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눈물 ㅡ 정정자
소한을 앞둔 겨울 날씨는 살을 에는 듯했다. 아버지는 달구지를 끄는 쇠고삐를 잡고 동생을 업은 어머니와 할머니와 언니 오빠는 달구지 뒤를 따랐다. 달구지 위에는 이불보따리와 쌀가마 옷가지, 그리고 콩엿이랑 쇠여물이 실려 있었다. 이불보따리 한쪽에는 배추꼬리 방한모를 쓴 어린 딸이 눈만 내놓고 뒤를 바라보고 갔다. 기약 없는 피난행렬이었다.
큰길로 접어들수록 사람들이 늘어났다. 아버지는 수숫대를 달구지 뒤에 꽃아 표식을 해두었다. 가족들은 인파에 밀려 달구지를 놓치면 수숫대를 찾아 부지런히 걸었다. 얼마쯤 가니 수숫대 꽃은 달구지가 여기저기서 튀어 나왔다. 달구지 위에 어린 딸은 뒤에 따라오는 가족을 잃을까 속이 탔다. 발안장터를 지나고 두 갈래 길이 나왔다. 아버지는 부지런히 앞만 바라보고 소를 몰고 가셨다.
“엄마가 안 보여.”
어린 딸은 마구 울었다. 아버지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리 찾아도 가족이 눈에 뛰지 않았다. 어린 것을 달구지에서 내려 업었다 소는 한쪽에 매어 두고 가족을 찾아 나섰다. 어린 딸은 난생처음으로 아버지 등에 업혔다. 아버지 냄새, 따듯한 온기가 어린것의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어디에고 가족들은 없었다. 몇 날을 찾아 헤맸다. 어린 딸은 엄마에게 가자고 울고 아버지는 딸이 가엾어서 울었다. 아버지는 할 수 없이 오던 길을 돌아가기로 했다. 갈림길 그곳에서 그들은 다시 만났다. 그리고 또 다시 남으로 떠나는 행렬 속에 끼어들었다.
아버지는 옛날이야기를 잘 하셨다. 가을이면 들에서 거둬들인 팥 넝쿨을 앞마당에 늘어놓고 팥꼬투리를 땄다. 풋것과 마른 것을 가리기 위해서다. 이때 아버지는 심심치 않을 정도로 옛날이야기를 늘어 놓으셨다. 그 중에 피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었다. 딸은 그때 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셨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딸은 자라면서 아버지에게 불만이 많았다. 돈도 못 벌고 농사만 짓는 아버지는 그저 일밖에 모르는 것 같았다. 가을이면 벼를 베고 그것을 털어다가 방앗간에서 찧었다. 몇 가마 식량은 들여다 뒤주에 붓고 몇 가마는 팔아서 돈으로 가져 오셨다. 돈은 고스란히 할머니 손으로 넘어가고 할머니는 그 돈으로 살림을 하셨다.
아버지는 영락없는 머슴에 불과했다. 아버지 손에는 용돈 한 푼도 주어지지 않았다. 아버지 앞으로 들어가는 돈은 봉초 몇 봉이면 되었다. 아버지는 늘 할머니 앞에서 공손했고 어떠한 꾸지람도 달게 받으셨다. 딸은 그런 아버지가 바보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체구도 작고 병약하여 힘도 잘 못쓰셨다. 농사일이 겨워 병이 나 누우면 할머니는 행여 꾀병이라도 부리는가 하고 냉정하게 대하셨다. 딸은 그런 아버지가 불쌍하기도 했고 공납금을 내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 올 때는 능력 없는 아버지가 한없이 밉기도 했었다.
추수가 끝난 어느 가을날이었다. 딸이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왠지 집안 분위기가 이상했다. 딸은 영문을 몰라 토방에 멈칫하고 서 있었다. 그 때 할머니의 노한 음성이 안방에서 흘러 나왔다.
“네가 이만큼이라도 살고 있는 것이 다 누구 덕인데? 겨우 열 세 살 된 너를 내가 내 집으로 데려와 이날 이때까지 뒷바라지를 한 덕 아니냐? 이제 와서 나를 속이려 들다니 괘씸한 놈. 이제 다 필요 없다. 네 식구 다 데리구 당장 나가거라. 나 너 없어도 실컷 산다. 재산은 반만 나누어 줄 터이니 당장 나가거라.”
할머니의 쩌렁쩌렁한 음성이 집안을 흔들었다. 아버지는 죄인 모양 할머니 앞에 꿇어앉아 용서를 빌고 있었다. 며칠을 아버지는 그렇게 꿇어 앉아 있었다. 딸은 영문도 모르고 눈치만 살폈다. 할머니가 화가 나신 이유는 이런 것이었다. 아버지가 방아를 찧으러 갔을 때 쌀 한말 값을 할머니 몰래 챙겼다고 했다. 하도 용돈이 궁한 나머지 그랬던 모양인데 그것이 할머니 감시에 걸려들고 말았다. 그 후 아버지는 더욱 힘든 세월을 살아야 했다.
딸이 대학 진학을 앞두고 단식 투쟁을 할 때였다. 분명 승산 없는 투쟁이란 걸 딸은 뻔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기로 재산 나누어 달라고 할머니에게 대들고 나섰다. 이때였다. 밖에 나갔던 큰 아들이 돌아와 딸을 방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는 문을 걸어 잠그고 사정없이 동생의 얼굴에 펀치를 날렸다. 삽시간에 딸의 얼굴과 머리에는 울퉁불퉁 혹이 솟아올랐다. 그래도 딸은 피하지 않았다. 앉은 채로 실컷 두들겨 맞은 다음 오라비가 나간 사이 방을 뛰쳐나와 한강을 향해 달렸다. 한 줄의 유서도 남기지 않은 채였다. 허나 집안 누구도 딸의 행동을 주시하는 이는 없었다. 외나무다리를 건너 긴 뚝방을 달려 나갔다. 멀리 한강이 보였다. 이때 누군가가 헐떡이며 딸의 뒤를 따라왔다. 뜻밖에도 아버지였다.
