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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봄을 찾다 / 박원명화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11. 5. 13.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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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에서 봄을 찾다/ 박원명화

 

 주말인데도 적요하다.

 숲이 정지된 듯 나무와 풀들이 숨을 죽이고 있다.

 나무사이로 내려오는 햇빛까지 마음에 걸릴 만큼 고요하다. 절세의 풍경, 바로 눈앞에서 보는 숲인데도 아름답다. 서울 근교 산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때 묻지 않은 게 참으로 놀랍다. 이토록 멋진 산을 만들어 놓고도 말없이 묵상만 하고 있는 나무들에게서 새삼 생명의 뜨거움과 겸허를 배운다.

 언제부턴가 건강을 찾아 산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산줄기마다 반들반들 다져진 길을 따라 올라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주말이면 산이 몸살을 앓을 정도로 그 수효가 더해진다. 내 건강을 이유로 들어 시끄럽게구는 것 같아 산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든다.

 사람에게 치이는 게 싫어 산길(사람의 왕래가 잣은 길) 즉, 되바라진 길들을 부러 피해 다닌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으니 지난 가을 떨어진 낙엽들이 그대로 수북이 쌓여 있다. 발목까지 푹푹 빠질 정도다. 뱀이라도 튀어 나올까봐 은근히 겁도 나지만 딱딱한 길이 아니니 발에 무리가 없어 좋다.

 한 달에 두서너 번 다니다 보니 점점 익숙해져 가는 길, 계곡 따라 구불구불 올라가는 길섶마다 야생초가 요란하다. 털제비꽃, 노루귀꽃, 동의나물, 피나물, 산괴불주머니, 개별꽃, 등등...

 언제 봄을 불러 들였는지 한곳에 예쁜 꽃밭을 만들었다. 생각지도 않은 횡재를 만난 듯 반갑고 정겹다. 세상에 아무리 깨끗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야생초의 청순함을 비교할 수 있으랴.

 함초롬히 봉우리를 열고 있는 풀꽃들의 수줍은 자태가 심통 날 정도로 곱고 예쁘다.

 길이 아닌 길에는 사람을 크게 진장시킬 요소가 적다. 산을 오르다보면 육체보다 정신이 먼저 반응한다. 뜻하지 않은 내 발 소리에 풀들이 놀랄까 발자국이 조심스럽다.

 번잡하고도 요란한 관광의 강박과는 거리가 멀다. 시간 절약, 돈 절약, 느긋한 포만감으로 충만하다.

 화려하지도 않으며 소박한데서 경험하는 새로운 묘미를 청계산에서 즐긴다. 느리고 게으른 삶에 대한 자각의 눈이 떠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정상에 오르는 일도 급할 것이 없다. 놀며 쉬며 걸으며 자연을 즐기며 올라가면 된다. 그런 걸음으로 정상(국사봉)까지 왕복 4시간이면 족하다. 우리만이 아는 일명 ‘실버길’로 접어들었다. 산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는 물소리는 언제 들어도 그렇게 맑을 수가 없다. 늘 듣던 수돗물 소리와는 전혀 다른, 그야말로

살아 쉼 쉬는 물소리이니 그 정감이 더하다. 그 계곡을 곁하고 올라갔다. 골짜기 바위에는 스산한 빛깔을 다 벗지 못한 다래 넝쿨들이 고달픈 듯 널브러져 있다. 바위를 피해 비탈진 언덕을 30분쯤 올라갔다. 소나무 그늘에 앉아 잠시 가쁜 숨을 몰아내고 솔 향에 취해본다. 능선 오솔길을 따라 가다 뜻밖에도 봄의 전령사 진달래 무리를 만났다. 운 좋게 꽃이 만개한 때라 행복을 덤으로 얻은 것 같은 기쁨을 맛보았다.

 산위로 올라 갈수록 봄은 점점 멀어진다. 비쩍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푸른 하늘이 더욱 가깝게 보인다.

바람 부는 정상에서도 반듯한 기개를 잃지 않고 바르게 서 있는 나무들, 추운 겨울을 털어내고 봄을 끌어안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여린 가지들, 신기하고 대견하다. 그 산고産苦와도 같은 나무의 고통이 내 가슴으로 전해온다. 드디어 정상, 국사봉아래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오늘은 이수봉을 거쳐 목배능선을 타고 옛골로 하산 하기로 한다. 이수봉 산길은 봄의 정취들로 가득하다. 참 좋은 산행이었다는 느낌이 든다.

 산에는 묘한 마력이 있다. 산은 모두를 반긴다. 옛날부터도 사람들은 산을 찾아 다녔다. 들판에 정착해 살면서도 수시로 산을 드나들며 길을 냈다. 생활에 필요한 땔감을 구하고 약초를 구하고 나물들을 구했다.

 산과 사람은 애초부터 정다운 이웃처럼 가까운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산에서 만나는 사람은 싫은 사람도 미운사람도 없다.

 우리의 국토 중 70%는 산이다. 산은 볼수록 신기한 것들로 가득하다. 나무에서부터 이름 모를 풀잎까지 반갑지 않은 게 없다. 눈뜨는 새싹, 피어나는 꽃들, 온갖 새들의 지저귐, 하다못해 하찮은 벌레들까지…. 욕심 같아서는 양지바른 골짜기에 한 떨기 풀꽃으로 피어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향기로운 여운을 전하며 살고 싶다.

 시간이 허락 되는대로 산행을 자주 가고자 한다. 비좁은 아파트(집)에 지내다가 산에 오르면 나도 모르게 막혀던 가슴이 시원스레 확 트이는 것을 느낀다. 산은 내가 좋아했던 것처럼 나를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산을 가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산에 대한 애정도 날로 깊어간다.

 산을 내려와 다시 일상 속으로 젖어들면 산에서 움직이던 선한 마음은 어느덧 사라지고 뛰고 달리는 본래의 내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다. 산 아래의 속도는 늘 나를 지배하려든다. 생존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시간과 경쟁하기 바쁘다. 가족끼리도 밥상에 둘러 앉아 함께 먹은 기억은 가물가물, ‘언제 한 번 만나자’ 던 친구의 약속도 인사치례로 때우기 일쑤다. 문명에 찌든 손에는 항상 휴대전화가 있고, 횡단보도의 파란불만 보아도 부리나케 달리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문부터 닫고 싶어 재빠르게 버튼을 누르지만 내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언제나 모자란 듯하다.

살다가 가슴이 답답한 날에는 아무생각 없이 산을 찾아 가는 게 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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