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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홍은 / 자작나무 (2) / 김홍은의 나무이야기 / 충청타임즈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12. 3. 6.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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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2)
김홍은의 나무이야기
2012년 03월 04일 (일) 김홍은 <산림학 박사> webmaster@cctimes.kr
   
 
   
 
김홍은 <산림학 박사>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애타게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사랑의 고통을 아는 이 만이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을 것이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 숲속을 시름에 겨워 걷는다. 자작나무의 노란 잎을 밟으며 우수에 쌓인 가슴으로 그리운 연인을 떠올린다. 늘 이맘 때면 알 수 없는 상념들로 다가오던 하얀 그림자 같은 자작나무. 나무의 쓸쓸함을 체온으로 느끼며 하얀 속살보다 더 고운 줄기를 가만히 끌어안아 본다. 노을 진 산기슭에 서서 이토록 그리워하며 지난날의 추억을 더듬는 고요한 마음이 언제 또 있었던가.

살며시 눈을 감고 얼굴을 대어 본다.

그의 숨소리가 가냘프게 들린다. 마구 떨려오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수피에다 입맞춤을 했다. 자작나무는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자작나무의 체온은 활화산의 불길이 되어 종잇장 같은 하얀 옷이 한겹 한겹 벗어져 기름처럼 타고 있었다.

첫날 밤 화촉의 불빛만큼이나 밝다. 구수하고도 은은한 불타는 내음은 가을날 깊은 산사에서나 맡을 수 있는 아주 소중한 향기다. 자작나무 수피에는 기름기를 함유하고 있어 비에 젖어도 얇은 껍질은 불을 붙이면 활활 타들어간다.

자작나무는 천마도(天馬圖) 속의 말이 되어 나를 등에다 태워 하얀 껍질로 장니(障泥)를 두르고 푸른 가을 하늘을 훨훨 날았다.

얼마나 그리웠던가. 얼마나 기다렸던 시간인가.

날아도 날아도 지칠 줄 모르는 천마. 천마는 푸른 숲을 지나 맑은 물이 흐르는 산기슭에다 나를 내려 놓았다.

자작나무로 아담하게 집을 지어 놓고 지붕은 자작나무 수피로 해 이고 천년을 살아도 빗물이 새지 않는다고 일러 주었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싶으면, 이른 봄 곡우(穀雨) 때에 자작나무 몸에 상처를 내어 이 물을 마시면 머리가 맑아지고 건강이 회복된다고도 했다. 천마는 자작나무 물을 먹고 살기에 천상의 여인같이 하얗게 분장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살다가 인명이 다하면 하얀 수피에 싸서 좌청룡 우백호를 따져 명당에다 안치하고 주위에는 아름다운 자작나무숲을 만들어 주겠단다.

어느새 내 마음은 백두산 자작나무의 천연림 속에 가서 머물었다.

자작나무! 너는 고고한 학의 넋이더냐. 백의민족의 영혼이더냐.

어느새 하늘에는 별이 반짝이었다. 사방은 어둠이 밀려왔지만 하얀 자작나무는 더욱 빛났다. 나는 어느 늦은 가을날 자작나무와의 깊은 사랑에 빠지고 있었다.

고고학에서는 신라인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작나무를 아꼈다고 한다. 예전에는 결혼을 하는 첫날밤은 자작나무로 불을 밝히는 풍습도 있었고, 자작나무 껍질로 모자도 만들어 쓰고 저승으로 돌아가는 사람에게 자작나무 껍질로 싸서 장례를 지냈단다.

추운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 고산지에서 자라는 자작나무에는 여러모로 소중함이 담긴 어떤 연유가 있지 않았을까.

출처 : 푸른솔 문학회
글쓴이 : 푸른솔2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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