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꿈 ㅡ 이재부
'너 참 아름답다' 얼마나 듣고 싶은 칭찬인가.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솔 숲 우거진 바닷가에 가면 칭찬의 환호가 저절로 나온다. 푸른 바닷가 하얀 모래밭에 이어진 노송의 푸른 숲이 궁전 같고, 후원이며, 별천지 들판으로 연결된다. 푸른 노송은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고 있어도 교만하지 않고, 청순하게만 보인다. 누구나 그 솔숲을 찾아가면 고향 친구가 반기는 듯 미덥고 푸근하여 부담 없이 마음을 내려놓으리라. 아름다운 자연과 어울려 시상(詩想)을 소통시키려는 많은 시인들이 벌써 찾아와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해수욕장 풍경 그 자체가 한 폭의 시화다. 하늘, 바다, 육지, 파도가 연으로 구분해 뜻을 전하고, 백사장은 시원한 여백이며, 청송은 그림인 듯, 어는 시화에도 다 어울릴 것 같다. 시정(詩情)을 자극하는 바람의 향기가 가슴을 들썩이고, 감미로운 솔 향이 마음의 꽃을 피운다. 감성을 뿌리째 흔드는 푸른 광활함이 마음의 파도가 되는 곳이다.
시인이 아니라도 감흥의 파노라마 저 끝에 옷 한 벌, 벗어놓지 않을는지. 허물을 벗듯, 유서를 쓰듯, 느낌의 형상대로 명시 한 편 쏟아내리라. 어느 누구라도 이 곳에 오면 시심을 품고, 그리운 사람이 생각나리라. 사랑하는 사람이 그리운 곳이다. 동심으로 돌아가는 바다, 모랫벌이다.
사랑했던 친구야 어디서 무얼 하는가. 나는 이곳에 와서 자네와 같이 해변을 달리는 꿈을 꾸고있다네. 여기는 노인의 옷을 입고 왔어도 그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나보네. 내 마음을 내가 다잡기가 어려우니 이르는 말일세. 점잔만 빼던 내 본심이 어디로 실종되었는지,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사춘기 악동이 되고싶구려. 모래톱에 지그재그 발자국을 남기며 바다로 밀어 넣던 자네와 나, 지금 나는 고교얄개로 돌아가 있네. 돌아오지 못하는 자네를 뻔히 알면서도 우정을 넘는 영별의 속병이 또 마음을 흔드는구려.
늙는 방황인가, 해변에서 꿈꾸다 시선을 잃고, 마음은 먼 길로 떠났나보네. 수평선으로 가물가물 사라지는 배 한 척, 그 배가 배로 보이지 않고, 자네 손짓으로 보이니 어쩌지. 죽어서 돌아간다는 북망산이 바다에도 있는가. 해변에 서서 멀뚱히 꿈꾸는 나를 바라보시게. 한줄기 바람같이 왔다 가는 것을 꿈속에서 또 꿈을 꾸며 자신을 들볶지 않았던가.
친구! 흥얼거리는 내 말 들리는가. 늦게 철들어 시인들의 옆에 다가섰네. 그렇다고 시인이 되겠는가. 흉내내다 사라질 뿐이겠지. 항상 자네는 내 글에 평론가였는데, 오늘도 글 한편 띄우니 평해서 보내주시구려.
이른 새벽/ 동해로 나가/ 동쪽 수평선을 향해/ 낚시를 던진다// 먼동이 트자/ 심장이 울렁거리더니/ 태양이 걸렸는가// 줄을 당기고, 당기다/ 잃어버린 청춘/ 끄러 올리지 못한/ 엉클어진 소망이/ 낚싯줄에 매달려/ 벌써 서천(西天)에 걸렸네// 둘둘 세월에 감긴/ 내 인생의 낚싯줄.
제목을 무엇으로 붙일까? 멍하니 꿈을 꾸며 영혼의 나라 자네를 찾아가네. 저 바다 건너에 자네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 보고싶구려. 무심한 파도가 자꾸 가슴을 때린다네. 두막아주시구려. 함께 꿈꾸던 옛날 같이.
(2011년 8월 28일 옥계해수욕장에서 친구를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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