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의 웃음 / 공 덕 룡
여러 해 전, 모나리자에 관해 한 편의 글을 쓴 일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저 유명한 그림 말이다. 모델은 15세기 프렌체의 귀족 죠콘드(Giocond)의 아내라고 전해진다.
차분하고 꿈꾸는 듯한 얼굴의 표정, 겹쳐놓은 두 손의 육감적 아름다움, 풍신한 의상의 질감質感, 환상적 배경 등 회화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에 이르렀다 할 것이다. 특히 입가에 감도는 신비스러운 웃음은 흔히 ‘영원한 미소’라고 한다.
이렇게 나름대로 그림의 인상을 적었지만, 그 입가에 감도는 신비스러운 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런 탐색을 시도하지는 못하였다. 그저 ‘야릇한 웃음’이라고 덮어두었던 것이다.
최근 유럽 여행길에서 루브르박물관에 들렀을 때, 「모나리자」앞에 다시 섰다. 실로 22년 만의 대면이 된 것이다. 그 입가에 감도는 신비스러운 웃음은 여전하였다.
저 웃음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순간 나는 당돌하게도 임신한 여인의 웃음을 떠올렸던 것이다. 당돌한 착상이지만 어쩐지 그런 생각이 굳어져 갔다. 아이를 밴 여인의 만족감, 그런 감정은 드러내어 웃을 수도 없고 입을 다문 채 있자니 그런 야릇한 웃음을 짓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녀의 두 눈을 살펴보니 그 눈도 무엇인가를 담고는 있는데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
눈이 짓는 감정의 표현은 입에 비할 바는 아니다. 입은 다물거나 열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다문 입술, 연 모습에 따라 감정을 드러내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눈은 뜬 채로 여러 감정을 드러낸다. 번쩍 광채를 발하는 눈, 이야기를 걸어오는 눈, 비웃는 눈, 우수에 잠긴 눈 등등 천차만별의 눈 표정이 있다. 그런데 모나리자의 눈은 그런 어느 눈도 아니다. 눈동자는 조금 왼쪽으로 돌아 있다. 그렇다고 곁눈질하는 눈도 아니다.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몇 발 뒤로 물러서서 내 눈을 부릅뜨고 그녀의 시선의 방향을 좇아 보았지만 허사였다. 혹시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닐까? 눈을 뜬 채 아무것도 보지 않는 눈이 있기는 하다. 어쨌든 신비한 눈이요 야릇한 눈이다. ‘눈은 입만큼이나 말을 한다.’는 표현이 있지만 저런 눈은 말이 없다. 역시 무엇인가를 담고 있는데 드러낼 수 없는 것, 이를테면 비밀스러운 만족감이 아닐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한 해답을 얻었다. 눈이 담고 있는 것과 입이 담고 있는 것이 같은 것일 수 있으리라는 나름대로의 짐작이었다. 눈은 부릅뜨고 입만 웃는 표정은 없을 것이다. 입을 삐죽 내민 채 눈만 웃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나리자의 눈과 입은 무엇을 담고 웃고 있는데 입가에 감도는 미소가 잉태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눈에 어린 웃음도 바로 그것이 아닐까…….
그런데 나는 그와 비슷한 눈을 그림이 아닌 살아 있는 여인에게서 본 일이 있다. 전철 차 안에서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3호선 전철이 금호역을 지나 굴을 빠져나와 동호대교 위의 옥수역에 정차하였다. 맑은 햇빛이 한강물에 반사되어 차 안은 유난히도 밝았다. 나는 무심코 건너편에 앉은 사람쪽으로 시선이 갔다. 한 30대 여인이 얌전히 앉아 있었다. 그 숙녀를 눈여겨본 것은 아니다. 그저 시선이 닿았을 뿐이다. 그 순간, 그 눈은 어디선가 본듯한 눈이라는 기억이 떠올랐다. 모나리자의 눈 바로 그것이다. 그 시선은 앞을 보는데 그 눈은 나를 보는 눈도 아니고 차창 너머 한강의 경치를 보는 눈도 아니었다. 그 시선은 밖으로 향해 있었지만, 눈은 밖을 보지 않고 그녀 자신을 보는 - 그런 눈이었다. 즉 자기의 체내를 보는 눈이었다.
압구정역에 차가 머물자 여인은 좀 무거운 듯한 몸을 일으켰다. 아랫배가 나온 듯하지도 않았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그 여인이 잉태한 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만일 그렇다면 그 여인의 눈은 자신의 체내의 새생명을 지켜보는 눈이었을 것이다. 작은 생명의 태동과 발육을 지켜보는 엄숙한 눈이었을 것이다.
이 낯선 여인의 눈매에서 모나리자의 눈웃음의 수수께끼를 풀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벽에 걸린 모사화 모나리자를 다시 눈여겨보니 아랫 눈꺼풀 밑에 한 줄기 그늘이 져 있었다. 그 풍신한 의상도 임부가 입는 옷이 아니었을까.
공덕룡(1923년~2007)
공덕룡님은 수필가, 평안남도 덕천 출생, 고려대 영문과 졸업, 뉴욕주립대 대학원 문학박사. 단국대 대학원장,『 자유문학』으로 등단,『서울에 고향없다』,『 귓불을 비비며』,『 웃음의 묘약』등 여러권의 수필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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