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ㅡ 김무룡
마음이 문제다. 열쇠도 마음이다.
언제부터인가 마음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사람의 마음이 세상의 온갖 것을 만들어 낸다. 하늘을 나는 수 백 톤의 비행기도, 바다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운동장보다 더 큰 배도, 구름을 뚫고 올라가는 거대한 마천루도 마음의 설계로부터 생겨났다. 예술도 문화도 모두 마음이 그려낸 창작물이다.
마음은 실체가 없다. 사람들은 실체 없는 이 마음하나로 때로는 행복에 겨워하기도 하고 불행의 늪에 빠져 괴로워하기도 한다.
마음의 크기는 무한대이면서 무한소이다. 마음이 여유로울 때는 온 세상을 다 품고도 남다가도, 한번 쪼그라들면 바늘 끝 하나 놓을 자리가 없다.
욕망과 집착도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야생원숭이를 손쉽게 생포한다고 한다. 원숭이의 손이 겨우 들어갈 만큼 입구를 좁게 한 가죽자루를 만들고 그 속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맛난 과일을 넣어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는다. 그러면 횡재를 만난 듯 기뻐 날뛰던 원숭이는 자루에서 손을 빼지 못한다. 과일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탐욕에 잡혀 제 목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욕망은 사슬이며 집착은 구속’이라 한다. ‘움켜쥐면 노예요 놓으면 자유’라고도 했다. 인간도 마음 하나 내기에 따라 천국을 거닐기도 하고 생지옥을 연출하기도 한다.
오래 전 일이다. 아내랑 함께 자동차 운전교습을 받고 면허증을 취득했다. 작은 차지만 새 차도 하나 구입했다. 전셋집을 털고 새 집도 하나 장만했다. 때맞춰 아내는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모 기관에 취직도 했다. 신나는 일의 연속이었다.
아내가 새 차를 몰고 첫 출근을 한날, 일과를 마치고 먼저 귀가한 나는 대견한 아내를 생각하며 흐뭇한 저녁담소를 떠올리며 턱을 괴고 한가로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아내였다. “나보고 뺑소니래! 점심도 못 먹고 배도 고파죽겠는데…, 지금 경찰서에 있어. 급하니까 이따 전화할게.”뚝! 전화가 끊어졌다.
뺑소니? 그렇다면 사람을 치고 도주? 그러면 그 사람은 최소한 입원내지 사망?… 그 순간, 내 마음은 지옥으로 돌변했다. 연방 가슴은 방망이질이고 얼굴은 창백해졌으며 시야는 온통 노랗게 변했다. 짜부라든 가슴엔 온갖 두려운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날아와 박혀 좁쌀만 한 공간도 없었다. 한 시간 쯤 흘렀을까? 또 다시 벨이 울렸다. “잘 처리됐어요. 회사 직원 한분과 함께 같이 그 집에 찾아가서 사과하고 잘 끝났어요. 걱정 말아요. 얘기가 기니까 집에 가서할게요.”뚝! 또 끊어졌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순간 내 얼굴엔 혈색이 돌고 시야도 제 빛깔을 찾았으며 마음은 금세 천국으로 옮겨온 듯 밝아졌다.
상상의 고통이 현실의 고통보다 참기 어렵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새삼 깨달았다. 한 밤중이 되서야 돌아온 아내의 얘기는 이랬다. 일을 마치고 회사정문을 빠져 나오는데 좁은 차도에 이중으로 차들이 정차해 있었다. 초보인지라 조심조심 비켜나오는데 무엇엔가 닿았다는 느낌이 들어 차를 세우려는데 뒤따라오던 차들이 빨리 가자며 빵빵거렸다. 하는 수 없이 슬금슬금 진행하며 빈 공간을 찾는데, 언제 나타났는지 웬 억센 여자가 창문을 열라고 하더니만 다짜고짜 멱살을 잡고 흔들며 갖은 욕설을 퍼붓고는 뺑소니로 고발한다며 경찰서에 넘기고는 가버렸다. 담당순경은“차에 흠집하나 나지 않았지만 고발을 한 이상 도리가 없다”면서 얼른 찾아가 합의를 보는 것이 최선일거라고 했다. 정신을 차린 아내는 회사에 연락을 했고연로한 직원 한분이 찾아왔다. 함께 그녀의 집을 찾아갔는데 마침 직원과 그 당사자와는 먼 친척벌이 되는 사이였다. 그래서 그간의 안부를 묻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그 일어났던 사건은 없었던 일로 일단락되었다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을 왕복하던 그 날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갔다.
마음은 일방통행이다. 마음에 한 좋은 생각이 일면 온통 세상은 좋아 보인다. 마음에 나쁜 생각이 하나 일면 온통 세상은 나빠 보인다.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이 한 마음 속에 공존할 수는 없는 것이 마음의 법칙인가 보다. 슬플 땐 슬픈 마음뿐이고 기쁠 땐 기쁜 마음뿐이다. 그래서 선인들은‘마음을 곱게 쓰라.’고 한 것이리라.
인간의 번뇌가 108가지인줄 알았는데 어떤 이는 8만 가지가 넘는다고 했다. 좀 많다싶었지만 하루 24시간, 한 달, 일 년, 그것도 7,80년 동안 자나 깨나 생각이 일고 있으니 충분히 그러고도 남겠다 싶었다.
이 무진장의 번뇌를 어찌하면 깨끗이 지우고 단절할 수 있을까? 세상만사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나온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불교가 외치는 진리이니 그 해답도 마음에 있는 것이리라. 그것은‘무심(無心)이다!’는 자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서적을 보던 명상을 배우든, 설교나 법문을 듣던 간에 마음공부의 초점은 일단‘무심’에 두기로 했다.
무심! 일체의 생각을 끊어버려야 한다. 그 어떤 욕망도 집착도 궁리도 일체 잘라 없애야만 한다. 그런 생각조차도 버린 텅 빈 마음이 되어야 한다. 생각의 파문을 더 이상 일으키지 않는 고요한 수면과도 같은 마음을 이루어야 한다. 경계가 없는 허공과도 같은 마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불경에 나오는‘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하던 그런 대안심의 경지에까지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난감한 일이 생겼다. 잘 아는 문우회에서 얼마 전에 수필 한편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왔다. 등단을 하고나서는 이 핑계 저 핑계로 근 4,5년을 필을 놓고 있던 터라 큰 부담이었다.
글을 쓰자면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생각을 일으켜야만 가능한 일이다. 아무래도 마음공부는 당분간 접어야만 할 것 같다. 무심을 붙들고 있어서는 될 일이 아니다. 생각을 끊고 감정을 버리고는 글을 쓸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대로 마음공부를 포기할 수는 없다. 거기에 삶의 안녕이 있고 마음의 평화가 있으며 영원한 안식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옹색한 내 사전에도 포기란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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