바른 악담이었으리라. 언젠가 너도 자식을 통해 너 꼬락서니를 거울 보듯 통찰해 보라는 교훈이었다. 자식을 키우면서 아파하고, 상처받고, 괴롭고, 서운하고, 힘들고 섭섭한 그 복잡다단한 심정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는가. 차마 치사해서 못한다. 자식으로 인한 인생의 씁쓰레한 뒷맛을 너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기다리마. 많이도 말고 꼭 너로 인해 내가 아파한 만큼. 어미들은 그런 유보의 통첩을 던지면서 세월을 위안 삼고 인내하셨다.

  어느 날, 자신도 그와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 옛날 모친과 너무 닮아 있었다. 말도 닮아 있었고, 목소리의 톤도, 언짢은 기분도, 애착의 기운도 그랬다. 문득 그렇게 세월이 건너갔다는 사실이 오싹했다. 닮음의 속성은 결코 닮고 싶지 않은 것들이 모여 너와 나를 이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집스러운 성격이며 늙어가는 노모의 자태와 얼굴 또한 미래 나의 자화상일 터이다. 달갑지 않은 성찰이지만, 핏줄이 흘러가는 한 과정을 보는 것 같았다.

  M은 아들을 들여다본다. 이목구비, 뒤통수, 이마, 발가락을 요모조모 뜯어본다. 드디어 아들과 자기가 닮았다는 것을 발견한다. '발가락이 닮았다' 라는 다분히 자기만족인 단서를 잡는다. 아내의 부정을 불식하고 자기 자식으로 고집하고 싶다. 인간적 신뢰를 저버리고 싶지 않은 최후의 보루며 인간적인 딜레마. 그 해결책은 닮음에 있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그 자명한 검증만이 평생 내 새끼, 내 강아지라고 핥고 키울 사랑과 희생의 모태가 되는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갓 태어난 아기를 받아 안고서도 사람들은 '닮음'의 원초적인 정서를 드러낸다. "이 녀석 눈매 한번 보게. 꼭 자네를 빼닮았네." 이렇게 장모는 너스레를 떨고, 갓난아기와 첫 상면하는 아빠는 마치 위대한 발견을 할 것처럼 아기를 넘겨다본다. 좀은 생경스럽지만 환희에 찬 이 남자의 모습! 남자가 비로소 아버지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잰 대체 누굴 닮아서 저렇지?" 자식을 두고 부부간에 이런 말을 핑퐁처럼 주고받지 않는 부모 또한 없다. '누굴' 따져봤자 당신과 나 둘뿐인 자명한 일을 두고, 듣는 쪽은 왠지 심기가 뒤틀린다. "그래, 안 좋은 건 다 날 닮았다. 왜?"라고 시비조로 나가는 말은 부부싸움의 불티가 된다. 그래 봤자 누워 침 뱉기다. 아이는 자라면서 행동, 성격, 생활습관에 이르기까지 교묘히 엄마와 아빠를 닮아간다. 대체로 쌍방 단점만 닮아가는 것 같고 유독 그런 것만 눈에 들어온다. 아이의 성질머리에서 내 성깔을 보지만 모른 체하고, 아이의 게으른 모습에서 "어쩜 그렇게 당신을 닮았어요."라며 상대방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고 싶다. 모두에게는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기 싫은 불편한 진실이 존재한다. 그 불편함이 왜 하필 자식을 통해 드러나는지, 보고 있으면 아이의 부족한 2%를 내 탓이요, 부모 탓이요 라고 자숙하게 된다. 그 순연한 작심이 자식농사에 욕심을 털어내고 "못나도 내 새끼" 하며 모든 희생과 숭고를 바치는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닐까.

  '닮음'은 이렇게 가족관계에서 미묘한 완충 역할을 하고 있다. 마치 변증법처럼 부정하고 긍정하다 그 모순을 지향해 가는 과정에 놓여 있는 부산물인지 모른다. 잔잔한 수면 위에 떠 있는 물그림자처럼 닮음은 자신을 검증하는 자화상이기도 하며 자기 모습을 발견해 가는 거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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