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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파 / 도 종 환

추천우수 수필

by 장대명화 2011. 5. 7.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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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파 / 도 종 환

  해가 지면서 하늘은 재푸른 빛에서 검푸른 빛으로 색깔을 바꾸고 있습니다. 지는 동안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빛깔을 표현할 말이 아직도 우리에겐 너무 부족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평선 까치놀을 바라봅니다.

 우리도 저물고 있습니다. 저물면서 빛나는 저녁바다를 우리가 오래 바라보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나는 압니다. 해도 달도 될 수 있을것 같던 날들은 그 시절로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해도 달도 될 수 없지만 햇불이나 등불 또는 밤배에 매달린 어화 중의 하나가 되어 있던 날들도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정형, 내 안의 모든 불을 꺼버리겠다는 말은 하지 않도록 합시다. 저녁에서 밤으로 바뀌는 바다를 바라보며 가만히 어둠의 품에 몸을 맡깁시다. 어둠 속에서 다시 달이 뜨고 그 달이 달빛을 바다에 천천히 뿌리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미움을 지닌 채 불을 꺼버리겠다고 하는 건 불을 끄는 게 아닙니다. 정말로 불을 끄겠다면 미움 먼저 꺼야 합니다. 그러나 정형이 가슴에 품고 다니는 많은 칼 중에 가장 잘 드는 칼을 들어 세상에 대한 미움도 사랑도 다 끊어버리지 못한다면 조금만 더 달빛을 바라봅시다.

 달빛도 등불도 될 수 없는 날엔 달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는 은물결의 하나라도 됩시다. 방파제의 등불을 받아 안고 출렁이는 물결이라도 되어 이 조그만 항구에서 철석이다 갑시다. 이것은 이것대로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은결도 금결도 될 수 없는 날엔 조그만 물결소리라도 되어 함께 이 어둠속에 있습시다. 듣는 이는 듣고 보는 이는 보고 저도 없는 날엔 우리끼리 손을 잡고 조용히 저물면서 이 바닷가에 있습시다.

 다만 불을 꺼버리겠다는 말은 하지 맙시다. 이 세상 모든 파도와 물결이 그랬듯이 조용히 견디며 있습시다. 이 어둠의 끝에서 다시 먼동이 트면서 동살이 비친다면 그것도 고마운 일이지만 끝내 이 어둠과 함께 사라진다 해도 실망하지 맙시다. 우리에게 어제만 있고 내일은 없을지 모른다는 걱정은 하지 맙시다. 어제와 오늘까지 내 온 몸을 불태워 살았으면 그것만으로도 잘 산 것입니다 .내일은 내일 오는 이에게 맡기고 어두어서 더욱 빛나는 은파와 함꼐 있습시다. 상처 받은 몸도 다친 마음도 물결로 씻으며 은결 위에 몸을 얹어 놓고 하현달이 수평선을 다 넘어갈 때까지 함꼐 이 바닷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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