“애야, 나를 봐서 한 번만 참아라.”
딸은 아버지의 눈물 그렁한 눈을 보았다. 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이 딸에게 전해졌다. 딸은 말없이 아버지를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팔순이 넘도록 집안 살림을 쥐고 계시던 할머니는 어느 날 중풍으로 쓰러지셨다. 그리고 십년을 누워 지냈으니 그 병수발은 고스란히 어머니 몫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단 하나뿐인 오라비가 논밭을 저당 잡혀 사업을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아들 하나라 고이고이 길러 고생이라고는 모르는 오라비에게 세상은 무서운 함정이었다. 겁도 없이 시작한 사업은 몇 해 안가 남의 손에 넘어 가고 마침내 오라비는 빈털터리가 되었다.
평생을 몸 바쳐 지켜온 재산이 다 날아가도 말도 못하고 가슴만 앓으시던 아버지, 늙은 부모님은 매일 걱정으로 세월을 보냈다. 마음 같아서는 손잡고 같이 세상 버리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았다. 어머니는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었던가. 집 근처 10분 거리에 있는 교회를 찾기 시작했다. 이른 새벽마다. 교회로 가는 산길로 접어들곤 하셨다. 오라비는 어머니의 새로운 신앙생활에 강력히 반대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버지가 나서 오라비를 엄히 꾸짖고 어머니 편을 들어주셨다. 아마도 아버지가 당신의 아내를 위해 큰 소리를 치면서 당신의 의견을 피력한 최초의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 아내의 소원 하나를 풀어준 셈이다. 몇 달을 새벽기도 한 번 거르지 않고 교회로 향하시던 어머니는 몸져누우셨다 육신이 너무 지쳐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아버지는 펑펑 우셨다. 당신의 눈물에는 너무도 한스런 지난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듯했다. 열세 살 어린 나이로 양자로 들어와서 뼈빠지게 일만 했지 용돈 한번을 못 써 본 저 미련한 사내는 어머니 앞에서는 아내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고 자식이 귀여워도 머리 한 번 쓰다듬지 못했다.
딸은 어머니 영전에서 섧게 우시는 아버지를 말릴 수 없었다. 아무것도 당신 뜻대로 할 수 없었던 한 맺힌 삶, 한번 실컷 울어나 보시라고. 몇 날을 아버지는 어머니 상청 앞에서 그렇게 목 놓아 우셨다. 노안 어느 구석에 저토록 많은 눈물이 남아 있었을까. 며칠 후 눈물이 그쳤을 때 아버지는 텅 빈 듯 공허해 보였다. 그 공허한 시선으로 줄곧 어머니 사진만 바라보고 계셨다. 몇 날이 지나도록. 딸은 알 것 같았다.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고 계신지를.
‘여보 미안하오. 나 같이 못난 사람 만나 고생만 하였구료. 이제 편안히 가시오. 내 곧 당신을 따라 갈 테니.’
4년 후 아버지는 그토록 서러웠던 생을 마감하셨다.
딸은 제 글속에서 이제 겨우 아버지를 만난다. 아! 한없이 불쌍한 아버지. 딸의 가슴이 저려온다.
(작법 해설)
이 작품은 작가의 다른 작품인 [넋대]와 같은 작법의 작품이다.
서두문장에서부터 종결문장 "딸은 제 글속에서"까지 3인칭 시점의 소설체 문장법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작품의 서두에 나오는 피난 이야기는 작중 화자 역할로 되어 있는 딸이 성장기간 동안 아버지에게 듣고 또 들은 이야기다.
피난 행렬 이야기를 서두로 삼아 아버지의 생애를 소과거 대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까지의 현재시점으로 돌아오는 구성법은 소설작법의 기본 구성법이다.
창작문예수필이 소설이나 시작법의 형식을 자유롭게 원용하여 창작할 수 있다는 점은 창작문예수필의 장점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자칫 창작수필 작가란 소설가나 시인이 되려다 못된 3류 문사라는 느낌이 들 수 있는 실수가 늘 잠재해 있을 수 있다는 점에 주의 하여야 할 것이다. 특별히 3인칭 시점의 소설체 형식을 빌어 올 경우 그 같은 위험에 노출 될 위험이 높을 것이다. 그 이유는 수필문학의 본질은 사실의 소재를 작품의 제재로 삼는 데에 있고, 소설의 작품제재는 허구화된 서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소설의 3인칭 시점법의 문장법과 수필의 1인칭 시점의 문장법은 사실상 서로 상극관계에 있다고 할 수도 있다는, 민감한 관계에 있다는 점에 주의하여야 할 것이다.
창작문예수필은 서사문학이기 보다 서정문학이다. 서사를 창작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고 창작문예수필은 서사도 서정으로 풀어내는 문학이라는 뜻이다. 이 점에서 창작문예수필은 그 DNA가 소설보다 시에 더 가까운 문학형식이다. 수필서사를 서정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대표적인 예가 윤오영과 피천득의 수필문학이다.
소설은 사건으로 이야기하고, 창작문예수필은 서정으로 이야기하는 문학이다. 소설체 형식의 창작수필작품에서 서사가 서정보다 승할 경우 자칫 소설이 되다만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 수 있을 것이다.(문학평론가 이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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