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련(悲戀)의 꽃 / 신현식
동백은 슬픈 꽃이다.
애조 띤 ‘이미자’ 의 ‘동백 아가씨’를 듣지 않아도 동백은 슬픈 꽃이다. 엄동설한(嚴冬雪寒)에 오들오들 떨며 피어나니 슬픈 꽃이요, 보라에 가까운 핏빛으로 피어나니 님 그리다 피멍이 든 슬픈 꽃이다. 외로운 섬에 갇혀있거나 쓸쓸한 겨울 바닷가에 서성이니 슬픈 꽃이고, 벌과 나비가 찾지 않으니 더욱 슬픈 꽃이다.
어렸을 때였다. 눈이 펑펑 오는 날 거나하게 약주에 취하신 아버지가 품에 안고 온 작은 화분의 꽃이 바로 동백이었다. 그것이 동백과 나와의 첫 상면이었다. 얼마 후 어느 친지의 집 안방에 걸린 동양화 속의 동백꽃을 본 후부터 나는 동백꽃을 좋아하게 되었다.
동백의 강렬한 색이 유혹하기도 했지만, 동백의 사시사철 푸르고 도톰한 잎사귀가 반질반질 빛이 나서 좋았고, 앙증맞은 예쁜 꽃봉오리를 피워 올리기 때문에 좋아하게 되었다.
빨간 꽃잎 속에 샛노란 꽃술을 살포시 내비치는 모습, 그것은 새색시가 자색(紫色)치마에 노랑 저고리를 입고 다소곳이 절을 하는 모습이다.
내가 동백꽃을 이토록 좋아하는 데는 동백의 슬프고 애처로운 모습과 다소곳하고 수줍은 모습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생을 다하고 땅에 떨어진 동백꽃을 보면 알겠지만, 동백은 다른 꽃과는 달리 꽃이 시들고 난 후에 지는 것이 아니라, 시들지 않은 상태에서 지고 있다.
동백은 지는 모습까지도 이처럼 서럽다. 나는 그래서 동백을 좋아한다.
일본인들은 벚꽃이 화려하게 진다고 좋아 하지만, 벚꽃은 실은 시들고 난 다음에 진다. 그러나 동백꽃은 그렇지 않다. 동백은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시들기 전에 ‘뚝, 뚝’ 떨어지는 것이다. 이 얼마나 슬프고 애절한 꽃인가.
몇 해 전 남해의 외도라는 섬에 간 적이 있다. 나는 그 곳에서 동백꽃의 처절한 죽음을 보았다.
외도의 끝, 절벽 위에서 몸을 날려 푸른 바다로 ‘뚝, 뚝’ 떨어지는 동백꽃의 죽음.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온몸에 소름이 돋는 전율을 느꼈다.
그 모습은 마치 자색 당의를 입고 낙화암에서 ‘뚝, 뚝’ 떨어진 삼천 궁녀와 같았다.
동백꽃을 노래한 시나 노래도 많다. 여러 시인들의 좋은 시도 있지만 나는 ‘송창식’의 ‘선운사’를 좋아한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멀리 멀리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꽃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에요.
‘송창식’의 노랫말처럼 동백꽃은 아름답고 달콤한 사랑이 아닌 처연한 사랑의 꽃인 것 같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사랑 때문에 생을 포기하고 다른 세상에 가서야 맺어지는 사랑. 그런 전설이 동백꽃에 있을 것만 같다.
‘로미오와 쥬리엣’, ‘크라라’와 ‘브람스’의 사랑, 그런 애절한 사랑이 동백꽃 같은 사랑일 것이다.
멋을 모르는 나는 아직 그런 사랑을 해 보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그런 사랑을 한 번 해봤으면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내 쓴웃음을 짓는다. 그런 사랑을 하기엔 이미 늦었기 때문이리라.
이젠 동백꽃 같은 가슴 저미는 사랑 이야기를 글로 써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에릭 사갈’의 ‘러브 스토리’같은 그런 애절한 사랑 이야기 말이다.
그리고 사월이 가기 전에 이름만으로도 너무 서정적인 곳, 서러워서 ‘뚝, 뚝’떨어지는 동백꽃을 보러 선운사(禪雲寺)에나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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